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6일 차에 맞이한 고비
18시, 세비야 과달키비르 강변
적막을 깨고 내가 먼저 입을 뗐다.
" 한국 가고 싶어"
어느덧 스페인 여행을 시작한 지 6일 차.
이유 모를 감정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런 의욕도 없이 멍하니 앉아 도심을 바라볼 뿐이다.
우리 이 여행 잘 마무리하고 갈 수 있을까
브런치 북
<내가 돈이 없지 낭만이 없나> by 시몬디
그 날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
https://youtu.be/2N8TKXEaTfE?si=m5t09cGFBbJ9alM1
또 그 사람이다.
엊그제 그라나다에 도착했을 때 우리 앞에 서있었던 한국인
그라나다에서 세비야로 이동하는 오늘, 버스 터미널로 가는 버스 옆자리에서 또 만났다 그 사람을.
"저..혹시 한국인 맞으시죠?"
넉살 좋은 내 동행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동양인이 거의 없는 작은 도시에서 같은 한국인을 두 번이나 만난 건 꽤나 신기한 일이었으니.
가벼운 아는 채로 시작된 대화는 한참 동안 계속됐다. 심지어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는데도 같은 버스, 옆자리였다. 벌써 세 번째 우연,
그는 우리 여수에서 직장을 다니는 우리 또래 남자다. 이름은 정오.
"저희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세비야 있을 때 식사나 한 끼 해요"
"그러게요, 여기 언제까지 계세요?"
"저 이틀뒤에 포르투로 넘어가요"
"네? 저희도요"
우리 셋은 또 한 번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그렇다.
그는 우리와 같은 날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했고, 이틀 전 같은 날, 같은 기차를 타고 그라나다에 왔으며, 오늘도 두 번이나 같은 버스를 타고 세비야로 왔다. 어떻게 또 똑같은 날 똑같은 비행기를 타고 포르투로 간단 말인가. 그리고 그 모든 타이밍에 마주쳤다. 모든 여행 일정을 똑같은 교통편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을 계획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스페인은 소도시, 근교가 많기 때문에 취향에 따라 일정이 천차만별이다.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거 진짜 인연'이라며 연신 들떠서 대화하다 전화번호를 주고받고 헤어졌다. 참 신기한 인연이다.
오늘로써 벌써 이번여행에서 세 번째 도시 이동이다.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세비야까지.
우리는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고 오늘 하루는 그냥 아름다운 과달키비르 강변에 머무르기로 했다. 강변에 옷을 빠트려서 대걸레 막대로 건져내는 장면을 구경하기도 하고, 강변 위를 떠다니는 유람선도 보고, 적당히 잘 어울리는 노래를 하나 틀어놓고 드로잉을 한다.
며칠간의 여행에 약간은 지친 우리는 그냥 말없이 사각사각 그림을 그린다. 누가 그 순간을 지겨워하지도, 불평하지도 않고 그냥 말없이도 발맞출 수 있는 순간이 참 좋았다. 나는 연필, 너는 펜드로잉.
여행을 가면 하나부터 열까지 스타일이 달라서 싸우기 십상인데, 서로 말없이도 서로의 분위기와 온도를 알아채고 맞출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거 아닐까.
'난 이걸 하고 싶은데, 넌 어때? 넌 뭘 하고 싶어?'
상대가 이걸 싫어할까 모두 조심스레 물어보고, 맞춰야 하는 여행이 아니라 그냥 서로가 서로를 아는 여행.
건축을 전공한 너, 인테리어를 좋아하는 나는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감상이 아주 많다. 만약 내 동행이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헤비메탈 러버 인싸였다면 얼마나 내가 감당하기 힘들었을지.
다행이야 우리가 우리라서
어렸을 때 내게 정말 친한 친구가 있었다.
친구네 집에서 노는 게 너무 좋아서 매일 같이 놀러 갔다. 인형놀이, 그림 그리기, 숨바꼭질, 핸드폰도 컴퓨터도 없었던 그때 뭘 하고 놀았는지는 몰라도 모든 게 재밌었다. 오후 내내 놀다가 저녁 7시 포켓몬스터가 방영할 때쯤 집에 돌아가야 할 때면 매번 아쉬웠다.
'나도 여기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도 했을 정도로.
하루는 늦게까지 놀다 친구네 집에서 저녁밥을 먹게 됐고, 어느덧 밤이 찾아왔다.
보통 이 시간쯤이면 집으로 갈 시간인데. 엄마는 오늘 일이 있어 타지에 간다며 나더러 하루만 여기서 자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바라던 대로 친구집에서 자게 됐다. 내가 그렇게 바라던 하루. 보나마나 오래 놀면 더 좋겠지?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낮에 놀 때까지만 해도 좋았는데..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왜 내가 여기에 누워있는지 갑자기 모든 게 낯설게 느껴졌다. 당장 뛰쳐나가 집에 가고 싶었다. 어린 나이 7살이었던 나는 그렇게 밤새 숨을 죽여 울다가 지쳐 잠이 들었다.
매번 적당히 놀다가 돌아갔기에 좋았던 친구집. 오래 있으면 마냥 그만큼 더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늘 여기 세비야에서 그런 향수를 느꼈다.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온 세비야의 어둠은 이상한 감정을 함께 데려왔다.
"오늘 아무것도 계획안 했는데 이제 뭘 해야 하지.. 아 또 밥집 찾아봐야겠다.."
다소 풀이 죽은 목소리였다. 설렘이라곤 전혀 없는 목소리. 좀 전에 세비야에 도착해서 강변 구경하고 잠깐 그림그린게 다인데 이 도시에 적응되기도 전에 맞이한 밤은 서글펐다.
나는 이곳이 어디인지, 어떤 곳인지 아직 전혀 모른다. 또다시 이 도시에 적응해야 한다.
더 이상 매 끼니마다 찾아다녀야 하는 밥집 검색도 성가시다.
분명 어제만 해도 그라나다의 골목에서 춤을 추고 노래하고, 알함브라를 바라보며 도란도란 얘기했는데.. 갑자기 왜 내가 여기 있는지 헷갈린다. 따뜻한 노란 불빛의 그라나다가 벌써 그립다.
익숙해질 때쯤 하면 이동, 이동, 이동. 매번 짐을 싸고 숙소를 옮겨야 하는 떠돌이 신세, 사람들의 눈총을 받는 우리는 이방인.
"기분이 너무 이상해. 한국 가고 싶어"
이상한 기분을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손으로 직접 짠 여행이고 당연한 사실인데 왜일까 왜 이런 감정이 드는 걸까. 도시에 적응하기도 전에 찾아온 어둠은 더욱 낯설기만 했다.
"양식도 질린다 이제.... 한식이라도 먹어야겠어"
'오늘 뭐먹지' 같은 들뜨고 행복한 고민이 아니다. 이 이유 모를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그나마 한국을 찾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우리는 돌아가는 길에 피자와 맥주를 사서 외로움을 부여잡고 먹으며 함께 잠들었다. 모든 게 낯선 이곳에서 의지할 사람은 우리 둘 뿐이다.
우리는 한식을 먹어야만 했다 그날.
내 속을 모르고 깜깜하게 저물어가는 강변이 야속하기만 하다.
다음날 우리는 세비야 대성당으로 향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이자, 콜럼버스의 묘가 있다는 그 성당. 우리는 여기서 또 한 번 운명적인 만남을 경험한다.
넓은 세비야 대성당 중에서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 곳은 단연 콜럼버스의 묘다.
'두 번 다시는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는 콜럼버스는 이렇게 묘가 공중에 떠있다. 스페인 여행동안 성당을 너무도 많이 봐서 감흥이 없던 나도 이 묘만큼은 주의 깊게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바퀴를 채 다 둘러보기 직전, 그 순간 콜럼버스의 묘 아래로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또 그 사람이다.
왜 영화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표현할 때 도서관 책장의 책을 같이 뽑아 들어 틈새로 눈이 마주치는 장면. 그런 말도 안 되는 장면이다.
“어??”
“와…. 뭐야”
우리는 신기하다란 말도 무의미할 정도로 세 명이서 내내 웃기만 했다. 믿기질 않는다.
나는 이 정오란 남자를 알게 되고 나서부터 어쩌면 인연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림 같은 곳에 왔으면 그림을 그려야지.
광장 둘레를 떠다니는 보트와 노 저으며 행복한 순간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모인 스페인 광장은 아름답다. 우리는 딱 두 명만 앉을 수 있는 타일로 장식된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이번엔 각자가 아닌, 함께 같은 그림을 그린다.
“자 다 그렸어 이제 나머지 그려볼래?”
“좋아!”
호기롭게 드로잉 수첩을 받아 들고 거침없이 그리기 시작했다. 함께 즉흥으로 그려낸 그림은 함께이기에 더욱 특별하다.
2022년 11월 29일, 스페인 광장에서. 소영 지환
그림을 마치고 멍하니 보트를 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문득 떠올랐다.
“우리도 타볼까??”
“진짜로? “
“응 어차피 한 번뿐인데 이것도 추억이잖아. 타자”
나는 계획을 매우 잘하지만 여행지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에는 한없이 즉흥적인 사람이 되기도 한다.
노래를 듣고 그림을 그리는 정적인 시간을 즐기는 지금, 즉흥적인 제안에 우리의 두 눈이 반짝인다.
보트를 타는 사람들을 한동안 지켜보니 대부분 남자는 힘을 과시하며 노를 젓고, 여자는 로맨틱한 분위기를 즐기며 사진을 찍곤 했다. 장난기가 많은 우리는 이것조차 평범하게 타기를 거부했다.
"우리 저기 보트 따라잡아보자"
난 장난스러운 웃음끼를 띤 미소로 단번에 화답했다.
타깃을 정했다.
저기 앞에 가는 가족보트가 우리의 라이벌.
동행보다 비교적 힘이 약한 내가 직접 노를 저어 옆 보트를 추월하기로 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우리만의 레이스.
힘과 요령이라곤 없이 의욕만 앞선 나는 허둥지둥 서두르기만 할 뿐 노를 젓지는 못하고 허공에서 방정맞게 파닥대기만 했다. 생각보다 노젓기는 어려웠다. 앞뒤가 아니라 물의 저항을 거스르며 크게 굴려야 한다. 나는 못하겠다.
낭만적인 분위기를 즐기는 주변과는 달리, 여자 혼자 생존을 위한 노젓기를 하는 듯한 모습에 이를 지켜보는 구경꾼들은 웃음이 터졌다. 내 동행은 나의 이런 굴욕적인 모습을 즐기는 듯 도와주기는커녕 굴욕적인 사진을 찍으며 웃어댔다. 그런 상황이 우스워 나도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 사진을 그때 지워버렸어야 하는데
우리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보트를 라이벌 삼아 경주를 했고, 속도가 나지 않거나 힘이 부칠땐 역할을 바꾸는 나름의 전략을 세워가며 우리만의 레이스에 진심이었다. 그때였다.
"아 설마 “
"우와 정오형이다. 형!!!!"
오늘 오전 세비야 대성당을 갔을 때 콜럼버스의 묘 아래서 운명적으로 마주쳤던 그 남자. 정오다.
이번엔 스페인 광장에서 노를 젓고 있던 중 커브를 도는 그 순간에 또 마주쳤다. 아니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또 실소를 터뜨렸다.
"우리 따라다니는 거 아니죠?"
"아 그만 좀 따라다니세요 저 좀~"
"이따 비행기 탈 때 봐요"
왜 여기 있냐는 둥, 뭐 하냐는 둥 더 이상 별다른 설명도 하지 않는다 이젠. 이 남자는 우리와 함께 오늘 같은 비행기를 타고 포르투로 넘어간다. 비행기 자리도 바로 뒷자리, 버스도 옆자리. 심지어 내 동행과 같은 대학교 같은 성씨. 이 남자, 뭔가 있는 게 분명하다.
새로운 것도 더 이상 설레지 않는 순간이 온다.
일이든, 사람이든, 여행이든
새로운 사람과 한 시간을 대화하면 호기심이 사라진다.
의욕 넘치던 첫 출근은 일주일이면 아침이 힘들다.
여행은 일주일.
딱 여기까지가 마지노선이었다.
원하던 걸 가지게 됐을 때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아 이거만 해결되면 행복하겠지' 환경 탓, 상황 탓. 어디에도 완전한 행복은 없다.
행복하려면 지금 당장 행복해져야 한다.
이십 대 후반 번아웃으로 퇴사한 백수. 뭘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내 세계의 전부인 방 안에서 내 처지를 비관하고 무기력했던 나.
이 여행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접하고 지금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