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0km 전국일주 여행기
어글리 베이커리.
제일 좋아하는 빵이 있다. 얼그레이 크림이 꾸덕꾸덕 들어간 얼그레이 크림빵이다. 한입 크게 베어 물면 여기저기 크림이 빠져나와 손이며, 얼굴이며, 입가에 다 묻는다. 입안은 금세 크림으로 가득 찬다. 처음엔 우아하게 먹어보려 하지만 늘 실패한다. 빵은 손에 들려 있고, 크림은 손가락 사이로 묻어나고, 결국 입 주면은 난리가 난다. 그런데 그게 좋다. 보기 좋게 먹을 수 없는 빵이라 더 좋다. 좋아하는 것 앞에서 단정할 수 없다는 게 왠지 솔직해서 좋다. 거기에 초코 맘모스빵까지 함께하니 달달함이 초과했다. 입은 즐거웠는데, 몸은 솔직했다. 얼큰한 것이 당겼다. 사람 마음도 좀 그런 것 같다. 좋다고 계속 집어넣다 보면 어느 순간 반대되는 것이 간절해진다. 단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순간이 있다. 행복도 그렇고, 만족도 그런 것 같다. 좋긴 좋은데 그것만으로는 이상하게 부족하다.
신입직원.
상도 술친구 U군과 함께 달릴 생각에 벌써부터 입안에 단맛이 돌았다. 둘이서만 마실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과 함께 했다. 술을 좋아한다는 그들과 함께했다.
"종종 선생님 얘기 들었어요!"
내 이름이 거론된다니 참 신기했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내 이야기가 오갔다는 게 묘했다. 반갑기도 했고, 민망하기도 했고, 조금은 쑥스럽기도 했다. 잘 지냈냐는 인사보다 그런 말이 더 오래 남는다. 내가 사라진 줄 알았던 자리 어딘가에 아직 조금은 남아 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두런두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술병이 쌓여갔다. 처음엔 가볍게 시작한 말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길어졌다. 사람은 술잔이 몇 번 오가면 마음의 단추도 몇 개쯤 풀리는 모양이다. 나도 그랬다. 웃고, 맞장구치고, 한 마디씩 보태다가 어느 순간 그 자리가 꽤 편해져 있었다. 막차가 무슨 상관, 우리에게는 택시가 있지 하며 기나긴 밤을 함께했다. 사실 택시가 있어서라기보다, 그 밤을 그렇게 쉽게 끝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오랜만에 사람들 틈에서 오래 머물렀고, 오랜만에 내가 떠난 자리와 아직 이어져 있다는 기분을 느꼈다.
결혼식.
왕십리에서 전 동료 직원 결혼식이 열렸다. 가는 길에 시간이 맞아 축하할 수 있었다. 결혼식에 가면 괜스레 두근거리는 심장, '나대지 마 심장아!' 속으로 몇 번이나 말하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결혼식장은 늘 비슷한 데 갈 때마다 기분은 비슷하지 않다. 누군가의 시작을 축하하러 간 자리인데, 이상하게도 나는 자꾸 내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웃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축하하는 마음이 먼저 올라오다가도, 그 뒤로는 부러운 마음이 조용히 따라붙는다. 나도 저런 순간을 맞을 수 있을까. 나도 누군가와 나란히 서서 축하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항상 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한다. 그런데 그 상상은 늘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는 물음으로 끝난다. 상상은 쉽고 현실은 어렵다. 그래서 더 자주 상상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결혼식은 참 묘하다. 남의 행복을 보러 간 날인데, 돌아올 때는 늘 인생의 빈칸 몇 개를 같이 들고 오게 된다.
사회복지사.
열심히 으쌰 으쌰 하자던 두 남자는 이제 퇴사자로 마주했다. 새로운 곳으로 이직하게 된 주임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무척이나 가고 싶은 복지관이었다. 복지 얘기를 한참 나누다 보니 아직 미련이 남았나 보다.
"얘기하다 보니까 복지사 다시 하고 싶네요."
무심코 나온 말이었는데 말하고 나서도 그 문장이 계속 귀에 맴돌았다. 나는 분명 떠난 사람인데, 그 이야기를 하는 순간만큼은 아직 발이 걸쳐져 있는 사람 같았다. 복지를 완전히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어떤 일은 퇴사한다고 끝나는 게 아닌가 보다. 명함은 내려놓아도 마음까지 같이 내려놓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내 삶에서 복지는 이제 한 부분을 차지한 것 같다. 한 때 했던 일이 아니라, 나를 설명하는 한 조각처럼 남아 있다. 복지사를 하지 않더라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도울 방법을 시도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계속 그런 방향으로 기울 것 같다. 돕는다는 말이 거창하게 들릴 때도 있지만, 결국 나는 사람의 삶을 외면하고는 잘 못 사는 쪽인 것 같다. 그래서 더 미련이 남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돌아가야 하는지, 돌아가고 싶은 건 맞는지 아직 모르겠다. 다만 완전히 멀어진 건 아니라는 것만은 알겠다.
현실.
물음표를 마침표와 느낌표로 많이 변화시켰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물음표가 다가와 인사를 한다.
"안녕!"
진짜 사람 피곤하게 한다. 인생은 끊임없는 질문 속에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라 하지만, 겨우 찾은 답이 또 다른 질문을 데리고 오면 참 어지럽다. 하나 끝냈다고 생각하면 또 하나가 고개를 내민다. 정리됐다고 생각하면 다시 흐트러진다. 그래서 가끔은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그냥 질문만 바꿔가며 제자리에서 맴도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무엇이라도 시도하고 있으니 경험이 되어, 나중에 어떠한 형태로든 돌아올 거야.'
그렇게 믿고 싶다. 아니, 그렇게라도 믿어야 버틸 수 있다. 안 그러면 내가 하는 모든 시도가 너무 불안하고 허술하게 느껴지니까. 사람들은 내게 어떠한 대답을 들려줄까. 현실을 모른다고 할까? 현실을 너무 낙관적으로만 본다고 할까?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할까? 사실 그런 말들이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나는 생각보다 남의 말에 강한 사람이 아니다. 괜찮은 척 하지만, 말 몇 마디에 오래 흔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실제로 듣기도 전에 미리 상상하고, 미리 겁먹고, 미리 초라해진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혼자 먼저 실패한 사람처럼 작아질 때가 있다. 현실이라는 말은 참 이상하다. 다 맞는 말 같아서 더 무섭다. 틀렸다고 반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완전히 받아들이자니 내 마음이 먼저 죽어버릴 것 같다.
성공은 외로운 싸움 끝에 오는 보상. 잘 싸워볼 수 있을까? 진짜 오늘내일 바라보며 난 죽기 살기로 불사를 수 있을까? 말은 늘 쉽다. 누구나 할 수 있다. 문제는 진짜 그렇게 사느냐다. 남들한테 멋진 말 해놓고 정작 내가 그 말을 못 지키면 얼마나 우스울까 싶다. 그래서 더 겁난다.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보다도, 중간에 흐지부지 포기해 버릴 내 모습이 더 무섭다. 노력해야지, 노력할 거야. 주위 사람들이 나를 보면
"독종, 진짜 미쳤어."
라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말이야. 적당히 해서는 아무것도 안 바뀔 것 같으니까. 어설프게 했다가는 결국 또 핑계만 남을 것 같으니까. 내가 가진 책임들을 온전히 짊어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버티는 사람. 무섭다고 해도 할 건 하는 사람. 흔들려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 지금의 나는 아직 물음표가 많고, 여전히 겁도 많고, 쉽게 확신하지 못한다. 그래도 가야 한다. 결국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도 그런 마음이었다. 자꾸 흔들리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는 마음. 아마 앞으로도 그 마음 하나로 버티게 될 것 같다. 그러니까 더 독해져야 한다. 스스로 한 말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을 정도로. 나중에 돌아봤을 때 적어도 도망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