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예의 2위 -3
그날의 쓰레기 쇼핑백은 천사 같던 영이의 가슴에 불을 지핀 꼴이 되었다. 자식을 인질로 모욕당한 어미는 그 비참함에 미친 여자처럼 눈이 돌아가는 거 같았다.
그것은 영이를 단숨에 강인한 여전사로 탈바꿈시킨
강력 부스터였다.
‘그래, 어디 끝까지 가보자. 너희는 인간도 아니야
나도 더 이상 참지 않을 거야!‘
영이는 이를 갈며 다음 날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했다.
목사는 여전히 성자인 양 고고한 척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영이가 차갑게 식은 눈으로 허브차를 내어놓는데 목사의 두툼하고 눅눅한 손이 영이의 어깨를 타고 내려와 허리춤을 음흉하게 쓸어내렸다.
그리고는 제법 너그러운 제안이라도 하는 듯, 기름기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가 미국에 집 한 채 사놓을 테니 애들 데리고 거기 가 있는 거 어때? 내가 한 달에 한 번씩 건너갈 테니까, 우리 아무도 모르게 사랑하며 살자고. 어때?
여보 당신 하면서 말이야. “
수만 명의 영혼을 구원한다는 입으로 내뱉은 말은 고작 파렴치한 불륜의 제안이었다.
이 남자는 신의 종이 아니라, 탐욕에 찌든 괴물일 뿐이라는 것을 영이는 확신했다.
어제라면 수치심에 몸을 떨었겠지만, 오늘의 영이는 달랐다.
“아하하하하! 아하하하!”
미친 사람처럼 자지러지게 웃어대는 영이의 모습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목사였다. 영이가 수치심에 고개를 떨구거나 겁에 질려 눈물을 흘릴 것이라 확신했던 목사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여, 영이 비서? 미쳤어? 왜 이래?”
귀신이라도 본듯 목사가 황급히 허리를 만지던 손을 떼며 물었다.
영이는 웃느라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여전히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그를 빤히 쳐다봤다.
그 눈빛은 더 이상 가련하고 청순한 과부의 것이 아니었다.
“아뇨, 목사님. 미친 게 아니라 너무 재미있어서요.”
“뭐? 뭐가 재미있다는 거야?”
목사가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리자, 영이는 다가서며 낮고 은밀하게 속삭였다.
“아~바로 어제, 박 장로님도 똑같이 말씀하셨거든요.
저보고 미국에 집 사줄 테니 같이 살자고요.
그럼 저는 미국에 집이 두 채나 생기는 거잖아요?”
저야 부자가 되니 좋지만 한 달에 한 번씩 두 분이 번갈아 오시면 전 언제 쉬나 싶어서요. 안 그래요?”
그것은 정교하게 날을 세운 거짓말이자, 목사의 심장을 꿰뚫는 비수였다. 목사의 안색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박 장로는 목사의 오른팔이자 형님 동생 하며 지내는 막역한 사이였다.
이 추악한 괴물들을 상대하는 법은 겁을 먹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비열한 욕망을 서로 부딪치게 만들어 진흙탕 싸움을 붙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 그게 무슨… 박 장로가 정말 그랬단 말이야?”
목사는 엄청난 충격과 수치심을 느낀 듯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영이는 혼란에 빠진 목사를 비웃으며 유유히 집무실을 나와 문을 닫는 순간, 등 뒤로 목사의 혈압이 오른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영이의 예상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적중했다.
거룩한 형제애를 과시하며 형님 아우 하던 목사와 박 장로의 관계는, 영이가 던진 아주 작은 균열의 씨앗 하나에 속절없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목사는 강단 위에서 은밀하지만 날카로운 설교로 박 장로를 겨냥했고 따돌렸다. 박장로도 당연히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자기와 친한 사람들을 싹 다 데리고 나가서 교회 바로 앞에 교회를 만들었다. 목사는 “고깃집 옆에 고깃집 차리는 거랑 뭐가 다르냐! “ 며 길길이 날뛰었다.
그들은 교회로 장사를 하는 양아치나 다름없었다.
애초에 영혼 구제에는 관심이 없었고 귀신 잡는 쇼가 주특기였던 것이다.
영이는 그 과정을 비서실 책상에 앉아 차분히 지켜보았다. 서로를 헐뜯고 물어뜯는 그들의 아귀다툼은 그 어떤 막장 드라마보다 비열했고, 동시에 통쾌했다.
그렇게 크고 화려했던 교회가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 그냥 마귀들끼리 서로를 잡아먹게 두면 되는 거였어.’
영이는 이제 두렵지 않았다.
영이의 복수는 멈추지 않았다.
사모가 준 '쓰레기 쇼핑백'에 대한 대가는 더욱 우아하고 치명적이어야 했다.
영이는 목사가 맡긴 법인카드를 들고 꽃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가장 화려한 꽃바구니를 주문하며 카드를 내밀었다. 메시지 카드에는 정갈한 글씨로 이렇게 적었다.
[사랑하는 영이에게, 당신을 잊지 못하는 k 목사가]
꽃바구니를 받아 든 사모의 눈 뒤집히는 소리가 교회 담벼락을 넘는 듯했다. 분노로 미쳐버린 사모는 그 길로 집무실로 달려가 목사의 얼굴을 사정없이 할퀴어버렸다. 다음 날, 수만 명의 성도 앞에 선 스타 목사의 얼굴에는 흉측한 손톱자국이 훈장처럼 박혀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영이는 웃음이 멈추지 않아 미칠 거 같았다.
하지만 진정한 심판은 하나님이 해주셨다.
하나님은 진정 영이의 편이었던 것일까. 탐욕과 음란함으로 쌓아 올린 바벨탑이 무너지듯,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목사는 뇌출혈로 쓰러졌다.
교회의 '인기 스타'였던 그가 쓰러지자 병실 앞은 문안 인사를 오려는 성도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영이는 그 긴 줄 사이에 섰다.
마침내 영이의 차례가 되어 병상 곁으로 다가갔을 때, 한때 세상을 호령하던 목사는 초라하게 누워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다.
영이는 몸을 숙여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야, 이 시발 새끼야. 꼴좋다. 그거 알아?
네 꼬추, 네 교회에서 제일 작아.”
마비된 몸으로 말 한마디 못 하는 목사의 얼굴이 터질 듯 벌겋게 달아올랐다.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는 그를 뒤로하고, 영이는 태연하게 사모에게 오렌지 주스병을 쥐어주며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사모님, 정말 고생이 많으시네요. 우리 목사님께서 절 보시더니 너무 반가우신지 눈물까지 흘리시네요! 저를 엄청 예뻐하셨는데 너무 마음이 아프다 정말.
이제 똥기저귀 갈으셔야 하다니 정말 힘드시겠어요.
간병 잘하세요, 사모님.”
사람 많은 곳에서 어쩌지도 못하고 사모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변해가는 것을 보며 영이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병원을 나왔다.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바친 모든 눈물에 대한 완벽한 응징이었다.
영이는 당당히 졸업장을 거머쥐었고 사택이 지원되는 번듯한 회사에 취직해, 아이들의 손을 잡고 그 진흙탕 같은 교회를 영원히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문 1면에는 ‘스타 목사 사망’ 소식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영이는 신문을 내려놓으며 창밖의 맑은 하늘을 향해 빙긋 웃었다.
“마귀 새끼, 잘 죽었네. 지옥이나 가라. “
어미라는 이름으로, 여자라는 이름으로 지켜낸 삶이 비로소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