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부부가 함께 창업하는 일의 어려움

『시니어 창업 해! 말어! 그 사이에서_2』 #31. 스토리

by 멘토K


시니어 창업 현장에서 의외로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퇴직 후 아내(혹은 남편)와 같이 작은 가게 하나 해보려 합니다.”
“부부가 같이 하면 인건비도 줄고, 서로 믿을 수 있어서 더 안정적이지 않을까요?”


겉으로만 보면 아주 합리적인 선택처럼 들린다.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파트너와 함께하는 사업, 불필요한 외부 인건비를 줄이고,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를 두고 출발하는 일.

실제로 창업 전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실은 훨씬 복잡하고, 때로는 냉정했다.


부부가 함께 창업하면 제일 먼저 부딪히는 것이 ‘역할 분담’이었다.

집에서는 남편과 아내로 살아왔지만, 가게 안에서는 점주와 직원, 사장과 파트너의 관계가 된다.


이 구도가 하루 이틀은 자연스럽게 흘러가지만, 시간이 지나면 작은 불만이 쌓인다.

“당신은 손님 응대가 서툴러서 내가 다 하잖아.”
“주방은 내가 다 책임지고 있는데 왜 힘들다는 말을 못 알아줘?”
“가정일은 그대로인데 장사까지 같이 하니 너무 버겁다.”


부부가 함께한다는 건 곧 24시간을 함께한다는 의미다.

출근과 퇴근의 경계도 없다.

아침에 일어나 가게 문을 열고, 저녁 늦게 문을 닫을 때까지 같은 공간에서 같은 문제를 맞닥뜨린다.

퇴근 후에도 대화 주제는 매출, 재료비, 손님 반응, 임대료 같은 장사 이야기뿐이다.

가정의 대화와 부부의 대화가 사라지고, 오로지 ‘사업 이야기’만 남는 순간이 온다.


이때부터 갈등은 겉으로 드러난다.

어떤 부부는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크게 다투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가게를 연 지 6개월 만에 서로 말도 섞기 싫을 정도로 사이가 틀어졌다.


이유는 단순했다.

남편은 ‘나는 퇴직 후 이제 여유롭게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었고, 아내는 ‘이왕 시작했으니 제대로 운영해 수익을 내야 한다’는 태도였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바라보는 목표와 속도가 달랐다.

결국 아내는 지쳐 집으로 물러났고, 남편 혼자 가게를 지키다가 얼마 못 가 문을 닫았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남편은 매출에 집착하고 아내는 고객 친절에 집중했다.

남편은 “손님 빨리 돌려야 수익이 난다”고 주장했고, 아내는 “손님이 기분 좋게 나가야 단골이 된다”고 맞섰다.


결국 매일 사소한 다툼이 이어졌다.

손님들조차 분위기가 불편하다며 발길을 끊었다.

장사의 본질은 ‘분위기와 신뢰’인데, 주인이 다투는 모습은 고객에게 금방 드러났다.

부부의 갈등은 장사에도 곧바로 영향을 미쳤다.


부부가 함께 창업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갈등이 일과 가정 모두에 동시에 번진다는 점이었다.

회사 동료라면 일터에서 부딪혀도 퇴근 후 각자의 공간에서 회복할 시간이 있다.

하지만 부부는 그럴 수 없다.

가게에서 다툰 뒤 집에 돌아와도 서로 마주 앉아야 한다.

갈등을 풀 시간과 공간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누적된 불만은 장사보다 관계를 먼저 무너뜨린다.


특히 시니어 시기에 접어든 부부라면 더 예민하다.

은퇴 후 ‘이제 좀 쉬고 싶다’는 기대와, ‘이제라도 재정적으로 안정돼야 한다’는 불안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런 온도 차는 사업이라는 무거운 현실 속에서 쉽게 충돌한다.

남편은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 속도를 늦추고 싶고, 아내는 가계의 부담을 걱정하며 속도를 높이고 싶어 한다. 그 사이에서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원망이 앞서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부부 창업이 모두 실패하는 것은 아니었다.

성공하는 경우를 보면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역할을 철저히 분리했다.

한쪽은 주방을, 다른 한쪽은 홀을 맡아 각자의 전문성을 살렸다.

사소한 일까지 서로 간섭하지 않고, 파트너로서 존중하는 관계를 유지했다.


둘째, 가정과 가게의 대화를 구분했다.

집에서는 장사 이야기를 최소화하고, 부부로서의 대화를 회복하려 노력했다.


셋째, 갈등을 조율할 수 있는 외부 멘토를 두었다.

가족끼리 해결하려 하면 감정싸움으로 흐르기 쉽지만, 제3자의 조언을 들으면 한 발 물러나 현실을 바라볼 수 있었다.


부부가 함께 창업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섬세한 준비가 필요하다.

단순히 “함께 하면 좋겠다”라는 마음만으로 시작하면, 돈보다 관계가 먼저 무너질 수 있다.

장사는 다시 하면 된다.

하지만 부부 관계는 한 번 금이 가면 회복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시니어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늘 이렇게 조언한다.
“부부가 같이 하는 창업은,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관계를 시험대에 올리는 일일 수 있습니다.

충분히 대화하고, 역할을 정리하고, 서로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먼저 확인하세요.”


부부는 평생의 동반자다.

하지만 사업 파트너가 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함께 창업을 고민하는 순간, 이 질문을 꼭 던져야 한다.
“우리는 가게를 지켜내기 위해 서로를 소모할 준비가 돼 있는가, 아니면 함께 웃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준비가 돼 있는가?”


창업은 돈보다 사람을 시험한다.

그 사람이 가장 가까운 가족일 때, 시험은 더욱 혹독해진다.


- 멘토K -


sticker sticker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