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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돌보 Sep 07. 2023

너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나는 2남 중 차남과 결혼을 했고 언젠가부터 매일 헤어질 수가 없어 검은 머리 파뿌리 되겠다며 버진로드를 걸었다. 


그렇게 아내가 되었고, 누군가에게는 며느리였다. 


어머님과의 첫 만남이 아직도 선명하다. 매서운 날씨에 손끝이 얼어붙어 잘 움직여지지 않던 날,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미색의 스커트를 입고 인사를 드리던 날. 그 어려운 첫 만남 속 준비해 간 소박한 쿠키 한 꾸러미를 수줍게 드리던 그 순간. 2012년 겨울. 그러다 며느리가 되어서는 고운 한복 입고서 인사드리던 따사로운 볕 아래의 오후. 기억이 난다. 그저 내게는 늘 어렵기만 하던 순간들. 




나는 꽤나 내성적이다. 그래서 관계를 맺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곤 했다. 기가 세거나, 외향적인 사람 앞에 서면 이유 없이 주눅 들었다. 더구나 그 어렵다는 시부모님 앞에선 더더욱 작아지기만 했던 것 같다. 가끔 시어머니와 살가운 대화를 하는 며느리들을 길에서 마주칠 때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한편으론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늘 노력을 했고, 어머님과 함께 있을 때면 머릿속은 온통 말할 주제를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언제나 노력을 했는데, 당신 눈에는 여전히 들지 못하는 며느리인 것 같아 서글펐다. 어느 날 서운한 감정에 밤새 펑펑 울기도 했다. 어머님은 언제나 그랬다. 딸 같은 며느리는 없다고. 결혼을 하고 보니, 참 여러 말을 많이 듣는다. 조언이라는 테두리를 두르고 다가오는 수많은 말. 그 말들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겠지만. 지나치는 작은 말에 그만 서운함을 금치 못해 집에 가는 길 사무치게 울었던 순간들. 어떤 때는 술김에 남편에게 하소연 아닌 하소연으로 늘어놓다가 싸움으로 번진 날도 여럿 있었다. 

서로 다른 가치관, 환경을 둘러싸고 한숨도 못 잔 날들이 수두룩했다. 멋쩍게 웃었지만, 뒤돌아서는 울음이 터지곤 했다. 때로는 잘 보이지 못한 것 같아, 때로는 지나치는 말씀에 날카롭게 베이어 가슴이 시렸다. 멀리서 바라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그땐 그랬다. 하나부터 열까지 매달렸다. 지독히도 싸웠나 보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명절이 되거든 우리 가족은 산책을 떠난다. 초연한 달밤을 누비며 걷던 그 시골길 끝에서 엄마의 아픔을 알리던 날, 우려의 말씀에 말없이 눈물을 떨구던 그 밤의 시간 속에서. 영원할 것만 같던 정적이 우리를 찾아온다.   


그런 내가 그녀에게서 진심을 확인하던 날. 유난히 추웠던 11월 어느 김장철, 말없이 아픈 친정엄마의 김장을 손수 지어주던 그 마음. 한 통의 김치가 내게 안겨준 것은, 추운 날 함께 만든 김치의 정성뿐이 아니었다. 그저 우리 사이 잘못되었다고만 숱한 탓을 하던 세월에 대한 반증일까, 그토록 몰랐다 나는. 그때가 기억난다. 헤맬 때, 괜찮다며 다독여주던 그녀의 따스한 체온에 눈물이 차오른다. 


엄마는 늘 잔소리했다. 잘해드려라, 그 말이 어찌나 지겨웠는지 모른다. 내 사정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만하면 복 받은 거라는 그 소리가 그리도 싫었다. 그런 내게 어머님의 김장은 이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크나큰 죄책감과 깊은 감사함의 마음이었다. 엄마는 말없이 미안해했다. 사돈이 손수 지어준 김장은 짜고 맵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 젓가락 뜨더니 이내 뜨거운 눈물이 그녀를 새로 덮친다. 당신도 울고 나도 울던, 만감의 16년 겨울.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사람이었다, 내게 그녀는. 


그런 그녀가 우울의 숲을 거닐고 있다. 평생 기다려온 것이 그것은 아닐 텐데, 우울의 폭풍은 이내 그녀를 잠식시키고야 말았다. 다섯 알이 넘는 약을 삼키며 어제도, 오늘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딘가 희미해진 시선으로 고개를 떨군 그녀의 좁은 어깨가 나를 슬프게 한다. 부족한 내가 그녀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은 말할 수 없는 슬픔의 파도가 되어 마음속 어느 깊은 벼랑 끝에서 넘실거린다.     


나는 여전히 그녀에게 며느리이겠지만, 나는 오늘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딸 같은 며느리 대신 소중한 가족이 될 수 있기를, 오늘 나의 전화 한 통이 그녀에게 소소한 기쁨이 되어 드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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