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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3 하동->광양 35km

2,700km 전국일주 여행기

by 조삿갓

바람이 매서웠다. 찬 바람을 맞으며 광양에 도착했다. 여기저기서 포스코(POSCO)가 보였다. 큰 트레일러를 끄는 화물차도 보였다. 내심 운전자가 존경스러웠다. 당연한 감정이었다. 쓸데없는 면허를 가진 장롱 면허자에게 화물차 운전자가 위대해 보일 수밖에. 인간이라면 모두가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잘하는 건 별개의 일이다. 거기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기란 하늘에 별따기와 같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세바시 인생질문 1 : 나는 누구인가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처음이었다. 1시간 넘게 생각했음에도 정할 수 없었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한다고 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주변에서 들은 칭찬이나 즐거운 감정이 드는 5가지를 추렸다.


<좋아하는 일>
- 걷기, 여행, 글쓰기, 대화, 계획 짜기

<잘하는 일>
- 공감, 걷기, 글쓰기, 공상, 의견조율


생각보다 서로 비슷했다. 이 중에서도 글쓰기를 이야기하고 싶다. ‘재능은 결핍의 결과다’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재능이라고 부르기엔 부끄러운 실력이지만, 내게 몇 없는 능력 중 뛰어난 건 맞았다. 그리고 결핍의 결과였다. 일기조차 쓰기 싫어했던 내가 어쩌다 글을 쓰게 되었냐면, 중학생 시절이었다. 초등학생 6학년부터 나는 조용한 아이가 됐다. 아마 사춘기였는지, 키도 작고 못생겼다고 결정 내리고부터 입을 꾹 닫았다. 자연스레 외적으로 우위를 점한 동년배는 갑이 됐고, 나 같은 친구들은 을이 됐다. 왕따나 놀림감이 되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였다. 표현하지 못하니 생각만 많아졌다. 분출구는 만화책과 소설책뿐이었다. 나처럼 못난 주인공이 성장하는 장르를 즐겨봤다. 대리만족은 즐거움이 됐다. 쓰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 하고 난 후로 "나도 한 번 써볼까?" 마음먹고 쓰기 시작했다. 주인공을 만들고, 세계관을 구축했다.


소설 연재 사이트에 '스킬메이커'라는 제목으로 게임 소설을 올렸다. 간단히 설명하면 스킬을 습득하는 것이 아닌 직접 창조하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 이야기였다. 신기하게 조회수가 점점 늘어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료 전환을 했다. 이게 웬걸, 사람들이 꾸준히 보는 게 아닌가. 약 7~8만 원을 벌었다. 자랑할 만한 수입은 아니었지만, 글로 돈 번 경험은 어린 중학생에게 큰 충격이었다. 세금 문제로 부모님과 함께 시청도 갔었다. 문제로 본 부모님은 더 이상 글을 올리지 말라했다. 겁 많은 아이는 부모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동굴로 돌아갔다.


글은 더 이상 쓰지 않았지만, 언제나 곁에 있었다. 숙제할 때도, 군대에서 일기 쓸 때도, 대학교에서 과제를 낼 때도 말이다(이때도 조용하고 소심한건 여전했다). 이런 경험이 쌓이며 자연스레 글 쓰는 행위로 인도했다.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고 본격적으로 글을 썼다(17년, 대학교 여름방학 때 시도한 국토종주부터). 글쓰기는 자유를 선사했다. 생각의 자유를, 표현의 자유를 주었다.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단어를 한데 모아 단단한 배를 만들었다. 그리곤 무작정 보냈다. 대상을 정하지 않은 채, 무작위로 보냈다. 때론 온전하게, 때론 불온전했다. 그래도 말보다는 온전했다.


내 글은 어떠한가. 상대방은 고려하지 않은, 일기장처럼 사적인 글이었다. 홀로 진지해져 ‘나 진지해요’라고 말하고, 홀로 재밌어서 ‘이거 진짜 재밌죠’라며 웃어달라 한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글이 내 글이다. 그래도 내 글이 좋다. 자기 할 말만 하고 부족해 보이는데서 사람냄새가 난달까. 완벽하지 않아서 좋다.


최근에 ‘글이란 사람들에게 읽혀야 생명을 가진다’라는 말을 했다. 참 오만했다. 누가 보면 대단한 글쟁인 줄 알겠더라. 그렇지 않다. 누가 보건 보지 않건, 글은 쓰인 순간부터 생명을 가진다. 글이 생명을 다하는 건 오로지 지우개로 지워졌을 때, 커서 깜빡이가 뒤로 갔을 때뿐이다(이기적인 글을 쓰는 글쟁이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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