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봇에게 조차 모성애를 강요하는 거 같아 난 좀 불편하더라"
아내는 영화관을 나오며 말했다.
주말을 맞아 아내와 장모님, 7살 딸아이와 함께 '와일드 로봇'을 관람했다.
미리 관람한 사람들의 평이 좋다는 아내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의심 없이 영화를 보았다.
아마 평이 좋다고 한 사람들은 한국의 애니메이션 명작 '마당을 나온 암탉'을 보지 못했던 것 같았다.
여러 면에서 와일드 로봇은 마당을 나온 암탉과 닮아 있었지만 오히려 더 뛰어난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너무 오래전 본 영화였음에도 단박에 그 영화가 떠올랐고, 이 올드한 신파를 AI로봇이라는 외피에 넣은 시도가 고루하고 지루했다.
AI가 '추론'까지 하기 시작한, 기술의 진보가 그 어느 때보다 무섭게 앞서있는 시대다.
추론을 한다는 것은 AI가 학습한 지식을 사용해 스스로 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SF에 많이 나오는 스토리처럼, 지구를 살려야 하므로 지구를 죽이는 인간을 모두 죽여야 한다는 결론을 AI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과 같다.
기술의 진보가 두려울 지경인 이 앞선 시대에도 모성애가 아름답다는 것을 영화는 꼭 보여주고 싶었을까?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모성애의 위대함을 깎아내리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아내의 말처럼 이 땅에 사는 많은 엄마들은 AI시대에도 엄마들의 무조건적 사랑을 강요하는 주제에 불편할 수 있겠다 싶었다.
작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제 나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을 원서로 읽은 사람이 되었다.
부족한 내공으로 문학을 업으로 삼지 못했으나 문학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벅차오르는 마음이 오래갔다.
역시 미천한 문학적 해석 능력으로 작가의 작품 세계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것은 능력 밖의 일이다.
한강의 대표작 [채식주의자]는 쉬운 소설은 아니다. 그녀가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책을 덮고도 오래오래 생각하게 만들었다. 내가 내린 결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은 좀 가벼울 수 있지만, '폭력인 듯 폭력 아닌 폭력의 잔인함'이었다.
책의 내용엔 기존에 만나지 못한 생경한 장면 묘사들이 여럿 있지만 폭력을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자신을 자해하는 주인공과 아버지의 손찌검 정도만이 실제 물리적 폭력의 전부다. 하지만 연작에 등장하는, 서로 연결된 주인공들은 모두 폭력과 연결되어 있고 그에 의해 상처받았고 기어이 정신줄과 목숨줄까지 놓으려 한다. 이 소설에서 내가 느낀 폭력은 물리적 과격함이 아닌 너무 하찮아서 폭력이라 불릴 수 없는 일상적 모습을 띄고 있다. 읽는 내내, 읽은 후까지 찜찜하고 마음을 짓누르는 지점은 아마도 나에게는 그와 유사한 일상적 폭력성이 없는 것일까?라는 지점이었던 것 같다.
주인공, 영혜가 어린 시절 집에서 키우던 개에게 물리자 오토바이에 개를 묶고 죽을 때까지 끌고 다녔을 뿐인 아버지, 과분한 것들을 좋아하지 않아서 세상에서 가장 평범해 보이는, 영혜와 결혼했을 뿐인 남편.
그저 '난 고기를 먹지 않아요'라고 이야기했을 뿐인 영혜와 그녀의 채식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인 모든 가족. 우리가 흔히 그리는 과격함이란 모습으로 실제 하지 않았을 뿐, 이 모든 것들은 영혜가 채식마저 거부하고 식물이 되는 것으로 육체적 삶을 마감하고 싶게 만든 폭력 이상의 것이 되어 버렸다.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나에게 전해준 메시지는 '너무 하찮아서 그것이 설마 폭력이라 느껴지지 않을 관념의 형태나 누군가를 위한다는 생각에서 행해지는 말까지 모두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폭력(暴力)은 신체적인 손상을 가져오고, 정신적·심리적인 압박을 가하는 물리적인 강제력을 말한다.
불편이라는 단어로 약화시켰지만 와일드로봇에서 아내가 느꼈던 불편함 역시 폭력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만드는 광고도 마찬가지다.
광고는 늘 최대의 효율을 생각한다. 가장 많은 대중에게 최대한의 공감을 전달하기 위해 고민하는 작업이다. 그 과정에서 소수의 불편은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지점들은 결국 광고 역시 누군가에게 불편함이 될 수 있고 불편함은 누구에게는 폭력이 되어 도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들은 광고계에서 실제로 많이 일어난다.
애플은 지난 2024년 5월 신제품 아이패드를 홍보하기 위한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피아노, 기타, 물감, 카메라 등 창작과 예술 활동에 사용되는 도구가 거대한 유압 프레스에 의해 압착된다. 창작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아이패드에 들어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였다. 하지만 많은 예술가들은 인간이 일궈온 예술적 창의성의 역사를 최신 기술로 짓밟는 것으로 해석했고 애플 광고의 불편함에 항의했다. 애플도 그러한 실수를 인정하고 해당 광고의 광고 계획을 철회했다.
광고를 만드는 일은, 제품과 서비스의 가치를 전달하는 일이지만, 더불어 동시대의 대중들에게, 광고를 만드는 사람들의 미세한 생각들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조심스러운 작업이다.
그러다 보니 광고를 보는 소비자들에게 우리가 만든 광고가 혹여 불편함을 주지는 않을지 고민해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개인적으로도 어린이 교재나 어린이 건기식 광고를 만들면서 세심하게 소비 시청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한 적이 있다. 부모 중 엄마가 아이의 교육과 건강에 신경 쓰는 비율이 더 큰 것은 사실이겠지만 광고에 엄마만 등장시키는 것은 어떤 엄마에겐 공감을, 어떤 엄마에겐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광고를 만들기 전에 우리가 만든 광고가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을 갖게 하는지 세심하게 파악해야 한다. 이런 지점을 사전에 고민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결과적으로 큰 차이를 만든다.
앞으로 한 번쯤은, 더 물어봐야겠다. 내가, 우리가 만드는 광고가 누구에겐가 폭력이 되지는 않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