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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학나경 Dec 12. 2022

반박하는 이상휘

학나경 인터뷰 #20

의문이 많은 사람이 좋다. 대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좋아한다. 누군가는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느낄지언정, 사실 의문을 품는 일은 대상의 이면을 보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대상을 평면적으로 지각하는 것이 아닌, 입체적인 존재로 인지하기 위해서는 뒷면을 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반박은 대상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다.

김지연 '학나경'은 좀 읽어봤나.

이상휘 사실 '학나경'의 취지에 그렇게 공감하지 않는다

김지연 이런 비공감 너무 좋다. 왜 공감하지 않는가.

이상휘 학교, 나이, 경력이 단지 숫자나 이름인 것뿐만이 아니라, 자기가 어떻게 살아왔냐를 보여주는 흔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요소들을 배제하고 싶지 않다.

김지연 내가 생각한 학나경의 취지는 이렇다. 모든 곳에서 학나경을 포함한 얘기를 하니까, 한 번쯤 학나경을 배제해보면 어떨까, 해서 만든 거다. 실험적인 측면에서. 콘텐츠가 모든 요소를 포괄하려고 하다 보면, 결국에는 아무것도 포괄하지 못기 때문이다.

이상휘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된다. "Everything means nothing"이니까. 하지만 카피가 너의 채널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김지연 알겠다. 바꿔보겠다.


김지연 생각보다, 너는 생업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편으로 보인다. 만약 지금 하고 있는 일의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일을 했어도, 생업을 이렇게 중요하게 여겼을 거라고 생각하나.

이상휘 나는 솔직히, '어떤' 일을 하냐 보다는 '어떻게' 내가 그 일을 하고 있느냐를 중요시한다.

김지연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나.

이상휘 스스로가 굉장히 일에 몰두해있다고 느낀다. 일을 대하는 내 태도가 조금 공격적이긴 한 것 같다.


김지연 현재 직업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이상휘 (전체를 100이라 치면) 60 정도다.

김지연 나머지 40은 뭔가.

이상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그게 35 정도다. 나는 나를 좀 부숴가면서 살아서, 중요한 것들이 생기면 나 자신을 뒤로 미룬다. 내가 망가지고 있음을 느껴도, 괜찮다. 나머지 5는 나를 현실로 붙들고 있는 생각들. 그래도 잠은 자야지,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뭐 이런 생각들이다.

김지연 그러면 앞으로는 일이 너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땠으면 좋겠는가.

이상휘 조금 더 줄이고 싶다.

김지연 의외다. 직업을 그렇게 사랑하는데, 줄이고 싶다는 대답이 나올 줄은 몰랐다.

이상휘 되게 모순적인 건데, 내가 일하는 걸 되게 좋아하기 때문에 일을 줄여야지만 일을 오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지연 맞다. 원래 뭔가를 할 때,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의 70% 정도만 투자를 해야 뭔가를 지속할 수 있는 거라고 하잖나. 그래서 '대충 하자'라는 말이 나온 것도, 그래야만 더 오래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뭐든 100%를 투자하면 그게 오래가지 않을 걸 아니까.

이상휘 최근에 일하면서 집에서 혼자 막 울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전에는, 사실 나의 95%가 일이었다. 그런데 회사에 변동이 생기면서, (일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힘들더라. (그래서 삶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중을 줄이고 싶다.)

김지연 맞다. 그래야 (무너진 이후에도) 회복을 할 수 있는 소위 회복탄력성이 생기는 게 아닌가 싶다. 나도 그래서, 내 자아를 분리하려고 한다. 이 분야에서 무너진 자아가 있어도, 다른 50%의 자아는 아직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고, 하나의 자아가 실패해도 나는 완전히 망가진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을 하려고 한다. 잘 안되지만.


김지연 회사 면접에서는 말하지 못하는 자신의 장단점이 있다면.

이상휘 나는 항상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을 한다. 남들한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다. 그럴 수 있지, 그러면서 산다. 자기 합리화를 잘한다. 솔직히 이건 나를 파는 자리에서는 단점일 수 있다. 그렇지만, 내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김지연 나는 그게 삶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이상휘 그리고 의외로 '자기 계발'을 하지 않는다.

김지연 나도 자기 계발이라는 말을 굉장히 싫어한다.

이상휘 나는 자기가 자기 계발을 하고 있으면서, '나 자기 계발한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싫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과정은 자기 계발이다. 근데 그거를 마치 특별한 것 하는 것처럼 말하는 게 싫다. 

김지연 동의한다. 요즘은 자기 계발의 카테고리가 정해져 있지 않나. 영어공부라던가, 어떤 모임에 나간다던가.

이상휘 맞다. 앉아서 망상하는 것도 자기 계발의 일환일 수 있는데.

김지연 집에서 그냥 누워있는 것도 자기 계발이다. 열심히 살지 않아도 자기 계발하고 있는 과정일 수 있다.

이상휘 너는 열심히 안 사는 걸 열심히 하고 있는 거다.

김지연 맞다. 나는 대충 살기를 열심히 하고 있다. 나는 나의 100%를 투자하면서 일 같은 걸 하고 싶지 않다.


김지연 원하는 자신의 모습이 되기 위해 사소하게 하루하루 실천하는 것이 있다면.

이상휘 하루에 한 번은 참으려고 한다. 사실 어디에서도 잘 참지 않는다. 나는 표현이 되게 투명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이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회사에서도 그렇고. 그래서 이제는 한 번은 생각을 하려고 한다. 모두가 나와 같지 않으니까.

김지연 사회성을 기르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이상휘 유아기에서 넘어간 같다. 세상 모든 것이 내가 중심이었던 유아기에서, 청소년으로 넘어가고 있다. 가족한테도 마찬가지로, 참으려고 한다.



감정이나 의견을 숨기지 않는 사람이 좋다. 아무리 사회적인 사람이 되어갈지언정, 뾰족함을 남겨두고 살아가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상휘가 무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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