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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몬디 Oct 11. 2023

#11 꿈에 그리던 집을 포르투에서 만났다.

꿈의 집에서 보낸 꿈같은 일주일


"넌 아무런 제한이 없다면 어떤 집에 살고 싶어?"


"음 나는 뷰가 좋았으면 좋겠어. 산이나 강이 보였으면 좋겠고, 내부는 전체적으로 따뜻한 크림화이트 톤이 좋아. 거실에 있는 사람을 보며 대화하고 요리할 수 있는 주방, 특이하고 재밌는 각진 천장도 있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너무 넓은 건 싫어. 모든 공간이 트여있는 곳이었으면 좋겠어"


바라던 꿈의 집을 포르투에서 만났다.


꿈의 집에서 보낸 꿈같은 일주일 이야기



브런치 북

<내가 돈이 없지 낭만이 없나> by 시몬디



그날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 함께 들어보세요

You - Vietra

https://youtu.be/lVISeGcRvUg?si=rEtnZ4r7qVwjr8Ns




난 포르투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택시 창문 너머로 포르투를 구경하고 있다. 


한국의 밤보다 훨씬 어두운 포르투는 불빛도 사람도 무언가 딱히 보이지도 않아 아직 도착했다는 실감이 나질 않는다. 심지어 좁고 경사진 골목골목을 향해 가는 택시는 대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우리 숙소는 어떤 곳일까.


과연 이 작고 허름한 골목에 기대할만한 게 있을까?




철컥. 외관상으로 별다른 게 없이 평범한 1층 현관문을 열었다.


 캐리어를 끌고 카펫이 깔린 계단을 올라 맨 꼭대기층으로 간다. 빌라도 집도 아닌, 한국과는 도통 다른 층구조와, 잠금 방식 탓에 문을 여는데만 한참이 걸렸다. 문을 열고 또 한 번을 돌아 오르니 드디어 꿈꾸던 포르투 숙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너무 기다렸어 포르투






동루이스 강변이 보이는 집

 


숙소를 예약하며 봤던 사진보다도 훨씬 좋은 숙소에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정말 모든 곳이 마음에 들었다. 높은 복층과 다락방, 넓은 주방, 넓은 거실 너무 차갑지 않은 따뜻한 톤의 크림색 벽과 전구색 조명까지.


갑작스러운 예약으로 좁은 호스텔을 전전했던 그간 일주일의 여행을 보상받는 기분이다. 무엇 보다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창문으로 보이는 동루이스다. 


핀터레스트에서만 보던 빈티지 유럽식 창문.



귀여운 나무 창문을 양쪽으로 펼치면 이런 동루이스 강변이 보인다. 


맞은편의 와이너리와 귀여운 집들까지. 한국의 도시처럼 눈부시게 반짝이는 야경은 아니지만 은은하고 차분하게 드문드문 반짝이는 불빛이라서 더 좋다. 포르투의 가장 유명한 이곳을 집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질 않아서 한참을 강변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이곳에서라면 포르투여행도 좋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드디어 포르투에 왔다니






5000원짜리 봉지 신라면



내가 이 곳 포르투에 오게 된 이유가 있다. 


코로나가 시작되던 무렵 내 방 침대에서 봤던 비긴어게인 2 히베이라 버스킹. 노란불빛으로 일렁이는 강변을 배경으로 첫곡인 fly me to the moon 이 흘러나온 순간부터 포르투의 히베이라 광장이 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우리 포르투가면~, 포르투가서 ~ 하자' 스페인 여행와중에도  내 모든 관심사와 목적지는 포르투였다.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세비야, 그리고 여기 포르투 까지. 꽤나 긴 여정이였다. 새로운 시작을 기념하기 위해 어렵게 구한 신라면을 두봉 끓이고 비긴어게인 2 포르투 히베이라 버스킹 편을 틀었다.


이게 그 한 봉지에 5000원하는 귀한 신라면이다.


비행기를 타러 가는 촉박한 상황에서까지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뛰어가며 찾아갔던 외진 골목의 작은 아시안 슈퍼에서 귀하게 모셔온 손님. 까짓 거 기념이다. 오늘은 무조건 먹어야 돼


포르투에 도착한 첫날 끓여 먹은 신라면.






우린 매일 그렇게 창문 앞에 앉아서



이곳에서 맞이한 포르투의 아침은 더욱 환상적이다. 


눈을 뜨면 좁고 네모난 천장이 아니라 세모지붕의 창문과 하늘이 가장 먼저 보인다. 창문 사이로 은은하게 딱 적당히 내비치는 햇살을 맞으며 눈을 뜬다. 졸린 눈으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복층 유리 난간 너머로 아래 1층 창가에 앉아있는 동행이 보인다.




잠도 덜 깬 채로 계단을 내려오니 어젯밤 일렁이는 불빛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강변과 반대편의 아기자기한 빈티지 집들이 보인다. 


꽉 막힌 네모난 방, 하고 싶은 일이 아닌 해야 할 일들로 급하게 쫓기며 타의로 눈을 떴던 일상과는 다르다. 아침잠이 많고 무기력한 내게도 이곳의 아침은 좋다.




나는 아일랜드 주방에 있는 바의자를 두 개 가져와 창문 앞에 두고 잽싸게 앉았다. 넓은 식탁보다도  거칠고 조금은 낡은 이 창문이 더 마음에 든다. 더럽거나 거칠진 않을까 손으로 문질러본다.


‘다행히 가시 박힐만한 거친 나무는 아니네..’


겉보기엔 빈티지하지만 또 깨끗한 이 창문이 정말 매력적이다. 그러곤 선반에 팔을 올리고 한참을 밖을 바라봤다. 아직 잠도 채 덜 깬 채로 씻지도 않고 가장 먼저 하는 일. 내가 그토록 꿈꾸던 포르투에 와서, 그것도 집에서 이런 뷰를 보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슴 뛰는 풍경이다. 귀를 기울이면 갈매기 소리, 차 소리가 옅게 들린다. 


보고 있으면서도 보고 싶고, 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느낌을 안다 이젠.


나는 밖을 바라보다 문득 나가고 싶어졌다. 물론 뭘 할진 모르겠지만. 평소 계획적인 나는 이곳 포르투에서만큼은 계획을 하지 않았다.


"에그타르트 먹으러 갈래?"


재밌는 제안에 우리 둘 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포르투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 세수랑 양치만 한 뒤 트레이닝 복을 입고 나섰다. 스페인에서는 매일매일이 관광이었기에 아침에 큰 맘먹고 준비를 한 뒤에야 외출하고,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포르투는 온 지 12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어릴 때 살았던 동네처럼 모든 게 편안하게 느껴진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처럼 느긋이 즐길 수 있는 그런 정감 가는 곳이다. 우리는 무작정 동네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이전의 여행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자연스러움이다.




포르투갈은 여러모로 내 취향을 정확히 저격했다. 


유행 타고 반짝이는 거 말고 유니크하고 조금은 낡고 빈티지한 것들. 그런 것들이 가득한 곳이다. 빈티지 러버인 나는 싱글벙글하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호텔 조식 먹듯 나와서 먹는 에그타르트. 게다가 제대로 씻지도 않고 이렇게 편한 복장으로. 


달달하게 붕어빵 슈크림처럼 녹는 에그타르트를 오물오물 먹으면서 연신 웃었다. 편안한 옷, 편한 모습, 무계획. 이제야 진짜 편한 맘으로 여행을 즐기는 내 모습이 너무나도 맘에 들어서. 이런게 여행이지






포트와인, 오렌지, 감자칩 그리고 낮잠



집에 돌아가는 길 슈퍼에 들러 오렌지, 감자칩, 포트와인을 사 왔다.


에그타르트를 이미 배불리 먹고 온 우리는, 오렌지를 핑계로 또 한 번의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오렌지를 까먹고 입안이 달달 해질 때쯤 짭짤한 감자칩을, 그리고 다시 달달한 포트와인을 마셨다. 현실이라곤 믿기질 않을 정도로 이쁜 뷰를 보며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맘껏 즐거워했다. 


일정도, 신경 써야 할 일이 단 하나도 없이 즐기는 순간. 반짝이는 강변, 장난감처럼 보이는 느릿한 차들, 그리고 맞은편 지붕에서 우리와 자꾸 눈을 마주치는 동그랗고 뽀얀 갈매기들 까지. 행복해.


이른 시간부터 포트와인에 취해버린 나머지 우리는 복층으로 올라가 창문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생애 가장 황홀한 낮잠을 청했다. 이번 유럽여행에서 처음 자는 낮잠. 


아침부터 계획도 없이 씻지 않은 모습으로 거리를 돌아다니고, 낮잠을 잤다는 것 만 봐도 우리가 얼마나 이곳 포르투를 편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이 날 깨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내 생애 가장 행복하고 황홀한 낮잠을 잤다







매일 다락방에는 귀여운 손님들이 찾아온다.


아침잠이 많은 내가 잠에서 깨면 동행은 복층의 창문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있다.


"뭐 해?"

"조용히 여기와 봐"



이 집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 복층 침실 세모지붕에 나있는 창문으로는 귀여운 손님들이 온다. 


고양이가 누워 낮잠을 자기도 하고, 뽀얗고 동그란 갈매기들과 눈을 마주칠 때도 있다. 낮에는 새파란 하늘과 구름, 밤이 되면 별과 더 가까워지는 창이다. 일어났을 때나, 잠들기 전이면 우리는 꼭 이곳에 서서 그냥 밖을 바라보곤 한다.






너무 좋아서 두렵다



공간이 주는 힘은  대단하다.


나는 여기를 그저 며칠 지내는 숙소가 아닌 내 집처럼 느끼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쁜 세모지붕의 창으로 파스텔 하늘이 보이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기자기한 빈티지 창문으로 반짝이는 강변이 보인다. 매일 봐도 좋은 뷰를 조금이라도 일찍 감상하기 위해 저절로 눈을 뜬다. 창문 프레임을 선반 삼아 맛있는 것들을 꺼내 먹었다. 다락방 귀여운 손님들은 귀엽고 따뜻한 순간들을 더 자주 만들어주었고, 낭만적인 야경은 여행을 계획이 아닌 진짜 여행답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매일밤 따뜻한 저녁시간을 선사해 주었다.


포르투와 이 집을 사랑하고 있다. 곧 이곳을 떠나는 게 두려워질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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