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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돌보 Jun 09. 2023

위로의 파스타

나를 위한 요리


위로받고 싶은 날이 있다.

꼭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읽어주는 친구도 좋고 조용히 보는 영화 한 편도 위로가 된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위로가 되지 않는 날이 있다. 터벅터벅 걷는 것조차 힘이 없어 어려운 날, 갈증이 나 삼킨 물 한 모금도 씁쓸하다. 어지럽게 가득 찬 머릿속에서 잔뜩 헤매는 날, 사무친 외로움 그 너울에 정신을 내맡기면 세상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람이 된다. 그런 날에 종종걸음으로 집 현관을 찾는다. 대충 던지듯 신발을 벗어 놓고 씻지도 않은 몸을 침대에 던진다. 그런 나는 그대로 잠에 빠져든다.




그때는 자는 게 답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일어날 힘이 나면 금세 배가 출출해진다. 자는 동안 회복된 에너지가 그제야 제대로 작동하는 순간, 나는 요리를 한다. 나만을 위한 파스타를.


파스타는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 중에서도 제일 그럴듯하다. 모양새는 멋지고, 맛도 좋지만 만들기도 참 쉽다. 시간도 얼마 안 걸려 배고플 때 급하게 해먹기도 좋다.


냉장고를 열고, 파스타에 넣을만한 재료를 찾았다. 요즘 어찌나 정신이 없었는지 장도 제대로 못 봐놨다. 억지로 냉장고 안을 뒤적거리다 발견한 썬드라이드 토마토. 창의력을 발휘해 이것으로 오늘의 파스타를 만들어 보려 한다.




늘 언제나 누군가를 위한 요리만을 만들어왔던 것 같다. 회사일로 오늘도 지친 남편을 위해, 하루종일 뛰어놀다 지친 아이들을 위해 정신없이 만들다 보면어느 순간 나라는 존재는 한없이 작아진 느낌이 들곤 한다. 그 순간, 내게 참을 수 없는 서글픔이 폭풍처럼 몰려온다.


힘들다며 툴툴 대는 날 받아주는 그녀 품에 한참을 안겨 엉엉 울었던 한때, 그날이 떠오른다. 그러면 그녀가 준비한 카레 한 상에 금세 일상을 되찾곤 했었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돼서야 그녀가 얼마나 외롭게 주방 한편을 우직히 지켜왔는지 알게 되었다. 나 역시 철없는 딸내미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무도 그녀의 밥상을 차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외로운 식탁에 홀로 앉아 우리가 남은 반찬에 밥을 비벼 먹던 그녀의 실루엣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그만큼 난 무심한 딸이었다.


아내가, 엄마가 그런 것 같다. 아이들과 남편을 챙기다 보면 스스로를 위한 시간이 없다. 그저 남은 찌개를 바닷물만큼 짤 때까지 끓이고 끓여 찬 밥에 비벼 먹는 나의 모습이 처량하기까지 하다.




오늘은 나를 위한 요리를 꼭 만들어 보기로 한다. 위로가 절실한 오늘 점심, 아무도 없는 적막이 아우르는 우리 집 주방 한편에서 다짐한다. 그토록 눈물겨운 엄마의 헌신이 고작 이렇게 사는 나를 바랐을 리 없을 것이다. 오늘만큼은 나를 위한 요리를 정성껏 만들어 본다. 오직 나만을 위한 요리를 만들면서 보다 소중해진 나 자신을 다독인다. 입맛도 타인을 위해 맞출 필요가 없다. 그저 내 입맛에 맞추면 그만이다.


알단테로 삶은 면의 식감이 내 식욕을 돋운다. 새콤한 토마토의 풍미가 침샘을 자극하고, 파마산 치즈가루의 고소함이 기분 좋다. 여기에 준비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곁들여본다. 이 순간, 그 어느 근사한 레스토랑 부럽지 않다. 나에게서 나에게로 떠나는 최고의 식도락 여행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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