눈이 내리네
일본 작가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첫 문장이다.
나는 이렇게 쓴다. 그리고 아직도 설국 위에 연이어 눈이 내린다.
노벨문학상 작가 '한강'의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 첫 구절도 눈으로 시작한다.
작가가 바라보고 인식하는 눈에 대한 생각은 모두 다르다. 현존하는 프랑스 화가 ‘미셸 들라크루와’의 그림에는 늘 눈이 날린다. 아직 전쟁이 일어나기 전 평화로운 프랑스 파리와 교외에 샹송과 함께 은은히 흩날리는 눈을 화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바둑이와 함께 꼭 그려 넣었다. 미셸에게 눈은 평화와 행복의 상징이다.
오늘 아침 나의 눈은 어제 첫눈이라는 이미지와 연결해 설렘이다. 고립이기도 하다. 신세계다. 글소재다. 어제 나무와 낙엽 위에 오직 눈이 내리는 소리만이 들리는 숲으로 산책을 갔다. 등산화와 등산지팡이, 모자, 방수점퍼등 완전무장을 하고 들어갔다. 산 입구에서 눈을 치우려는 아저씨와 마주쳤는데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드륵 드륵 눈을 재난이라 인식하는 문자가 연이어 온다. 거기에 이번 눈은 습식 눈이라 무거워 비닐하우스 등이 무너져 내리니 대비하라는 글이 떴다. 대비가 필요해 보인다. 큰 나뭇가지들과 바닥에 작은 나무 가지들이 눈에 쌓여 축 가라앉아있다. 가지고 간 지팡이로 ‘툭’ 눈을 털자 금방 공중으로 튀어 오른다. 얼마나 무거웠을까. 내가 뭔가 장한 일을 한 거 같다. 뽀드득 내 발자국 소리만 난다. 나무는 무겁겠지만 숲의 풍경이 아름답다. 아름답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다. 연신 사진을 찍는다. 손이 시려도 어쩔 수 없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이 시를 오래전부터 좋아했다. 광활한 미대륙의 거대한 눈 내리는 숲과 우리 동네 숲이 비교가 안 되지만 이렇게 눈 내리는 숲에 오면 이 시가 생각난다. 조랑말이 너무 귀엽고 조랑말을 헤아리는 시인의 마음도 정겹다. 숨 막히게 아름다운 숲을 빠져나가기 싫지만 가야만 하는 길이 있다. 두 번이나 반복한 걸 보면 감상에 빠진 자신을 일깨우고 있는 거 같다.
아무도 밟지 않는 길을 내 발과 등산지팡이가 자국을 남긴다. 큰 나무 앞뒤가 흑백이다. 저만치서 무게를 견디지 못한 나뭇가지가 툭 부러져 바닥에 떨어진다. 까치와 까마귀 청설모는 어디로 있을까?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모두 어디 가서 숨었을까? 식량은 준비해 뒀을까? 나뭇가지들 위에 흰 비누거품이 앉은 거 같다. 비누거품을 보면 흰 눈이 쌓인 거 같다고 하겠지. 한 시간 이상 숲 언저리를 돌고 감상하니 조금씩 추워진다. 낮에 잠깐 햇빛이 나서 눈이 그치는가 싶더니 저녁에 다시 날린다.
밤에 들어온 아들은 ‘기상이변’이라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거라 말한다. 아들에게 눈은 그저 춥고 성가신 존재인가 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은 내린다. 하얀 세상. 하얀 도화지 같은 저 눈을 보며 나는 오늘 할 일을 그려본다. 그리고 저 눈 속으로 걸어가야겠지. 로버트 프로스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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