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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돌보 Jul 30. 2023

안녕, 나는 엄마야

누군가를 위해서 살아간다는 것. 그 누군가가 나의 전부가 되어, 그래서 내 모든 걸 다 바칠 수 있다는 마음가짐. 그 모든 것을 나는 엄마가 되기 전까지 알지 못했다.  


매일 아침이 밝아오거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보잘것없는 내가 너의 온 우주가 되어버린 순간, 그저 난 최선을 다하겠다며. 내 안의 모든 것을 기꺼이 너에게 다 내어주겠다고.




아이가 생기고부터 나의 일상은 크게 변하였다. 꼭두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쉴 새 없이 바빴고, 대부분은 나보다 오로지 아이를 위한 시간들이었다. 지난날의 나는 여유가 흘렀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지워진 엄마라는 견장은 꽤나 낯설고, 무척이나 무거웠다. 생각보다 엄마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었다. 가끔은 육아 카페를 기웃거리며 나와 같은 처지의 엄마들이 쓴 글을 읽으며 나를 다독였다. 아무리 인터넷으로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세상이라지만, 모든 게 처음인 내게는 그마저도 새로워 너무나 어렵게 느껴졌다.


처음부터 엄마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된 엄마라는 모습이 싫었던 날도 있었다. 어쩌다 비친 거울 속의 나의 모습은 늘어진 티셔츠에 출산으로 튀어나온 배를 한, 꼭 우리 엄마와 닮아있었다. 정말로 그런 모습이 되어버린 내가 싫었다.


엄마가 되었지만, 정말로 엄마가 된 것은 아니었다. 언제나 당차고 자신감 넘쳤던 나의 모습은 온데간데사라지고 수줍고 소심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런 나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그래서 더더욱 엄마라는 타이틀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런 내 곁을 지켜줬던 것은 남편도, 친구도 아니었다. 그나마 터놓고 말할 수 있었던 조리원 동기는 아이가 점차 커가면서 멀어졌고, 자연스레 나는 점점 혼자가 되어갔다. 밥 챙겨 먹을 시간 없이 아기띠를 하고 아이를 재워가며 허겁지겁 빵을 먹던 그 여름날의 오후와 어느새 어두워진 방안의 잠든 아이 옆에서 귀가가 늦는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마셨던 맥주 한잔의 위로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렇게 나는 매 순간 바쁘게 지냈지만, 외로웠고, 그런 나의 처지가 이따금씩 슬픈 너울이 되어 새하얗게 바래도록거칠게 나를 내려치곤 했다.


엄마였지만, 엄마가 되는 것은 힘겨운 일이었다.


열이 40도까지 치솟던 그 무수한 밤. 어둠에 목매어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다음날의 아침. 어느새 별밤지기와 하나가 되어 너의 곁에서 한참을 서성이던 날. 밤새 해열제가 듣지 않아 두 발을 동동거리던 어젯밤의 아픔을 나는 알고 있다.    


엄마가 대신 아플게, 얼른 나아라 우리 딸



그땐 그 말을 다 이해했다고 확신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이제야 알 것만 같다. 그때 그 절절했던 엄마의 마음을.


그토록 대신 아파주길 바라던 엄마는 정말로 이제는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아픈 거잖아. 엄마손 약손이 이토록 원망스러웠던 적이 또 있었을까.


부모와 자식이라는 것. 어쩌면 어렵고 무거운 이 엄청난 역할을 해내며 우리는 그렇게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힘들었지만, 그러나 고생한 만큼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첫걸음마를 떼던 날 어설픈 발걸음으로 내게 폭 안기던 그날 저녁, 그날은 마침 나의 생일날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때로는 기쁨이었고, 때로는 걱정이었다. 남들이 듣는다면 그저 스쳐지나칠 수 있는 그런 식상한 류의 일들이 내게는 지진이나 해일만큼 어마어마하게 느껴지곤 했다. 말이 느리진 않는지, 점프는 잘하는지. 걱정으로 어둠을 지새우던 수많은 밤. 할 수만 있다면, 이 아이가 헤쳐나가야 할 그 모든 허들을 대신 넘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대신 걷고, 대신 말하고, 대신 아파주고 싶었다. 이 모든 밤, 추억할 우리의 오늘을 소중히 되새기며 그 맑은 눈망울 속에 내 모든 걸 내어주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다 바칠 수 있었다.


그런 엄마라는 자격이 버거운 날도 많았다. 나는 놀이터에서 다정히 모래장난을 함께 치며 놀아주는 엄마도 아니었고, 자기 전 갖고 오는 동화책이 성가셔 억지로 아이를 재웠던 날도 수두룩 했다. 하얀 벽을 도화지 삼아 낙서한 아이들에게 소리 지른 날, 자책감으로 잠을 설칠 만큼의 양심은 있었다 해도 다음날 좋은 엄마가 되어주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 서툴고, 부족한 엄마였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언제나 반갑게 나를 찾아주고, 온 힘을 다해 사랑해 준다.



엄마에게도 나는 역시나 그런 존재였다. 나는 그녀의 딸이었고, 그녀는 나의 온누리였다. 여전히 나는 엄마라는 존재를 감히 정의 내릴 수는 없을 것 같지만. 나의 해맑은 미소에 조건없이 모든 것을 내어주던 그녀가 바로 나의 엄마였다.


나 또한 오늘도 이렇게 엄마가 되어 간다. 그리고 이제야 그녀의 마음을 알 것만 같다.

때마침 새빛처럼 빛나는 너의 웃음에 언제나 부끄러울, 나는 엄마 그리고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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