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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몬디 Oct 22. 2023

#16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가도 미련 없어

다른 건 모르겠고 컵라면이랑 삼각김밥 먹고 싶어.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여행자입니다. 


3년 전 한국에 방영되었던 TV 프로그램 속 장면이 매우 인상 깊어 이곳까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혹시 가능하다면 그들이 앉았던 좌석으로 예약할 수 있을까요?'


complete. 


요청을 보냈다.



브런치 

<내가 돈이 없지 낭만이 없나> by 시몬디



그날의 리스본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

https://youtu.be/lVISeGcRvUg?si=SdbvZV9kWSLLvuEj




리스본에 울려퍼진 메리 크리스마스



호시우 광장의 산타 열차는 리스본 도심을 달린다.


아기자기한 장난감 열차처럼 생긴 크리스마스 열차에 올라탄 사람들은 모두 웃고 있다. 서로를 마주 보며 달리는 열차 덕분에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웃음이 터진다. 캐럴을 들으면서 동심으로 돌아가 길거리의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길을 가는 행인들은 캐럴을 틀고 아이처럼 웃으면서 열차에 차있는 우리를 신기하게 보더니, 이내 함박웃음을 짓는다. 우리를 따라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사람,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


그날 리스본 시내에는 캐럴과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는 목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비눗방울로 행복을 파는 남자



코메르시우 광장에는 비눗방울이 떠다닌다. 


남자는 크고 작은 비눗방울들을 계속 그려내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든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탁 트인 광장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계속 떠다니는 비눗방울, 존재자체로 사랑스러운 아이들은 그를 따라다니며 즐거워한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우리도 즐거워했다.


남자는 비눗방울이 아니라 행복을 여기저기 날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그 자리에 앉아도 될까요?


긴 시간 동안의 여행에 지친 우리에게도 리스본에서는 꼭 해야 할 버킷리스트가 하나 있었다. 비긴어게인 포르투갈팀이 공연을 했던 파두하우스를 찾아가는 것. 



파두는 바다와 함께 살아온 포르투갈 사람들의 애절함, 그리움, 한의 정서를 녹여낸 노래라고 들었다.


아늑한 공간에서 코스 요리를 먹으면서 가까이서 육성 라이브로, 애절한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궁금증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방송에서 비쳤던 그 공간의 분위기와 흡입력이 궁금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여행자입니다. 3년 전 한국에 방영되었던, 한국인 5명이 리스본을 돌아다니며 버스킹을 하는 TV 프로그램 속 장면이 매우 인상 깊어 이곳까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혹시 가능하다면 그들이 앉았던 무대 앞 좌석으로 9시에 예약할 수 있을까요?' 


파두하우스에 예약 요청을 보내고선 오늘을 기다려왔다. 


오랜 여행에 지쳐버린 우리지만 깔끔하게 나름 격식을 갖춘 복장으로 파두하우스에 방문했다. 


그들 또한 비긴어게인 버스킹팀에 대한 기억이 좋았는지 우리가 원했던 자리, 무대바로 앞에 앉을 수 있었다.  



파두하우스는 생각보다 더 고풍스럽고 정숙한 분위기에 살짝 긴장이 될 정도였다. 주변 테이블을 둘러보니 우리처럼 현지인이 아닌 우리 같은 관광객들의 기대 어린 시선이 느껴졌다. 그들도 리스본 여행 중 오늘 이날을 위해 시간을 내고 왔을 테다.




한 여자가 걸어 나와 간단히 소개를 하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마이크 없이 육성만으로도 홀을 압도하는 목소리. 영어가 아닌 포르투갈어로 부르는 노래는 내용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파두답게 애환이 가득 서린 절절한 목소리만으로도 모두가 몰입했다. 노래가 끝났을 때는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한국 노래를 듣고 감동받는 외국인들의 심정은 어떨까' 항상 궁금하곤 했는데 이런 심정이었을까. 


이국적인 향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비싼 값을 낸 음식을 거의 먹진 못했지만, 파두를 들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컵라면에 삼각김밥 먹고 싶어


나는 정말 좋은 시기에 첫 유럽여행을 왔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이 열리는 시기, 그리고 로망의 끝판왕이라는 유럽의 크리스마스를 체험할 수 있는 시기.


여행의 마지막밤 인 오늘은 2022 카타르 월드컵 브라질전이 있다. 얼마 전 포르투갈에서 봤던 포르투갈전이 너무 재밌었던 만큼 빨리 숙소에서 브라질전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신라면을 끓이고, 이번 여행에 처음으로 구한 햇반과 김으로 식사를 했다. 평소 좋아하지 않는 신라면이 여기서는 왜 이렇게 맛있는지 먹을 때마다 의문이 들 정도다. 특히 2주 넘게 한 번도 구경하지 못했던 흰쌀밥과 김이 너무 맛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삼각김밥 꼭 먹어야지. 특별한 음식 딱히 필요 없으니 편의점이 정말 가고 싶다. 그냥 컵라면에 삼각김밥. 그게 먹고 싶다.


경기의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전 세계의 관광객이 모이는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전 세계 축제인 월드컵의 열기를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일이다. 어딜 가나 축구경기를 모여 함께보고, 거리 곳곳에 함성이 터지고, 묘하게 떠 뜰썩한 거리분위기 속의 나는 이 여행이 더욱 설레었다.


우리는 드디어 내일 새벽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탄다.


2주간의 여행을 하는 동안 막바지에는 체력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고 피곤했다. 매일 고민해야 하는 식사, 일정, 쫓기는 시간에 지쳐있었다. 


정말 이제는 한국으로 가도 아무런 미련이 없다. 내가 빨리 여행에서 느낀 것들을, 그리고 '나'를 어서 빨리 세상에 드러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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