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19 포천->의정부 37km

2,700km 전국일주 여행기

by 조삿갓

'작은 일본'으로 간다고 해서 길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양주시 회암동을 지났다. 김삿갓 고향이라는 말을 보고 잠깐 웃었다. 운명의 장난이라고 하기엔 좀 우습고,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기엔 또 묘했다. 120일째 걷고 있는 내 꼴이 어쩐지 방랑하는 사람 같아서, 괜히 김삿갓 이름 앞에서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벽화를 따라 걷다가 군부대를 지났다. 훈련하는 군인들이 보였다. 그 장면 앞에서는 웃음이 조금 가셨다. 행군하던 발, 어깨에 걸리던 무게, 괜히 날이 서 있던 감각 같은 것이 몸 어딘가에 아직 남아 있었는지, 한동안 시선이 그쪽에 붙들렸다. 지나간 시간은 끝난 것 같아도 꼭 다 지나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계속 걷다가 니지모리 스튜디오 표지판을 봤다. 빨간 지붕 아래 적힌 이름 하나가 길의 분위기를 바꿨다기보다, 내가 걷고 있는 길에 목적지를 붙여준 느낌에 가까웠다. 그전까지는 그냥 걷고 있었다. 어디를 향해 가는지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길은 늘 막연한 쪽에 가까웠다. 그런데 표지판 하나를 보니 갑자기 선명해졌다. 아, 이제 진짜 이쪽이구나. 도착은 아직인데 방향은 분명해지는 순간이 있다. 삶에도 그런 순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니지모리 스튜디오는 정말 '작은 일본'이었다. 일본 양식의 건물, 창문, 등이 있는 거리. 잘 정리된 풍경이었다. 사람들은 거리를 걸었고, 나도 거리를 지나갔다. 분명히 다른 분위기의 공간이었는데도 감탄부터 나오지 않았다. 예쁘다, 신기하다, 그런 말은 생각보다 늦게 왔다. 먼저 든 생각은 이런 거였다. 사람은 왜 자꾸 다른 분위기의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할까. 왜 낯선 결의 풍경 안에 잠깐이라도 들어가고 싶어 할까. 아마 늘 같은 하루를 견디고 있어서 그런 것 아닐까. 잠깐이라도 시선이 바뀌면, 조금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아서.


다리를 향하는 문은 좁았다. 문 아래로 몸을 숙여 들어가는 순간에는 내가 꽤 우스워 보였을 것 같다. 큰 배낭을 메고 좁은 입구를 지나가는 모습. 구경하러 온 사람이라보다, 계속 이동 중인 사람이 잠깐 다른 공간을 통과하는 모습 같았다. 나는 여전히 길 위의 사람이었고, 니지모리 스튜디오는 그 길 위에 잠깐 생긴 다른 결의 공간이었다. 잠깐 머물 수는 있어도 거기에 완전히 속할 수는 없는 사람. 그런 감각이 나쁘지 않았다. 사실 나는 늘 조금 바깥에 서 있는 쪽에 더 익숙했다.


연못은 겨울 추위를 이기지 못해 얼어붙었다. 물은 사라지고 얼음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고, 그 위에 작은 나무배 한 척이 멈춰 있었다. 떠 있어야 할 배가 떠 있지 못하고 가만히 있는 모습이 오래 남았다. 멈춰 있는 것 같지만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닌 상태. 움직일 수는 없지만 분명 거기에 있는 것. 나도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었지만, 동시에 삶의 어떤 부분에서는 아직 얼음 위에 놓인 배처럼 멈춰 있는 사람이었다.


'세바시 인생질문 3 : 당신은 자기 삶의 온전한 주체로서 살아가고 있나요?'


이 질문 앞에서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다. 아직은 아니다. 나는 아직 온전한 주체로 살고 있지 못하다. 경제적인 책임 앞에서는 여전히 도움을 받고 있고, 내 삶을 완전히 내 힘으로 굴리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런 말을 적고 있으면 조금 초라해지는 기분이다. 다들 자기 삶을 책임지며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는 아직 그 문장 앞에서 자꾸 망설이게 된다. 그렇다고 모른 척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의 나를 정확히 보지 않으면, 다음으로도 못 가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있다. 적어도 내 삶을 남이 정해준 방향으로만 끌려가고 싶지는 않다는 것. 스스로 꿈을 꾸기로 했고, 해보고 싶은 것을 하기로 정했다. 물론 이 말은 말처럼 쉽지 않다.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건 생각보다 낭만적이지 않다. 오히려 훨씬 초라하고, 불확실하고, 자주 민망하다. 내가 정말 이 길을 가도 되는 건지, 괜히 폼만 잡고 있는 건 아닌지, 나중에 아무것도 남지 않으면 어쩌나, 그런 생각을 수도 없이 한다. 하고 싶은 것을 향해 가는 사람은 멋있어 보일 수 있어도, 정작 본인은 꽤 자주 초초하다.


노홍철 님이 했던 말이 오래 남아 있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느낄 정도로 좋아해야 한다는 말. 그렇지 않으면 해야 하는 것을 하라는 말. 그 말은 단순한 조언처럼 들리지만, 듣는 사람을 꽤 깊이 찌른다. 나는 정말 그 정도로 좋아하고 있는가. 좋아한다고 말은 하면서 사실은 책임질 만큼 좋아하지는 않는 건 아닌가. 그 질문 앞에서는 늘 조금 조용해진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하고, 결국은 견디는 힘까지 있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건 좋은 길을 고르는 일이 아니라, 내 길을 감당하는 일에 더 가깝다. 멀쩡하게 닦인 길보다 울퉁불퉁한 길을 택하는 일일 수도 있다. 빙빙 돌아갈 수도 있고, 길을 잃을 수도 있고, 한참 가놓고도 제자리 같은 날이 있을 수 있다. 어쩌면 끝내 원하는 데 닿지 못할 수도 있다. 그게 무서운 점이다. 실패보다 더 무서운 건, 내가 틀린 방향을 오래 믿고 있었을 가능성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꾸 안전한 쪽을 본다. 해야 하는 것들은 대체로 분명하고, 하고 싶은 것들은 흐리다. 분명한 길과 흐린 길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도 나는 자꾸 흐린 쪽을 본다. 답답한데도 그렇고, 무서운데도 그렇다. 아마 내가 정말 바라는 건 특별한 성공이라기보다, 적어도 내 선택으로 살아봤다는 감각인지도 모르겠다. 남이 정리해 준 문장으로 살지 않고, 서툴고 느리더라도 내 문장을 써봤다는 감각. 그게 있어야 나중에 스스로를 덜 원망할 것 같다. 잘됐든 안 됐든, 적어도 나는 내 마음을 알고도 외면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결과가 나타날 때까지는 수많은 대화가 오갈 것이다. 남의 말도 듣게 될 것이고, 내 안에서도 같은 질문을 수십 번은 반복하게 될 것이다. 잘 묻고 잘 대답하는 일, 결국 그게 중요할 것 같다. 내게 필요한 건 멋진 문장이 아니라 제대로 된 대답이다. 그리고 선택한 뒤에는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보여줄 수 있을 만큼 해봐야 한다. 온전한 주체로서의 삶은 선언으로 시작될 수는 있어도, 선언만으로 완성되지는 않으니까.


아직 나는 그 입구에 서 있는 사람에 가깝다. 완전히 들어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깥에만 있는 것도 아닌 사람. 어쩌면 지금의 나는 딱 그 정도다. 하지만 적어도 멈춰 서 있지는 않다.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서툴고, 흔들리고, 자주 의심하면서도 계속 간다.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하는 것으로 바꿔버린 사람들과 언젠가 나란히 설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그쪽을 보고 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아마 거창한 확신이 아니라, 오늘도 그 방향으로 조금 더 걸어가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를 다독인다.


할 수 있다고, 해보자고, 적어도 끝까지는 가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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