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는 힘! 생활인구와 로컬관광 전략』 열 일곱번째 이야기
여행객이 한 지역을 오래 기억하는 이유는 거대한 랜드마크나 화려한 건축물 때문만은 아니다.
때로는 길가에 피어난 작은 야생화 한 송이, 하늘을 스쳐 지나가는 새 한 마리가 그 지역을 특별하게 만든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오히려 그 소박함 속에 사람들은 마음을 머물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작은 존재들을 지역의 경쟁력이자 관광 상품으로 바꿀 수 있을까.
전라북도 고창은 매년 봄이 되면 ‘고창 청보리밭 축제’를 연다.
사실 보리밭은 오래전부터 농민들의 삶의 터전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지역은 그 풍경을 ‘상품’으로 전환했다.
초록빛 보리밭이 바람에 출렁이는 모습을 ‘생태와 치유의 상징’으로 브랜딩했고, 그속에 피어난 들꽃과 보리를 먹고 자란 새들을 관광객에게 이야기로 들려주었다.
축제를 찾은 사람들은 단순히 농경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농촌의 자연과 생태를 함께 체험하며 추억을 만든다.
새를 관광의 주인공으로 삼은 곳도 많다.
전남 순천만은 대표적인 ‘철새 관광지’다.
겨울이면 수많은 흑두루미가 날아오고, 탐조대에 선 관광객들은 카메라 대신 망원경을 들고 그들의 움직임을 따라간다.
순천시는 이를 단순 관찰에서 멈추지 않고, ‘생태해설 프로그램’과 ‘철새 사진 전시회’를 함께 열어 지역의 관광 상품으로 확장했다.
작은 새 한 마리가 지역의 브랜드가 되고, 철새의 날갯짓이 머무름을 만드는 자산이 된 것이다.
해외 사례도 눈길을 끈다.
일본 홋카이도의 ‘구시로 습지’는 두루미가 서식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지역은 이 새를 단순한 관찰 대상으로 두지 않았다.
지역 아트센터와 연계해 두루미를 모티브로 한 공예품과 일러스트, 공연 콘텐츠를 만들었다.
관광객은 습지에서 두루미를 본 뒤 마을 상점에서 관련 상품을 구매하고, 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또 다른 방식으로 두루미를 경험한다.
자연과 예술, 경제가 연결되는 순간이다.
야생화는 더욱 다채로운 방식으로 상품화된다. 제주에서는 봄마다 ‘유채꽃 축제’가 열린다.
노란 꽃밭은 그 자체로 장관이지만, 지역은 여기에 머물지 않았다.
유채꽃을 활용한 꿀, 기름, 향초 같은 상품을 개발했고, 꽃길을 배경으로 한 사진 촬영과 전시도 기획했다.
관광객에게는 유채꽃이 단순한 봄의 풍경이 아니라, 손에 들고 돌아가는 ‘기억의 기념품’이 된 것이다.
강원도 평창에서는 고산지대의 야생화를 테마로 한 ‘평창 야생화 축제’가 열린다.
평창은 올림픽 도시로 유명하지만, 이 축제를 통해 ‘야생화의 고장’이라는 또 다른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다.
축제는 단순히 꽃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꽃차 만들기, 야생화 사진 전시, 아이들을 위한 체험 교육을 더해 관광객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작은 꽃 한 송이가 지역 경제를 살리는 자산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야생화와 새를 상품화하는 핵심은 ‘스토리텔링’이다.
단순히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의미와 이야기를 전할 때 사람들은 더 깊이 기억한다.
어떤 꽃은 마을의 전설과 연결되고, 어떤 새는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메신저가 된다.
그 이야기를 엮어내는 순간, 자연은 관광객의 감성을 자극하는 브랜드가 된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보존과 체험의 균형’이다.
꽃을 꺾어가는 대신 꽃차로 즐기게 하고, 새를 쫓아다니는 대신 탐조대를 통해 지켜보게 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을 설계할 때, 상품화는 지속 가능해진다.
지역의 야생화와 새는 그 자체로는 작은 존재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는 계절, 사람, 마을의 이야기가 스며 있다.
그것을 엮어 상품으로 만들 때, 여행객은 단순히 스쳐 가는 손님이 아니라, 그 이야기의 일부로 머무르게 된다.
작은 꽃과 새가 지역을 기억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는 것이다.
- 멘토 K -
고창군청, 『청보리밭 축제 운영 자료』 (2022)
순천시, 『순천만 국가정원·철새 생태관광 프로그램 안내』 (2023)
Kushiro Tourism Office, 『Kushiro Wetlands Crane Tourism』 (2022)
제주관광공사, 『유채꽃 축제 및 지역상품화 사례』 (2021)
평창군청, 『평창 야생화 축제 자료』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