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많은 광고주들의 요청사항이 담긴 RFP를 받아보았다. 매년 100여건 남짓한 광고 마케팅의 의뢰가 들어오므로 그 가지수는 족히 1000여건은 넘을 듯 하다.
RFP에서 대부분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요구는 우리의 상품은 이러한 기능적 특징을 갖고 있으니 이 특징을 타겟 소비자에게 임팩트 있는 컨셉과 크리에이티브로 전달해 달라는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범하기 쉬운 오류는 자신들이 만든 제품의 가치가 기능적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능적 우위라는 가치를 잘 전달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를 원한다.
하지만 기업이 팔고 싶은 가치와 소비자가 사고 싶은 가치는 늘 동일하지 않다.
'닥터캡슐만의 기능성 가치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캠페인을 하고 싶다'
'랄라라랄라 랄라랄라라'
'투우사의 노래'로 만든 CM송이 유명한 닥터캡슐 캠페인을 담당하게 되었다.
빙그레의 닥터캡슐팀에게 전달받은 새로운 캠페인 목표는 '이중캡슐'의 기능을 잘 알리는 것이었다.
음료에 담긴 이중캡슐로 유산균을 살아서 장까지 가게 하는 닥터캡슐.
오랜 세월 이중 캡슐이라는 기능적 차별성을 소비자에게 어필해온 브랜드가 이 차별적 기능성을 더 강화하고 싶은 건 당연한 전략 방향이었다. 하지만 미팅을 통해 파악된 구체적은 문제와 해결지점의 바람은 사뭇 달랐다.
표면적으로 문서 상에 있는 광고주가 바람은 이중캡슐의 기능적 장점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팅을 통해 확인된 광고주의 궁극적 기대는 기능적 장점의 전달을 통해 마트에서의 판매량을 올리는 것이었다. 당시 닥터캡슐은 편의점에서는 잘 팔렸지만 대형 슈퍼와 마켓에서는 고전하는 중이었다.
광고주의 기본적 요구사항은 기능적 장점의 전달이었지만 기능적 장점의 전달은 평범한 문제의 해결 방법일 분이라 생각했다. 마트의 판매량을 올리는 것이 목표라면 타겟이 달라질 수 있고 타겟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해야할 이야기, 접근해야할 전략과 컨셉 모두의 방향이 완벽히 다른 방향을 향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편의점에 자주 가는 사람과 마트에 자주 가는 사람은 다르고 누구를 주 타겟으로 할 것인가에 따라 문제는 재정의된다고 생각했다.
캠페인의 전략 방향을 정할 때, 문제를 무엇으로 정의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문제가 무엇이냐에 따라 공략해야 할 타겟도 달라지고 달라진 타겟에게 소구해야할 가치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로 인해 세밀한 타겟팅이 가능해지면서 무엇을(what to say), 어떻게 말할 것인가(how to say)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누구'에게 말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되었다.
what과 how는 who의 종속변수일뿐이다.
사실 TV만이 영상 광고의 전부이던 시절엔 general 한 타겟이 수용할 수 있는 general 한 메시지가 필요했다. 일반적 메시지는 당연히 공감의 폭을 넓여야 하며 따라서 역설적으로 타겟마다의 깊은 공감을 끌어낼 수 없다. 깊은 공감을 위해서는 '누구'에게 말할 것인가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닥터캡슐팀의 첫 가설은 '제품의 전문적이고 기능적인이미지를 전달하면, 기능성 유산균 음료를 고려하는 소비자가 닥터캡슐을 선택할 것이다'였다.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타겟들의 기능성 유산균 음료의 구매 행태를 알아야 했다.
조사를 통해 40~60대의 여성 타겟이 본인과 가족을 위해 기능성 유산균 음료를 구입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재미있는 사실은 기능성 음료임에도 비싸지 않은 가격 때문에 소비자들은 매대 앞에서 큰 고민 없이, 싸거나 유명한 제품을 선택하고 있었다. 이 사실은 기능성 음료라는 카테고리 때문에 유산균 음료가 흡사 고관여제품처럼 생각될 수 있으나 실은 천 원 남짓의 저관여 상품임을 상기시켜 주었다.
만약 매달 먹어야 하는 수 만 원짜리 건강기능식품이라면 고관여 제품으로 분리하고 그에 맞는 전문적인 기능성 가치를 강조하는 커뮤니케이션이 맞을 수 있다. 하지만 매대에서 순간적인 선택을 받는 저관여 제품이라면 다른 가치를 어필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수 많은 동일한 기능의 제품이 매대 앞에 있을 때 우리는 어떤 가치를 팔아야 하며 팔 수 있을까?
저관여 제품이 소구해야 할 가치는 오히려 제품의 기능적 가치보다 '고민 없이 구입할 수 있는 기억' 이라는 가치가 맞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제품의 기능보다 제품의 기억이라는 가치에 집중했다.
물건을 고르는 순간 기능을 쉽게 기억시킬 수 있는 것이 닥터캡슐에게 필요한 가치라고 결론지었다.
즉 닥터캡슐에게는 쉽고 기억에 남을 메시지가 필요했다. 핵심 타겟인 주부들의 기억에 남아 매대 앞에서 구매를 끌어낼 컨셉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여성 주부들은 어떤 광고에 반응할까? 우리는 여러 데이터를 분석해 40~59 타겟들이 다음과 같은 광고에 호감을 보인다는 것을 알아냈다.
'공감되는 친근함과 함께 익숙한 음악이나 익숙한 모델이 나오는 광고, 내용적으로는 심플하고 이해하기 쉬우며 직관적인 방식의 광고'
타겟들은 이런 광고에 좋은 점수를 주고 있었다. 이들에게 유산균을 살아서 장까지 도달시키는 이중 캡슐의기능적 강점을 심플하고 쉽게 이해시켜야 했다.
여러 회의를 거쳐 우리는 타겟들의 일상 속에서 닥터 캡슐의 기능성을 심플하게 전달할 장치를 찾아냈다.
주부들의 거의 매일 받지만 항상 기다리는 것, 1년간 무려 1억 건이 넘는 검색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관심이 높은 것. 바로 택배였다. 배송의 가치는 구입한 소중한 물건을 안전하게 집까지 전달하는 것이며 이는 모든 타겟들이 공감하는 것이었다. 닥터 캡슐의 가치 역시 유산균을 죽이지 않고 안전하게 장까지 배송하는 것이다. 택배와 이중캡슐의 가치는 비슷한 면이 있었다. 우리는 캡슐 배송의 가치를 택배에 비유해 전달하기로 했다. 어려운 기능적 가치를 쉽고 친근하게 보여줄 좋은 방법이었다.
우리는 유산균을 살아서 장까지 보내는 개념을 타겟이 쉽게 이해하도록 '유산균 캡슐배송'이라는 컨셉을 만들어냈다. 캡슐배송이라는 컨셉은 광고로 만들어져 소비자들을 만났다.
광고를 본 소비자들이 마트를 찾았을 때 광고 상기를 통해 구매로 연결되도록 배송 컨셉의 패키지를 제안했다. 패키지를 변경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음에도 빙그레는 흔쾌히 컨셉을 적용한 패키지 제작을 수락해 주었다.
소비자들은 일상에서 늘 만나는 택배상자 모양을 띈 새로운 닥터캡슐 패키지에 눈길을 주었고 이를 통해 닥터캡슐의 판매량도 번화를 보였다.
설문조사에서 소비자들은 유산균이 살아서 장까지 간다는 이중캡슐의 기능적 장점에 높은 선호를 보였다. 실제 해당 기술은 다른 유산균 드링크 제품들이 갖고 있지 못한 차별적 장점이다.
우리는 타겟들이 이러한 장점을 쉽게 이해하고 닥터캡슐의 가치를 알게 하고 싶었다. '캡슐배송'이라는 컨셉은 철저하게 타겟을 정하고 타겟을 이해한 후에 탄생되었다. 만약 타겟들이 편의점을 찾는 젊은 층이었다면 또 다른 전략 방향의 컨셉이 필요했을 것이다.
우리는 마트를 찾는 주부 타겟에게 어려운 기능적 가치를 전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기능적 가치를 쉽게 전환하는 것이 소비자가 복잡한 매대 앞에서 살 수 있는 쉬운 가치라고 생각했다.
문제를 재정의하고 그 재정의된 문제에 따라 타겟을 정한 후 타겟에 따라 전해야 할 가치역시 재정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