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아온 돌보 Jun 14. 2023

엄마를 위한 나의, 토마토 매실청

초록 내음이 거칠게 풍기고, 길가에 나란히 펼쳐진 가로수 아래 잡초의 푸름이 어느새 짙어졌다. 밤이 되면 아직은 더위가 낯설 만큼 선선함이 느껴지는 이 계절, 나는 여름을 생각한다. 나뭇결을 살랑대는 바람이 귓가를 간지럽히거든 그때마다 그녀가 떠오르곤 했다.




그녀는 한여름의 문 앞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 계절, 살 날이 머지않음을 알게 된다.

아직도 그날이 떠오른다. 엄마가 태어난 6월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잔인한 달이었다. 진료실 앞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눈물이 가슴팍을 적실만큼 엉엉 울었다. 뜻밖의 헤어짐을 준비하는 것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어느덧 투병 6년이 되었다.


  

엄마는 아프고 난 뒤에도, 꼬박해서 내게 손수 만든 매실청을 보내 주셨다. 그 많은 매실을 물에 깨끗이 씻어 일일이 타올로 닦아 이쑤시개로 꼭지를 따낸다. 그리고는 설탕에 절여 항아리에 담아내어 꼬박 100일을 숙성시킨다. 아프지 않은 사람이 담기에도 몹시 힘든 일일 텐데.


엄마에게 매실청을 한통 씩 받을 때마다, 이번 매실청이 마지막일 것 같은 생각에 눈물이 흐르곤 했다. 작년부터 몸이 부쩍 안 좋아진 엄마는 매실청을 담지 못했다. 아무래도 지금 냉장고에 있는 매실청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엄마를 위한 음식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대단한 요리가 아닐지라도, 오롯이 그녀만을 위해 만들어 주고 싶었다. 솜씨를 뽐낼 만큼 요리를 잘하는 것도 아니기에, 고민의 시간이 꽤나 길었다. 무얼 만들까 싶다가 생각해 낸 토마토 매실청. 이 더위에 침샘을 돋우길 딱이었다.





많은 정성을 쏟는 음식도 아니었지만 기뻐할 엄마를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편이 따스해져만 갔다. 엄마가 나를 위해 매실청을 만들 때에도 이런 기분이었을 거야 싶은 생각이 들자 붉어지는 눈시울을 주체할 수 없어 어찌나 혼이 났는지 모른다. 조리시간은 대략 한 시간, 그 시간만큼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잔꽃무늬 갈색 보자기를 펼쳐 준비한 토마토청을 예쁘게 담는다. 엄마가 되어서 비로소 알게 된 우리 엄마의 진심. 이제야 알 것만 같다. 엄마가 나를 얼마나사랑하는지.


시집간 지 10년이 되어서 겨우 만들어 본 음식이 왜 이렇게 미안하고, 촌스러운지 모르겠다. 나름대로 멋 내겠다며 동동 띄운 레몬 반 개가 왜인지 외롭게만 보인다. 그래서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가 보다.


엄마는 집 앞의 마트를 가는 것도 힘겨워한다. 그런데도 숨 쉬기 힘들어 산책도 어려운 몸을 이끌고는 손수 손주를 봐주겠다며 내게 단 며칠이라도 쉬라고 성화다. 나도 엄마이니까, 그런 엄마를 그래도 알 것 같다.


엄마가 내게 바친 당신의 인생을 내가 모두 보답해 드릴 수는 없겠지만.

이번 토마토 매실청이 그녀에게 조금의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엄마의 마지막 매실청으로 담근 토마토 매실청은 역시 생각했던 것처럼 새콤하고 맛있었다. 맛은 어떠냐며 함께 나눠 먹어본 토마토청의 맛을, 그리고 함께 맛본 오늘의 기억을 엄마가 오랫동안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엄마를 위한 토마토 매실청에 나의 사랑을 듬뿍 담아, 이 글을 바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