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는데 축복이였다. 돌이켜보면 ’기자‘와 ’외국계 금융맨‘이라는 직업으로부터 입은 혜택도 컸다.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과 형•동생 거리며 여전히 친분을 쌓고 있는 걸 보면, 불평불만으로 얼룩진 근 하루의 몽니가 부끄러울 때도 있다.
정치인,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까지. 그들과 지금도 형•동생 거리며 우쭐댈 수 있는 나는 얼마나 운이 좋은가 싶기도 하다. 그들의 전문성에 기댄적은 단연코 한번도 없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기 위해 조언을 받은 적도, 세금을 탈루하기 위해 그 어떠한 관련된 얘기를 섞어본 적도, 단 한번이 없다는 뜻이다.
만나면 즐거울 뿐이다. 시시콜콜 한 얘기를 하며, 얼큰히 취해서는 ’아는 여자‘ 부르라며 서로 떼쓰는 건 동네 친구와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을 만남으로써 좋은건 단 한가지, 마음이 든든하다는 거다.
내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그들에게 변호를 요청할까, 혹은 세금 폭탄을 맞았다고 제도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편법을 요할까. 차라리 모르는 사람에게 일정의 금액을 주고 대리하는 편이 나은거다.
그간 만났던 여자친구도 마찬가지였다. 항공사 제복을 입은 친구, 카메라 앞에서 방송을 하는 친구, 증권사에서 커리어우먼이 되어 트레이딩을 하는 친구 등등. 남자들의 로망이라 할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나 연애를 할 수 있었음은 그 또한 얼마나 행운이였는지.
행복했다. 지금은 그 어떠한 행복도 느낄 수 없지만, 내 기억 속은 온통 행복으로 가득차 있다. 함박웃음 지어본 적이 언제였는지, 내 기억만이 이내 대답을 해준다.
기억 속의 나와 지금의 나, 신경림 선생께서 살아생전 해주신 말씀처럼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겨운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