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요리사 보면서 깨닫는 바가 컸어, 나 글 쓰는데도 적용할 게 많은 거 같아"
주말, 아내와 함께 흑백 요리사 몰아보기를 감행했다. 너도 나도 추천을 하니,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토요일, 결혼식장을 다녀온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아내는 한 참 앞선 회차를 보며 말했다.
"장사천재 조사장은 엄청 화려한 요리를 내놨는데, 이영숙 셰프는 달랑 미소곰탕이 든 놋그릇 하나를 내놓고 승리했어"
해당 회차의 인터뷰 장면에서 승리하지 못한 장사천재 조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10년 동안 나름 열심히 했는데 참, 덜어냄의 미학을 몰랐다는 걸 오늘 진짜 크게 깨달았어요"
아내는 '덜어냄의 미학'이 자신의 창작에도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아내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나는 오히려 광고와 요리가 참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재야 고수 요리사인 흑수저와 명성을 갖춘 유명 셰프 백수저 요리사의 대결이 이 넷플릭스 시리즈의 주된 관전 포인트다. 하지만 더 긴장감이 흘렀던 건 초반 부분 100명의 흑수저들 중 20명이 선택되는 장면들이었다.
80명 중 단 25%를 남기고 75%를 떨어뜨려야 하는 백종원, 안성재 심사위원의 어려운 결정들이 흥미로웠다. 대가들 답게 두 심사위원은 자신들의 명확한 기준을 갖고 합격과 탈락을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어떤 기준들에 의해 합격과 탈락이 정해지는지, 수많은 요리사들이 인정할 만한 대가들은 어떤 자신만의 기준들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며 머릿속에 정리된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상상 이상'이라는 단어가 가장 어울린다 생각했다. 두 심사위원들이 한 말들 중 내 귀에 맴돌고 남아 있는 문장들은 이런 것들이다.
[성재] 이런 거일 거라고 상상을 하지 못했어요
[종원] 아, 사람 깜짝 놀래키네
[성재] 시래기를 바쓰로 만들 생각을 하는 미친 사람이 어디 있지? 그 발상인 거죠
[성재] 어떻게 하면은 색다른 거를 보여 줄 수 있을지 고민을 정말 많이 하신 거 같아요
[종원] 샐러드의 재료가 수박이에요? 겨울에? 약간 위험한 시도 같은데
광고가 성공하는 지점과 요리가 성공하는 지점에는 같은 맥락의 기준점이 있었다.
기대하고, 상상하고 있는 지점을 벗어난 시도가 필요하다는 지점이다.
회사 동료들에게 가끔 하는 말은 '감동은 기대하지 않은 것을 마주할 때 나온다'는 것이다.
광고주 입장에서 경쟁 비딩의 결과물을 보고 감동을 하려면 기대하지 않는, 생각지 못한 지점을 파고들어야 한다.
경쟁 비딩에서 광고주가 낸 RFP에 의문을 갖고 새롭게 문제 정의를 해야 한다는 나의 생각은 그런 지점과 맞닿아 있다. 광고주가 생각한, 기대한 정도의 결과물은 감흥을 줄 수 없다.
생각하지 못한 지점을 찾아내고 새로운 솔루션을 제시해야 한다. 생각하지 못한 지점을 찾는 것은, 기존의 과제에 의문을 제기하고, 문제를 재정의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팀이 레스토랑을 만들고 매출 경쟁을 펼치는 팀 대항 미션에서 최현석셰프가 이끄는 '억수르 기사 식당'이 1등을 차지했다. 나는 이 장면에서도 최현석 셰프가 유명한 요리사임과 동시에 훌륭한 전략가라고 생각했다.
이들이 받은 RFP의 표면적 요청은 '식당을 차리고 매출을 올려라'이다.
요리사에게 매출을 올리라는 과제는 큰 이견을 갖지 않는다면, 맛있는 요리를 만들라는 과제와 같다.
하지만 이렇게 문제를 정의하면 '어떤 맛있는 요리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게 된다.
하지만 최현석 셰프는 과제를 재정의 했다.
"오늘은 일반 손님이 오지 않고 돈을 내고 기꺼이 특별한 경험을 하는 사람이 올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일상의 레스토랑이 아닌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경험으로의 요리를 선택할 사람들을 타겟으로 정했다. 이렇게 되면 과제는 '매출을 올리기 위해 맛있는 요리를 만들자'에서 '평소에는 먹어보지 못한 특별한 요리의 경험을 주자'로 바뀐다. 문제가 달라지면 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억수르 기사 식당'은 비싸지만 기꺼이 한 번쯤은 먹어보고 싶은 메뉴들을 만들었고 이 전략은 적중했다. 참가 손님들은 일상에서 만나는 레스토랑에 없는 '짬뽕에 들어간 랍스터'와 평소에 먹어보지 못하던 '캐비어 알밥'을 먹어보기 위해 기꺼이 주문을 했다.
문제를 낸 사람은 단지 매출을 올리라는 미션만을 주었지만 최현석 셰프팀은 문제를 재해석했고 다른 답을 만들어 최상의 결과를 만들었다.
이처럼 대부분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요리들은 심사위원과 문제 출제자들이 생각하지 못하거나, 기대하지 않았던 지점을 넘어섰던 것들이었다.
시래기를 바쓰로 만들 생각을 하는 미친 사람이 어디 있지? 라며 창의성에 놀랄 때 심사위원의 미각은 더 놀랐다. 한 겨울에 제철 과일이 아닌 수박으로 요리를 만드는 위험한 시도는 낮춰진 기대치를 맛으로 역전시키며 성공했다. 문제 출제자의 기대를 넘어, 문제를 재정의하고 타겟을 바꾼 억수르 기사식당은 2등과의 큰 매출차이로 미션을 달성했다.
광고도 마찬가지다.
창의성이란 기대하지 않는, 상상을 넘어서는 의외성을 동반할 때 훨씬 큰 감흥을 준다.
안전한 길로 가자는 유혹이 난무할 때 과감하고 용기 있는 시도가 성공할 때가 더 많다.
광고주가 준 과제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과제 자체에도 빈틈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문제를 재해석해보려는 노력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