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이 내게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마지막 이야기
16박 17일의 긴 스페인&포르투갈 여행이 끝이 났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책상을 치우고 구조를 바꿨다.
브런치 북
<내가 돈이 없지 낭만이 없나> by 시몬디
마지막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오늘의 글과 잘 어울리는 노래
https://youtu.be/1MWZBzuRysg?si=TQkXg_jUULSIGxDr
16박 17일간의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이 끝났다.
내 첫 유럽여행.
20대의 마지막 여행.
현관을 나가는 것 힘들었던 시기에, 모순되게도 가장 멀리 떠난 여행.
혼잡한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광장.
낯선 길거리, 익숙지 않은 생김새에 둘러싸여 있는 것조차 잔뜩 긴장 됐던 처음 내 모습.
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이긴 싫어.
나의 서툰 스페인어로 용기 내어 표현했던 감사 한마디에 기뻐하던 사람들. 낯선 곳에서 낯선 이에게 미소로 다가간 순간들. 분명 나는 사람이 싫다고 했는데 점점 그들을 원하게 됐다.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과 교감은 늘 새로운 자극을 준다. 미소로 화답한 이들과 나눴던 행복한 기억. 나에게는 그게 여행의 전부였다. 기억에 남는 순간에는 항상 사람이란 존재가 있었다.
사람은 결국 또다시 사람을 원하게. 필요로 하게 되어있다.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무기력해져 혼자가 좋다던 나는 어느새 이 여행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원하고 있었다.
친했던 지인들과 오랜만에 하는 연락, 현관 밖을 나서는 것조차 어려웠던 나는 이 여행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다시 원하고, 그들의 기쁜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그들을 위해 움직였다. 사람을 만나면 만날 수록 꽉 닫힌 우리 집 현관문 마냥 닫혀있던 마음이 풀어졌다. 무기력함에 잊혔던 나의 밝고 해맑은 모습이 나오길 시작했다.
그래. 사람은 사람과 함께 살아야지.
한국에서 17시간 떨어진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여행을 하면 할수록,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들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의 교감은 나를 점차 대담해지게 만들었다.
쑥스럽지만 스페인어로 건네었던 칭찬, 광장에서 함께 비눗방울을 만들고 춤추고 노래하며 놀았던 모로코, 알바니아, 프랑스에서 온 친구들. 내가 이곳에서만큼은 이토록 적극적인 사람이 되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17시간을 걸려서 온 타국에서도 이렇게나 잘 지낼 거면서 고작 현관밖을 나서는 건 왜 그리도 두려웠는지. 우주의 먼지만큼 작은 내가, 티끌 같은 고민을 하는 동안 세상은 이렇게나 잘 돌아가고 있었는데. 지친 회사생활 스트레스와 무기력에 감춰져 있던 나의 밝고 따뜻한 모습이 조금씩 내비치는 듯하다. 잊고 있었던 내 모습을 조금씩 마주 하고 있다. 맞아 나도 꿈이 있고 씩씩하고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세상 어디든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하구나. 이런 사람 저런 사람도 있구나. 이런 상황에서도 저들처럼 행복해 할 수 있구나. 꼭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 게 정답은 아니구나. 꼭 '그' 회사여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꼭 '직장인'으로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구나.
무슨 일을 하든, 무슨 상황이든 간에 그저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니 내가 가지고 있던 문제가 너무나도 티끌 같았다. 그래 모든 일에 정답이 있는 게 아닌데.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그들은 모두 각자 다른 일과 인생을 살면서 그럭저럭 잘 지내는 듯했다. 한때 빛나는 초롱한 눈으로 회사 일을 멋있게 해내고, 인정받았던 난데.
'난 부족한 게 없어. 잘살고 있어. 내가 이렇게 무기력해할 이유가 없어.'
그저 하나씩 하기만 하면 되겠다.
앞으로 뭘 하고 살아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서른을 앞둔 지금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일들에 주눅 들고 지쳤던 나, 이 여행이 내 삶에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이제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집에 오자마자 나는 책상의 먼지를 닦고, 정리한 뒤 구조를 바꿨다.
인터넷에서 글, 영상, 사진으로 나를 표현하는 내게 가장 중요한 작업공간을 앉고 싶게끔 만들었다. 주저했던 일을 시도하기 위해 제안 메일을 여러 군데 보냈다. 미뤄왔던 유튜브를 시작하기 위해 대본을 쓰고, 영상을 촬영했다. 완벽주의와 비관에 갇혀 그만두었던 인스타그램에 다시 콘텐츠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생활을 좀 더 규칙적이고 활력 있게 만들기 위해 내 일 과 병행 할 수 있는 파트타임 일을 구했다.
다시 세상에 나설 용기를 낸 게 올해 2023년 1월이었다.
9개월이 지난 2023년 10월 현재. 나는 몰라보게 성장했다. 아니 아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있어 보이는 일 말고 진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 내가 정말 원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도 안다. 그 가치를 만족시킬 수 있는 20개의 구체적인 목표가 있다. 이루어진 것도 있고,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 일상에서 불필요하게 감정소모하거나 인상을 쓸 일이 없다. 어차피 잘 될 거 아니까.
- 아침에 눈을 뜨는 게 즐겁다.
- 하루의 시작이 스마트폰과 배달음식이 아닌, 명상과 스트레칭, 독서가 되었다.
- 원하는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인상이 좋아졌다.
- 더 나은 외모를 가지게 된 건 물론, 주변 환경과 사람이 완전히 바뀌었다. '성장'이라는 나와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는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늘 많다.
- 달리기 1분을 못 뛰던 내가 35분을 뛴다. 인터넷, sns, 유튜브에서 무의미한 서핑을 하는 일이 없다.
- 자기 계발 스터디를 시범 삼아 운영하기 시작했다.
- 부동산 경매란 걸 배우고, 낙찰을 받아 내 소유의 토지를 소유하게 될 뻔했다.
과거 내 모습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 에세이가 마지막 이야기까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완벽주의에 휘말려 세상에 내보내지 못한 글만 수백 개 일 테고.
'이거 한다고 잘 되기나 할까. 이렇게까지 할만한 이유가 있을까'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너무 쉽게 끈기를 저버렸을 테다.
무기력하고 침대와 한 몸이었던 나. 책상에 앉는걸 너무도 힘들어했던 내가 자는 시간 말고는 이제는 책상 앞에만 앉아 있다.
완벽주의를 버리고 두 달 동안 거의 매일 글을 썼다.
막막하고, 결과가 어떻게 될지, 나한테 도움이 되기나 할지 한 치 앞도 모르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그냥 묵묵히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 이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 이것만으로도 스스로의 약속을 지켰음을 증명한 셈이다.
' 이 여행이 내게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아팠던 스물아홉 살의 내가 5일 만에 떠나게 된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 그리고 이 여행은 결국 기대대로 되었다 전환점이.
이 여행 에세이는 과거 저와 같이 방황하고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청춘들을 위해 세상에 나왔습니다.
불확실함으로 써 내려갔던 저의 에세이를 읽어 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는 시몬디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공유하는 이야기, <나는 혼자 돈벌기로 했다>가 연재됩니다.
브런치 북
<내가 돈이 없지 낭만이 없나> by 시몬디
마지막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