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과 광고의 관계

김훈의 '허송세월'을 읽으며

by 김대영

"'안다’는 것은 책 읽고 나서 하는 말이 아니다. ‘안다’는 삶을 통과해 나온 후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쓰기 어려운 말이다." (김훈. 허송세월 출간, 한겨레 서면 인터뷰 중)


김훈을 좋아한다.

소설 '칼의 노래'부터 '공터에서', '하얼빈'까지 에세이 '밥벌이의 지겨움'부터 '라면 끓이기'와 '연필로 쓰기'까지. 모두는 아니지만 그의 책은 대부분 읽으려 했다. 그의 글을 읽으면 시샘이 나서 더 읽었다.

육필을 고집하는 그는 인터뷰에서 “몸이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이 없으면 단 한 줄도 쓰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연필로 꾸욱 꾸욱 눌러쓴 문장들은 유려하다거나 아름답다고 하기엔 모자름이 있다. 평론가가 아니다보니 그의 글이 주는 문학적 매력을 설명하기엔 벅차다. 어쨌거나 독자로서 나는 그의 팬이다. 그가 쓰는 한 줄의 문장에는 내가 쓰는 허접한 문장에는 찾기 어려운 많은 것들이 있어 좋다.

그는 최근 또 한권의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제목은 [허송세월]

내가 나이를 먹어가는 만큼 작가도 나이가 들어 그의 나이는 일흔을 훌쩍 넘어 버렸다.

허송세월 안에는 인생에서의 무력감, 허무함, 고독이 문장 곳곳에 베어 있는데 읽는 내내 그것은 나이 듦의 슬픔보다는 또 다른 감정을 갖게 한다.




왜 우리는 나이 들어가는 일을 '나이를 먹는다'고 표현할까? 음식도 아닌 것을 오래전 부터 먹는다고 표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에 대한 나의 상상은 이렇다.

먹는다는 것은 몸에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는 일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이 지나고 숫자가 더해지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나이에 먹는다는 동사를 붙인 것은 경험이나 지혜 같은 것들이 축적된다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먹을 수 없는 나이에 먹는다는 동사를 붙인 것 아닐까?


그렇다.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삶의 여러 것을 축적하는 일이다. 시간이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살아가는 동안 얻게 되는 경험, 지식, 지혜 같은 것들이 켜켜이 쌓인다.


광고업을 하며 개인적으로 점점 어려운 것은 새로운 트랜드를 따라가는 일이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어 쉬는 시간에 쇼츠나 틱톡을 보는 것보다 일의 고민을 연장하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게 좋다.

그러다보니 최신 유행을 파악하는데 시간을 할애하기 힘들다. 그나마 젊은 동료후배들이 '그거 몰라요?' '아직 못 봤어요?' '아직 못 드셔보셨어요?' 라며 더딘 트랜드를 따라잡게 해주니 다행이다.


최신 트랜드에 민감한 동료들은 그에 맞는 새로움의 토대 위에서 이디어를 낸다. 나는 그들만큼 새로움에 민감하지 않으나 나의 경험과 지식을 통해 그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다른 글에서 신입들이 겪게 되는 광고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처음 광고에 입문해 낯선 환경이나 미천한 광고 경험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 였다.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그 어려움은 삶의 경험 부족에 의한 것일 수 있다.

결혼만 하더라도 그렇다. 결혼 하나로 겪게 되는 삶의 변화와 경험은 상상을 초월한다.

배우자와 매일 부딪히며 다른 성에 대한 관찰과 그 안에서 발견하는 인사이트를 얻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를 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부모로서의 경험이나 새로운 느낌과 생각들, 어린 아이들의 심리를 알아가는 것 또한 그렇다. 마흔이 되고 쉬흔을 넘어가며 생기는 몸의 변화, 그에 따른 건강에 대한 생각이나 다가오는 노후를 현실로 직시하는 모든 일들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경험들은 누가 대신해줄 수 없는 경험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들은 모두 자연스럽게 내가 하는 일, 광고와 연결될 수 밖에 없다. 결혼, 배우자, 육아, 부모, 건강, 노후. 간단하게 열거한 정도의 경험만으로도 수 많은 제품과 서비스를 연결시킬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아직 경험이 적을 수 밖에 없는 저연차의 후배들은 우리가 만나게 될 산업의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인사이트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과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광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가능한 많은 경험을 하기 위해 노력하면 좋다. 하지만 그렇다고 광고를 위해 결혼을 하거나 출산을 하라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직접 경험말고도 수 많은 간접 경험의 방법들이 숱하게 널려 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전해줄 수 있는 지인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도 그런 일 중 하나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의 관심사 밖에 있는 일들을 멀리한다. 하지만 우리는 의도적으로 관심사 밖의 일들 안으로 들어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김훈의 [허송세월]에는 70 중반 작가의 삶이 오롯이 들어있다.


“핸드폰에 부고가 찍히면 죽음은 배달상품처럼 눈앞에 와 있다.” 〈늙기의 즐거움〉, 7쪽


‘늙으니까 혼자서 웃을 수밖에 없고 혼자서 울 수밖에 없는 일 들이 많은데, 웃음과 울음의 경계도 무너져서 뿌옇다. 웃음이나 울음이나 별 차이 없는데, 크게 나오지는 않고 바람만 픽 나온다.’ <말년> 38쪽


작가는 "‘안다’는 삶을 통과해 나온 후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쓰기 어려운 말"이라고 했다.

책을 통해 얻게되는 경험은 삶을 통과하지 않은 것이니 나의 것도 아니며 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래도 책을 읽으며 어렴풋이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들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분명 이런 경험은 부지불식간에 나의 일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것라고 믿는다.



신입 동료들에게 경력이 쌓이고 광고에 대한 경험과 스킬들이 쌓이면 광고를 만드는 일은 지금보다 훨씬 수월해질 거라 이야기 해주었다. 하지만 일이 수월해지는 것과 좋은 광고를 만드는 일은 또 다른 일이다.

경력이 쌓이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얻게 되는 경험, 지식, 지혜, 생각의 축적들이 좋은 광고를 만드는 밑거름들이 될 것이다.

결국 숫자로서의 나이가 늘어나는 일이 아닌, 나이를 잘 '먹는'일은 좋은 광고를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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