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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신감 Nov 02. 2023

태국 치앙라이, 의사들의 모닝커피

살림남의 방콕 일기 (#185)


도심이 아닌 시골에서 병원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치앙라이 젼역에서 모여드는 환자로 앙라이 중심인 시계탑 주변은 년중무휴 24시간 고막이 터질듯한 사이렌 소리 함께 엠블란스 로를 제집처럼 드나든다. 그래서일까. 치앙라이 도심 병원 앞 제법 큰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일상의 바쁨이 있고 고단함이 있고 힘듦이 있는 곳에 항상 카페가 있다. 태국의 카페는 누군가에게 휴식처가 되기도 안식처가 되기도 하며 피난처가 되기도 한다. 오전 8시 병원 주변은 환자와 출근하는 근로자들로 항상 붐빈다. 도로 양옆에 설치된 인도를 점포 삼아 길거리 식당이 펼쳐지며 병원 앞은 차와 사람으로 한바탕 전쟁을 치다.


느긋함이라고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시간이 흘러 오전 9시, 사람들은 각자 자기 위치로 돌아간다. 병원 앞 인력거 할아버지들도 모처럼 그늘에 앉아 마른 종아리를 주무르고, 새벽 일찍 찐빵을 팔던 상인도 텅 빈 큰 찜통을 가볍게 픽업용 트럭에 싣는다.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음식을 팔던 식당도 약간의 여유가 있어 보인다. 분주함이 사라진 틈사이로 작은 카페가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치앙라이의 인기 많은 로스터리 샾에서 만든 병원 앞 작은 카페. 그곳의 안과 밖은 병원처럼 온통 하얀색이다. 약 20평 크기의 카페 공간 중 절반을 바리스타 바로 만들어 놓았다. 그 바에는 3명의 여성 바리스타들이 쉴 틈 없이 주문을 받고 커피를 만들어 낸다. 각각의 공간에서 자신이 맡은 주문을 정확하고 섬세하게  처리한다.


외국인들은 찾아볼 수 없고 오직 현지인들을 위한 특히 병원 관계자들을 위한 로컬 카페이다. 몇 년 동안 유난히 힘들었던 의료 종사자들의 피로를 덜어줄 커피는 저렴하고 신선하다. 로스팅과 가공단계를 선택할 수 있는 원두만 5가지. 커피메뉴는 10여 가지가 훌쩍 넘는다. 여유란 찾아볼 수 없는 카페에서 복잡한 메뉴보다 아메리카노, 라테 등 기본 메뉴저렴하고 기다림도 짧다.


태국의 문화 수용성은 커피 메뉴에서도 잘 나타난다. 대표적인 태국식 커피인 Es-Yen과 호주에서 유래된 플랫화이트, 이탈리아의 라테, 미국의 아메리카노 등을 한 카페에서 만나볼 수 있다. 방콕에서는 100밧(4천 원) 가까이하는 플랫화이트를 50밧(2,000원)에 판매하고 있으니 고민할 필요 없다. 직접 로스팅, 브랜딩 한 하우스 원두로 전문 바리스타가 만들어 내는 플랫화이트를 기대하며 내부를 둘러본다.


홀의 크기에 비해 탁자와 의자가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복잡하지 않은 5개의 탁자는 대기석처럼 느껴지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주문해 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기다렸던 플랫화이트가 나온다. 잔이 넘칠까 아슬아슬하지만 진한 농도로 흔들림에도 넘치지 않는다. 바쁜 와중에도 예쁜 라테아트로 장식해 그냥 마시기 미안하다. 라테보다 묵직한 바디감의 플랫화이트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2악장처럼 감미롭고 차분하.


아침 업무로 바쁠 시간. 하얀 가운을 입은 5~6명의 의사들이  들어온다. 시골 치앙라이에 활기찬 대학 앞 카페처럼 젊은 의사들의 등장 신기하다. 약간의 긴장감과 피곤해 보이는 얼굴, 하지만 결코 남루하지 않다. 월요일 아침 때문일까? 아니면 밤을 새서일까? 마도 새벽 내내 드나든 앰뷸런스 소리로 간밤의 그들의 수고로움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북방의 작은 도시 치앙라이 속 작은 로컬 카페. 아침, 오후, 저녁, 새벽을 수고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향기롭고 풍성한 커피 한잔을 정성스레 대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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