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통해 들여다본 세상
모습을 드러낸 백의사신 역할을 맡은 배우는 미국 배우 ‘마이클 섀넌’이다. 1974년생 미국인으로 빌 머레이가 주연한 영화 <사랑의 블랙홀(1993)>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후 <테이크 쉘터(2011)>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여 급부상했으며, <맨 오브 스틸(2013)>에서 조드 장군 역을 맡는 등 한국 관객에게도 낯설지 않은 배우다. 약간 사시처럼 보이는 눈동자 때문인지 <불릿 트레인>에서는 주로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가 마지막 교토 장면에서야 선글라스를 벗고 연기한다.
백의사신 부하들에 의해 폭탄이 장치된 가방이 열리면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난다. 이것을 신호로 약속이나 한 듯이 레몬은 멈춰있던 열차를 가속시키고, 달리는 열차로 올라탄 백의사신 패거리와 킬러들 사이에 일대 혈전이 벌어진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이 부분부터 영화는 주인공도 바뀌고, 장르는 구닥다리 일본 검객 영화도 아니고 액션 영화도 아니고 재난 영화도 아니고 코미디도 아닌, 정말 말 그대로 엉성하고 엉망진창이 된다.
영화 제목도 ‘총알 열차’ 이건만 총 대신 꾸역꾸역 일본도를 꺼내 휘두르는 것도 우스웠지만, 특히 장로와 백의사신과의 대결 장면에서는 칼을 빼는 장면이나 넣는 장면, 서로 대치하는 장면에서는 머리칼까지 휘날리는 느린 화면으로 연출된 것을 보고는 헛웃음까지 나왔다. ‘아! 차라리 <다찌마와 리(2000)>나 다시 찾아볼 걸’ 하는 후회가 몰려왔던 시점이다.
영화는 주인공이 바뀌고 장르도 이상해진 것에 그치지 않고 더욱 엉망으로 향한다. 한쪽 벽면이 완전히 날아간 열차 안에 장로와 백의사신은 초고속으로 달리는 상황임에도 바람의 영향을 전혀 안 받는 초인들처럼 굳건히 서서 싸움을 벌인다.
또 열차가 달리다가 벽을 들이받으면 보통 그 안에 타고 있던 사람은 관성의 법칙에 따라 앞으로 튕겨 나가야 함에도 브래드 피트는 반대쪽을 향해 날아간다. 이 장면에서 사람보다 가벼운 봉지, 칼 등 잡동사니는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는데, 브래드 피트가 느린 화면으로 날아가는 동안 얼굴로 날아와 부딪힌다. 만일 브래드 피트가 날아가는 방향이 맞다고 해도 사람이 날려갈 정도로 강한 바람에 부는 상황에서 강철로 된 물주전자를 얼굴에 얻어맞는다면… 살기 힘들지 않을까?
또 열차 한쪽 벽이 뻥 뚫려 있는 쪽에 앉은 장로는 안전벨트도 없이 그저 웅크린 채 버티고 있고, 의자를 붙잡고 버티는 기무라는 몸이 공중으로 붕 떠서 충돌의 충격을 표현하고 있는데, 사람이 날릴 정도의 바람이 차내에 불고 있다면 한쪽 벽이 뚫린 곳은 어때야 할까? 좁은 차내 공간에서 휘몰라치는 바람이 이 정도인데 뻥 뚫린 벽 쪽에서는 전혀 바람이 불어오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기본적인 관성의 법칙도 자연의 법칙도 무시한 너무나 비현실적 묘사다. 그냥 딱 만화 수준의 디테일이다.
아무튼 이렇게 폭주하던 열차는 마주 오던 열차를 하늘 높이 날려버리면서도 끄떡없이 달리기도 하고, 한쪽 벽면 전체가 뚫렸음에도 초고속을 유지하며 달리는가 하면, 마지막엔 콘크리트 벽을 뚫고 주택가로 날아가서야 멈추는데, 이렇게 엉망인 디테일이 엉뚱한 곳에서 꼼꼼함을 발휘하고 있다. 열차가 칸칸이 분해되면서 일본 전통식 건축물로 가득한 마을을 덮치는 이 장면이다.
정말이지 그 옛날에 사람이 인형 옷을 입고 건물도 미니어처로 연출하던 시절만도 못한 장면이다. 초고속 열차가 탈선하여 엄청난 속도로 날아들었는데 약간의 먼지만 난다. 심지어 열차가 충돌한 건물은 살짝 흔들리는 것이 전부다. 거기에 비해 열차 내부로 전환된 화면에서는 꼼꼼하게도 무슨 PPL인지 영화 내내 일본의 상징적인 TV 화면이 끝까지 나온 것도 모자라 열차 밖의 모습으로 전환되었을 때는 갑자기 심하게 파괴되고 불타는 건물과 주변 환경이 그려진다.
그 이후로도 웃겨서 웃는 웃음이 아니라 어이없어 나오는 웃음이 이어지는 장면은 이어진다. 결투에서 장로에게 몸이 그어진 백의사신은 거의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은 모습으로 걸어 나와 뜬금없이 레이디버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그 당시에는 이미 그가 카버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한다.
그 엄청난 충돌과 열차 사고에서 걸어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멀쩡하다. 심지어 백의사신의 경우에는 장로가 썰어 넣은 칼의 위치도 그대로이고 뒷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프린스의 권총도 빠지지 않고 그대로 있다. 열차가 분리되고 몇 바퀴를 구르는 동안 어디 안전한 장소에 보호되었다가 걸어 나온 것인가!
총을 맞고도 멀쩡하던, 거의 불사신 같은 생명력을 보여준 기무라는 이제 거론하는 것 자체도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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