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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몬디 Oct 22. 2023

번외) 내가 1년 전 여행기억으로 에세이를 쓴 방법

이렇게 까지 에세이를 쓴 이유

내 글을 읽는 지인들에게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여행을 글로 어떻게 이렇게 표현해? 보통 일기처럼 뭐 했다, 뭐 했다 이 정도로 떠오르는데 어떻게 감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냐고? 다 기억이 나긴 하냐고. 


맞는 말이다.


벌써 1년이 다되어간다. 지금 연재 중인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을 다녀온 지.


1년 전 기억으로 글을 적는다는 건 꽤 힘든 일이다. 기억에 남는 순간은 있어도, 모든 날 모든 순간이 선명하진 않을 것이기에.


당시 내가 가져간 거라곤 충전을 하면 1시간 안에 반절이 닳아버리는 구식 아이폰 7 하나. 이런 글을 쓰게 될지도 몰랐으니 메모나 일기를 쓴 것도 없고.


모두 하나하나 떠올려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조금 독특한 방식으로 이 여행 매거진을 연재하고 있다. 


우선 나를 전적으로 믿기보다는 글을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다. 샤워를 한 뒤 아끼는 잠옷과 가죽 슬리퍼를 신고 안경을 쓰는 것. 늘 깨끗이 정리된 책상에 앉아 조명을 켜는 것. 퇴근 후에 홈오피스로의 또 한 번의 출근.



이 행위를 통해 스스로에게 '내가 지금부터 글을 쓸 것'이라고 선언하는 셈이다.


이제 당시 찍었던 사진을 훑어보고 그날 분위기와 비슷한 음악을 하나 고른다. 이 음악이 마치 향수처럼 그날의 기억을 훅 떠오르게 만드는 매개체가 된다.


음악을 들으며 사진을 계속 계속 본다. 

 

눈을 감고 1인칭으로 떠올려 본다.


내가 그곳에 걸어가는 동안 내딛는 발걸음, 그날의 날씨, 입었던 옷, 만난 사람들, 촉감까지. 


최대한 생생히 떠올려본다. 그날 하루를 처음부터 끝까지 상영해 본다. 내가 지금 그곳에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이 단계를 지나면 이제는 뭐가 됐든 생각을 비우고 일단 적기 시작한다. 부담을 내려놓고 일단 써 내려가야 한다.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불필요하게 집착하며 지우지 않는다.


생각 없이 써 내려간 글들은 여러 번 보면 볼수록 계속해서 영감이 떠오른다.


물론 예외는 있다.


당사자인 내가 느끼기에도 별 감흥 없는 에피소드나, 술술 적게 되는 글이 아니라 글을 위한 글을 적는 기분이 든다면 그 에피소드는 과감히 버린다. 글에 대한 내 부담은 어떻게든 구구절절 드러나기 마련이고 그걸 독자분들이 느끼는 순간 그 여행은 함께 할 수 없는 것 같아서


또 머리가 복잡할 때는 글쓰기를 그만둔다.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서 달리기를 한다. 달리기를 하다 보면 그렇게 머리를 쥐어짜도 떠오르지 않던 표현, 소재들이 떠오른다. 또는 기분이 좋아지는 영상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온전히 기분 좋게 휴식하기도 한다. 고민을 놔버렸더니 오히려 영감이 찾아온다. 



이 정도로까지 이입해서 글을 적는 이유는 있는 그대로 모든 느낌을 공유하고 싶어서이다. 


나 혼자만 신나서 떠들고 독자를 따돌리는 글을 쓰고 싶지 않다. 또 그렇다고 해서 내 여행을 작위라는 색으로 덧칠해서 그려내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이렇게까지 몰입을 거듭해서 쓴다.


그래서 이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기를 쓰는 동안은 나도 1년 전에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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