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는 힘! 생활인구와 로컬관광 전략』 열 여섯번째 이야기
여행의 매력은 언제나 ‘변화’에 있다.
같은 장소라도 봄에는 연둣빛 싹이, 여름에는 짙은 초록이, 가을에는 붉은 단풍이, 겨울에는 새하얀 설경이 풍경을 바꿔놓는다.
그래서 생태관광의 가장 큰 자산은 사실 거대한 시설이 아니라, 계절이 만들어내는 변화다.
한 번 다녀간 여행객이 다시 찾아오는 이유, 바로 다른 계절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다.
우리나라 순천만 습지를 떠올려 보자.
가을이면 갈대밭이 황금빛 바다처럼 물결친다.
수많은 여행객이 사진을 찍으러 몰려오지만, 순천만이 진정한 힘을 발휘하는 때는 겨울이다.
철새들이 찾아와 하늘을 가르며 나는 장면은 그 자체로 다큐멘터리가 된다.
순천만은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면서, ‘생태의 사계’를 경험할 수 있는 관광지로 자리매김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변화가 그대로 콘텐츠가 된 셈이다.
제주도의 곶자왈 숲도 계절이 주는 색이 뚜렷하다.
여름에는 짙푸른 숲의 생명력이, 가을에는 이끼 낀 돌담과 갈잎이 주는 고요함이, 겨울에는 숲 속에 스며든 따뜻한 햇살이 매력으로 다가온다.
이 숲은 언제 가도 다른 풍경을 보여주기 때문에, ‘계절마다 새로 오는 여행지’라는 이미지로 각인됐다.
곶자왈이 단순한 숲을 넘어 생태관광의 명소가 된 이유는 계절의 변화를 그대로 살렸기 때문이다.
강원도 인제의 자작나무 숲 역시 사계절의 힘을 잘 보여준다.
겨울에는 눈 덮인 자작나무 줄기들이 만들어내는 흑백의 풍경이 장관이다.
반면 여름에는 청량한 바람과 푸른 잎이 어우러져 시원한 피서지로 변신한다.
여행객들은 “같은 숲인데 전혀 다른 곳 같다”는 후기를 남긴다.
이처럼 계절이 바뀔 때마다 콘텐츠가 새로워지니, 같은 사람도 여러 번 찾아오게 된다.
해외 사례도 흥미롭다.
핀란드 라플란드는 여름에는 백야(白夜)를 활용한 자연 체험 프로그램을, 겨울에는 오로라 투어와 눈 위 산책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같은 장소가 계절에 따라 완전히 다른 콘텐츠로 변신하며, 방문객은 일 년 내내 새로운 이유로 라플란드를 찾는다.
결국 계절의 변화는 관광지에 ‘지속성’을 준다.
한 번의 방문으로 끝나는 관광지는 오래가기 어렵지만, 계절별로 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관광지는 생활인구를 늘리는 힘을 가진다.
사람들은 봄의 풍경을 보고 다시 가을을 기다리고, 겨울에 찾았다가 여름을 그리워한다.
그 반복이 곧 ‘머무름의 주기’가 된다.
생태관광에서 중요한 건 억지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자연이 이미 만들어 놓은 계절의 변화를 어떻게 경험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철새가 날아오는 순간, 눈이 내린 숲길, 바람이 바뀌는 계절마다 열리는 작은 축제.
이런 것들이 모여 마을과 지역을 다시 찾게 하는 이유가 된다.
여행자는 거대한 이벤트보다 작은 변화를 더 깊게 기억한다.
봄날 피어난 첫 꽃을 본 경험, 여름밤 풀벌레 소리에 잠든 기억, 가을 바람에 흩날리는 단풍을 걷던 순간, 겨울 눈길을 조심스레 걸었던 발자국.
이런 작은 계절의 이야기들이 모여, 생태관광은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 머문다.
계절이 바뀌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이치지만, 그 변화를 콘텐츠로 풀어내는 건 지역의 몫이다.
마을이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줄 때, 여행자는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찾아온다.
그 힘이 곧 로컬관광의 경쟁력이자, 생활인구를 늘리는 원동력이 된다.
- 멘토 K -
순천시, 『순천만습지 사계절 관광 안내』 (2022)
제주관광공사, 『곶자왈 생태관광 프로그램 자료』 (2023)
인제군청, 『자작나무 숲 계절별 운영 안내』 (2022)
Visit Finland, 『Lapland Seasonal Tourism Programs』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