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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Dec 22. 2024

나의 그리움이 닿는 곳

조용히 한 해를 돌이켜 본다. 기대와 사랑으로 시작했던 올해의 첫 날을 기억할 수 있다. 세밑에서는 분노와 증오를 너머 이처럼 체념으로 얼룩질거라는 상상은 미처하지 못했다.


철학자 아즈마는 ”우리는 언제나 잘못을 저지른다. 그래서 바로잡는다. 또 잘못을 저지른다. 이런 연쇄가 산다는 일이고 책임을 진다는 일이다.“라며 역설했다.


근데 이상하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잘못을 저질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아이가 잘못을 해도 선생을 되려 욕하고, 이성과 사귀다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분노가 차오를 땐 살인으로 앙갚음을 한다.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해도 떳떳하며, 밥 한끼를 먹는데도 어떻게든 별점 테러로 위협을 해가며 자영업자들을 구워삶으려 든다.


대통령의 권한이라며 계엄을 일으켜 총칼을 들고 국회를 점령 했는데도, 잘못에 대한 반성보다는 어느새 편을 갈라 서로 싸우고 있다.


이런 기이한 시대에서 어릴적 친구들 조차 이젠 보고싶지도, 그립지도 않다. 옛 기억을 더듬으며 미래를 기약했던 동창회의 목적은 변질되기 일쑤고, 속해있는 구성원 그 누구도 동심의 그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수많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지만, 우리는 이제 누구와도 엮이고 싶지가 않다. SNS의 단골 소개말은 “DM보내지 마세요”, 혹은 “페메 보내지 마세요” 이다. 아쉽지 않고 각자도생 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걔중에서도 잘난 사람들은 잘난 사람대로, 그와 반대급부는 또 그들대로 편을 갈라 공생한다.


10명의 사람보다 고양이 한마리가 더 소중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스승이나 멘토 따위가 무슨 소용이랴. 모든 지식은 손안의 유튜브로 다 섭렵할 수 있는데 말이다. 반세기를 노력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양자역학을 유튜브에서는 5분만에 이해시켜주겠다고도 한다.


외롭지도 않다. 평생을 봐도 질리지 않는 넷플릭스도 있으며 수만가지의 어플들이 적재적소에서 우리를 위해 대기 중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 고립될 것이다. 나는 친구며 선후배며 편하게 통화할 수 있는 사이가 이젠 한명도 없다. 으레적으로 술을 마시거나, 경조사 때 기계적으로 참여하는 그런 사이는 많을거다. 아마 지금도 차고 넘칠 수도 있다. 다만 나는 그런 사이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인터넷과 폰이 없던 그 시절에 만나던 꽃향기 가득했던 ‘사람’을 말하는 거다.


“너 잘 지내니?” 하며 나는 옛여친한테도 곧잘 연락을 하곤 했었다. 민주화와 아날로그 시대를 거친 우리는 그랬다. 그게 낭만이었고, 사랑의 흔적이자 모양이었다. 이별을 통보받으면 한없이 울고, 가로등 켜진 담장너머에서 창문을 바라보며 종일 기다려보기도 했다.


요즘은 그런 행동들이 당연지사 정신병자 취급받겠지만, 나는 2024년이 지나고 있는 오늘도 그런 낭만이 그립다.


양자역학에서는 시공간의 왜곡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나는 가능만 하다면 1992년 즈음의 그 어느 날로 다시한번 돌아가고 싶다. 그리고 지금 살고있는 이따위 시대에는 다시는 오고싶지가 않다.


사랑, 책임, 그리움, 배려, 인내, 예의, 유머… 내가 배운 단어라곤 일체 존재하지 않는 이 시대가 너무도 싫다.


수학의 천재라 불리던 가우스는 자신의 묘비에 난제였던 정17각형을 새겨달라했지만,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나는 훗날 내 묘비에 그리움이 새겨졌으면 좋겠고, 내가 그리워하던 곳으로 꼭 닿을 수 있길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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