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이유
“너는 그게, 그 사람이 왜 좋은데?”
어릴 땐 나의 선택에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았다.
예뻐서, 나에게 잘해줘서, 그냥 꽂혀서…
별 시덥잖은 이유로 선택하는 모든 것들은 가벼웠다.
예쁘장한 것들은 너무 많고,
나에게 애쓰는 이들도 많으니
내 시선이 가는 방향만 틀면
뭐든 꺾어 담아 내 취향이라 말할 수 있었다.
음악도 아무거나 들었다.
메탈, 하드록, 재즈, 뉴에이지, 힙합,
J-POP, lo-fi, 발라드, 시부야케이, 펑크…
중독성 있는 후렴구만 있다면 흥얼거릴 수 있고
아티스트의 대국적 의도 따윈 아무렴 상관없었다.
요즘은 많아야 세 가수의 노래만 듣는다.
장르가 셋이 아니라,
단 세 명의 가수.
최유리, 권진아, 짙은
그리고 문득 이들에게
몇 가지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 거짓말하지 않는다.
모든 노래의 작사를
아티스트 스스로가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작사가가 누구이든 그 가사들은
모두 진솔한 자기 고백이다.
”날 사랑해도 돼?
너도 그래줬음 해
내려놓은 나의 모습 모든 순간을 사랑해줄래
다시 한번 물을게 날 사랑해도 돼?“
(오랜만이야, 최유리)
“더 아프게 말해 내게, 너의 그 못된 입술로
키스해 내게, 대체 어디까지 엉망이길 바래?“
(love & hate, 권진아)
“마음을 다 보여줬던 너와는 다르게
지난 사랑에 겁을 잔뜩 먹은
나는 뒷걸음질만 쳤다“
(잘 지내자 우리, 짙은)
어조의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는 재미도 있는데
최유리는 가사에 비유와 시적인 표현이 많다.
권진아는 조금 더 직설적으로 상처를 이야기하고
짙은의 연륜 있는 가사는 인생 전반에 걸쳐있다.
2. 감정의 깊이를 담는다.
정서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그들의 노래는
듣는 이로 하여금 상념에 빠지게 하는 주문이 된다.
“한때 나를 사랑했던 것들과…
사라져 가는 것들이 되어
다시 만날 수가 없다네“
(사라져 가는 것들, 짙은)
“날 걱정해도 돼 난 아직 모든 게 불안한
겁이 많고 적이 많은 내가 그대는 어떤가요“
(어떤가요, 최유리)
3. 담담한 자기반성이 녹아있다.
우울의 매몰로 끝내는 것이 아닌
희망 섞인 자기반성을 할 줄 아는 아티스트들이다.
“나는 운이 좋았지 스친 인연 모두
내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줬으니
후회는 하지 않아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으니까“
(운이 좋았지, 권진아)
“우린 결국 사랑하는 마음
그것에 눈 뜨고 있지만
끝내 다시 놓아줄 마음에 들뜨지 않을래
사랑하기 위해“
(들뜨지 않는 마음, 최유리)
4. 판타지가 아닌 현실을 이야기한다.
느끼한 멜로가 아닌
끝나버렸을지라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나는 좋아한다.
“우리는 그거면 된다
사랑하는 마음 하나면 된다
또 멀어지다 울음 훔치는 것도
찰나의 순간일 뿐“
(우리의 언어, 최유리)
“할 말이 있어요 우리 이제 그만해요
내 몫은 내가 가져갈게요“
(할 말이 있어요, 짙은)
굳어버린 취향은 30대 중반 즈음 되면
이제 달라지기는 어려운 고유의 코드가 된다.
비단 그게 음악에서의 취향일 뿐일까?
종합 분석해보면 나는
‘솔직하면서도 EQ가 높고
메타인지가 잘 되는 담백 인간‘을
좋아하는 어른으로 자라난 것이다.
내 취향으로 꾸려둔 화단을 둘러보니
이미 가시 없는 그런 꽃들이 가득하다.
짧은 인생,
상처 주고 부딫는 것들에게서 멀어지리라는 꽃말패가
이 화단에 놓여있는 것을 보아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