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몬디 Oct 14. 2023

#12 축하해. 사실 안 축하해

난 애써 웃어 보이며 불편한 잡념을 숨겼다.


아, 여행이 너무 행복해서 잊고 있었다.


부드러운 스테이크를 씹고 와인을 한 모금 삼키는 와중에도, 모든 게 기분 좋은 이 순간에도, 내 속에서는 오묘한 감정이 뒤틀리고 있었다.


난 애써 웃어 보이며 불편한 잡념을 숨겼다.


미안. 난 사실 안기뻐



브런치 북

<내가 돈이 없지 낭만이 없나> by 시몬디



이 날의 여행을 떠올리게 만드는 노래. 함께 들어보세요

그대가 이렇게 내 맘에 - 이소라

https://youtu.be/TLn5LLJvM7o?si=Htl0BsUzz9Xr1CgT




뛰어야 한다.


노을이 지는 히베이라 광장을 보려면.


벌써 져버리기 시작한 포르투의 노을은 이런 내 맘을 모르는지 분홍색, 연보라색 물감을 한껏 더 진하게 적셔보인다.


드디어 3년 동안 기다린 히베이라 광장을, 스크린 너머로 그렇게 꿈에 그리던 그곳을 보러 가는 길이다.


온통 분홍빛으로 번진 노을의 향연 속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다가가면 멀어지는 신기루 - 히베이라




일몰을 놓칠세라 급하게 뛰어나간 우리에게 세상의 모든 이쁜 것들을 모아 펼쳐 보이는 포르투의 노을. 


핑크빛 노을이 내 시야 가득히 넓게 펼쳐져있고 에펠탑을 닮은 철교, 곳곳에 앉아서 자기 방식으로 이 순간을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인 best part를 부르는 버스킹까지. 


이런 사기적인 배경으로 단독 버스킹을 하다니. 반칙이야 이건






포르투 히베이라 광장은 신기루 같다.


날 환상으로 유혹해 놓고, 우여곡절 끝에 겨우 와닿았는데 또 한 번 멀어지는듯한. 


그렇게 여전히 내 환상 속에 존재하는 그런 곳이다. 너무 아름다워서 내가 보고 있는 것이 꿈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름답다. 


신기루처럼 내 환상 속에 늘 존재하고, 실제로 봐도 환상 같은 곳.


느긋한 속도로 지는 노을과, 여유로운 광장의 분위기는 그 자체로 내게 위로였다.


그래 마치 지금 그렇게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들에 예민하지 않아도, 그냥 지금 그대로여도 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저 가만히 서서 노래를 들으며 강변을 바라봤다.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하듯 동행도 아무 말 없이 내 옆에 서있다. 우린 사진을 찍지도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서있었다.




"우리 아주 멀리 여행 가자"


그래 까짓 거 돈이야 다시 벌면 되지. 


훗날 돈으로 살 수도 없는 감흥과 낭만이 없는 사람이 돼버리는 게 내겐 더 두렵고 슬픈 일이다.


그렇게 5일 만에 떠나온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


여행을 하다 보면 내가 너무 작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정말 티끌 같은 걱정 때문에 이런 순간을 즐기지 못할 뻔했다는 게 너무도 가소로워 잠시 미워질 뻔했다. 모든 게 제자리에 있는데 난 왜 그리도 주저했을까. 노을을 한참 바라보고는 생각에 잠겼다.


사실 나에게는 아직 풀지 못한 숙제가 있다. 이 여행을 오게 된 진짜 이유가 있다 내게.






축하해. 아니 안 축하해



아침에 눈을 떴는데 동행이 보이질 않았다. 종종 잠결에 외로움을 타는 나는 순간 놀라 1층을 바라보니 창가에 혼자 앉아있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1층으로 내려왔다.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밖을 바라보는 뒷모습에서 나는 평소와는 약간 다른 기운을 눈치챘다. 일찍부터 일어나 무언갈 신경 쓰고 있었던 눈치다.


"합격했어"

"뭐가?"

잠이 덜 깨서 어리둥절한 내가 다시 한번 물었다.


"취업했어! “


여행 도중 전혀 티를 내지 않는 통에 잊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도 합격 결과발표를 신경 쓰고 있었나 보다. 얼마나 떨렸을까 싶어 조금은 안쓰러워졌다.



그는 나에게 취업 기념 스테이크를 사주었다.


"취업 축하해!" 


짠하고 잔을 경쾌하게 부딪혔다.


살면서 먹어본 스테이크 중 단연 1등이다. 비싸고 좋은 레스토랑, 친절한 대우, 그리고 기쁜 소식까지. 취업이라는 시작의 발걸음을 내디딘 동행은 내내 행복한 듯 웃고 있다.


그렇다 오늘은 정말 좋은 날이다. 이 상황이 그다지 기쁘지 않은 나만 빼면.


미안. 사실 난 안 기뻐






불편한 이야기


지금 내 기분이 유쾌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려면 2년 전 이야기를 해야 한다.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불편하지만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시기.


오피스룩. 멋있게 해내는 pt발표. 퇴근 후에는 운동이나 자기 계발을 하며 가끔 여행하는 라이프스타일


학생 때 쉽게 떠올리는 성공한 커리어 우먼 하면 떠오르는  것들.


나도 멋있는 회사원이던 때가 있었다. 그것도 유망받는


늘 깔끔한 오피스룩을 차려입고, 늘 바쁘지만 계획대로 일을 해내고, 똑똑한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고, 그들에 비해 많이 뒤처진 듯한 내 모습에 더욱 자극받으며 '더 열심히, 더 열심히'를 외치며 참 바쁘게도 살았다. 덕분에 그리 오래가진 못했지만.


완벽주의자인 나는 직장에서도 흐트러짐이 없길 스스로에게 원했다. 


출근길에는 영어 듣기, 업무시간에는 잡담을 줄이고 업무에 집중했고, 점심시간에는 식사를 빨리 하고 돌아와 자격증 공부나, 토익 공부를 했다. 저녁에 퇴근을 하면 곧장 토익학원으로 가서 수업을 듣고 집에 오면 10시. 그때마저 공부를 하고 잠들곤 했다. 그 와중에 더 좋은 곳으로의 이직 준비도 함께 했다. 그리 바쁜 업무를 하면서도 한 달에 한번 이상 자격증 시험에 응시했다


상사들은 나를 인재라고 불렀고 앞으로가 기대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주변에서 '저분이 저렇게 해주시는 거 처음 본다'라고 말할 정도로. 애정과 인정을 받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신입.


그때는 그게 좋은 건 줄 알았지.






내가 바란 20대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난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커리어를 갖고 싶었다. 하지만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지쳐갔다.


상사의 지지와 칭찬을 받는 나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잘해주지 않는다는 교육을 신입인 나에게 일주일간 지원해 줬을 때도, '그 직원 되게 이쁨 받나 보다' 같은 말이 내돌았다. 신입을 소개할 때 시켜서 대답을 한 것뿐인데 주목을 샀고, 뒤에서 관심을 받았다. 이전 직장과 다르게 개인주의 성향이 짙고, 젊은 사람이 대부분인 이곳에서 난 조용히 있으래도 있을 수가 없었다. 업무 능력, 외모, 이전 직장 등 나에 대한 시답잖은 말이 나돌았다. 사람들은 남에게 관심이 참 많다. 나는 선을 넘는 관심이 불편했고.


"제가 뭐 도와드릴까요?"


호의와 열정으로 보낸 말은 당연함이 되어 돌아왔다. 눈을 초롱이며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솔선수범했던 나는, 더 이상 아무의 관심도 사고 싶지 않아서 흐리멍덩한 눈과 무표정으로 쌓인 일만 하기 시작했다. 사사로운 이야기들에 귀를 닫고 입은 더욱 닫았다.






니 일은 니 일, 근데 나의 일도 니 일


퇴사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잠시 다른 팀의 동기와 업무 얘기를 하던 중이었다.


"와 오늘은 일 되게 없네요"

동료 컴퓨터 바탕화면 메모장에 적혀있는 매우 소박한 업무 리스트를 보고 내가 말했다.


"아니요? 평소에 비해서 일 많은 편이에요"


내가 하던 일에 비하면 매우 단순하고 적은 양의 업무였다. 그녀는 나와 같은 날 입사한 동기다. 당황한 내가 평소 하는 일을 간단하게 말했더니 그걸 어떻게 하냐며 놀랬다 양의로도 난이도로도.


퇴사를 앞두고 알았다. 


나는 과중업무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걸. 당연하다 신입에게는 중요치 않은 수준의 보조 업무를 주는 게 맞으니까.


잘한다 잘한다 하며 배울 수 있는 일을 쥐어주던 팀장은 일감을 마냥 던져 주기 시작했다. 본인이 하기 귀찮은 것들. 나는 팀장과 팀원, 내 일 까지 모두 돕고 병행해야 했다. 정작 내 일은 네가 알아서 하라며 신경 쓰지 않았다. 계산적이지 못하고 모든 일에 열심인 나는 참 열심히도 했다.


'니 일은 니 일, 내 일도 니 일'


입사 한 지 일주일 만에 나는 팀장의 사업 보고서까지 작성했다. 나는 업무 관련 경험이 많고 주체적으로 일을 잘한다는 이유로 과중 업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상사는 본인의 일까지 내게 미루었다. 큰 규모의 나랏돈으로 운영되는 사업을 모두 내가 알아서 하길 바랐다. 난 2개월 차 신입이었다.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사수는 늘 다른 팀의 일을 나서서 도와주느라 자리에 없었다.


난 다양한 일을 배우고 싶었던 거지 노예가 아냐.


심지어 상사는 무례하게 구는 직원의 말을 나에게 사사건건 불필요하게 옮기며 스트레스를 주었다. 내가 잘못한 상황도 아닌데 늘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고 다른 사람의 편을 들어주는 그런 사람, 내 상사였다.


내가 퇴사하기 전 자리마다 인사를 다닐 때 한 분이 내 손을 잡으며 이런 말을 하셨다.


"아후 그 팀장님이랑 일하느라 진짜 힘드셨죠? 말 안 하셔도 저희 다 알아요. 저 팀장님 밑에서 일하는 거 힘든 거 전부 알아요.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말을 아끼면서도 짧은 말로 내 모든 걸 알아주는 사람.

 

이 말이 가장 큰 위로였다.





내가 너를 축하할 수 없는 진짜 이유


퇴사를 하면서 내 가치관은 송두리째 변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더 이상 직장인으로 살지 않기로 결정했다.


사실 퇴사 후 쉴틈도 없이 바로 어학 공부를 시작하고 자소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득 혼란스러웠다.


'회사가 싫어서 퇴사를 해놓고 왜 다시 이직 준비를 하는 거지? 뭐가 달라진다고?'


상상해 봤다. 


지금 원하는 곳에 취업을 한 내 모습을. 합격의 일시적 기쁨이 지나간 후의 모습. 무미건조하고 막막했다. 심지어 얼마 전까지 이미 다 겪어본 것 들의 도돌이표.


그리곤 깨달았다. 


그때 내가 원했던 건 진정으로 가슴 뛰는 '일과 삶'이 아니라 그냥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어디 어디 다니는 누구'라는 '타이틀'이었다. 그 타이틀은 거머쥐는 순간 곧장 추락해 산산조각 날 테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좋아'보이는' 일을 하는 건 가슴 뛰고 행복한 인생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난 내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여태 직장인으로만 살아왔던 내가 혼자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까마득하지만.


1년 전까지만 해도 직장인이었던 나, 학생이었던 너.


그리고 이제는 반대로 직장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독립을 택한 나. 이제 직장으로 들어가서 회사에 충성심을 가지고 헌신할 기세로 온통 충만해져 있는 너.


직감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은 회사를 내 것 인 마냥 필요이상의 소속감과 유대를 느끼며 전력을 다할 거라는 거.

내 앞에서 이제 모든 앞날이 편할 거라는 듯 마냥 웃는 널 보면서 묘한 쓰라린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우리 앞날에 많은 변화가 찾아오겠다는 생각이 들어 솔직히 기쁠 수만은 없었다.


진심으로 축하를 할 수 없다. 해야 하는데 할 수 없다.






나조차도 모른다


또 성과를 잘 내고 있는 너를 보면서 한편으론 내가 걱정스러웠다.


'요즘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자격증 시험도 치고, SNS 활동도 시작하고, 내가 배우고 싶었던 전문분야를 배우며 프로젝트를 잘 해내기도 하고, 체력을 올리려 달리기도 하고. 계속해서 이런저런 조각 같은 시도를 하면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하지만 한 치 앞도 모르는 내 미래를 믿고 무언가 꾸준히 지속하는 게 힘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뭘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좋다고 해서 시작은 했는데 이걸 한다고 해서 잘 될지. 끝없는 불확실함과 끈기와 싸워야 했다. 도움 받을 사람 없이 혼자서 깜깜한 동굴에서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노를 젓는 것 같았다.


아무도 모른다 나만 안다 내 삶의 방향성은. 


그런데 나조차도 모른다. 씁쓸해졌다.


집에서 혼자 지내다 보니 그렇게 눈빛이 빛나던 나도 자신감이 바닥을 기었다. 침대 위에 무기력하게 누워서 자기 계발 영상을 보는 모순 적인 사람. 그게 나의 일상이 되었다.


세상에는 잘난 사람들이 참 많다. 나도 빨리 저렇게 되고 싶은데. 언제쯤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의지는 있지만 나약한 사람. 그래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더 힘든 나.


지금이야 이렇게 웃으며 말하지만 사실 꽤 심각했다.


퇴사 후에도 화병이 가라앉질 않아서 꿈에서 자주 그 사람들을 마주쳤다. 한 입만 먹고 남겨놓은 배달음식이 냉장고와 싱크대에 가득 쌓여있었고, 샤워도 잘하지 않게 되었고 집이 깨끗할 리 없었다. 호기롭게 퇴사해 놓고 지금의 내 모습이 초라한 것 같아 지인들의 연락도 피했다. 그들은 내 빛나던 모습을 기억할 테니. 2주에 한번 집 밖을 나갈 정도로 가까운 편의점조차 가는 게 어려웠다. 호기롭게 책상 앞에 앉았다가도 진이 빠져 금방 침대에 드러누웠다.


여행이 너무 행복해서 잊고 있었다. 난 또다시 그 네모난 방 안으로 돌아가면 뭘 해야 할까.


직장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독립을 택한 나와, 직장이라는 굴레에 이미 도취된듯한 너. 다른 길을 택한 앞날은 어떻게 달라질까.


부드러운 스테이크를 씹고 와인을 한 모금 삼키는 와중에도, 모든 게 기분 좋은 이 순간에도, 내 속에서는 오묘한 감정이 뒤틀리고 있었다.


난 애써 웃어 보이며 불편한 잡념을 숨겼다.





부디


그렇기에 갇혀있던 방안을 벗어나 생애 첫 유럽여행을 온건 꽤나 큰 도전이다.


무기력하고, 빛나던 순간들이 온 데 간데 없이 자신감을 잃은 내게 이 여행이 부디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영감을 얻고, 내가 가진 정말 사소한 고민들의 굴레와 집 밖을 벗어나, 17시간 떨어진 이곳에서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돌아가길 스스로에게 바란다.


그리고 한없이 나약한 시절의 내 이야기가, 지금도 방 안에서 힘겨워하는 50만 명의 청춘, 많은 사람들에게 응원이 되길 바란다.


고마워, 같이 여행 가자고 해줘서










포르투 두 번째 이야기

히베이라 광장 노을과 나 끝.






이전 11화 #11 꿈에 그리던 집을 포르투에서 만났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