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중용의 길_1부_극단의 시대』 첫 번째 글
요즘 세상을 바라보면 ‘균형’이라는 단어가 참 낯설게 느껴진다.
한쪽은 너무 빠르고, 다른 한쪽은 너무 느리다.
누군가는 세상을 바꾸자 외치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바꾸지 말자며 버틴다.
어디를 봐도 ‘적당함’이 사라졌다.
그저, 목소리가 큰 쪽이 이기는 세상 같다.
뉴스를 켜면 분노가 넘치고, 댓글에는 조롱이 가득하다.
SNS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조금만 달리 말해도 금세 ‘적’이 된다.
대화는 사라지고, ‘논쟁’만 남았다.
모두가 옳다고 믿고, 모두가 상처받는다.
이럴 때일수록 나는 자주 중용(中庸, Moderation) 이란 말을 떠올린다.
공자(孔子)는 『중용(中庸)』에서 이렇게 말했다.
즉,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중심을 잡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이 단순한 진리를 잊어버렸다.
세상은 극단으로 향한다.
정치는 흑백으로 나뉘고, 소비는 과하거나 완전히 절약하거나 둘 중 하나다.
사람들은 ‘나의 진영’을 지키느라 바쁘고, 타인의 다름을 견디지 못한다.
조금만 다른 의견을 내면 “너는 우리 편이 아니야”라는 말이 돌아온다.
이건 단순히 사회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불안하다는 신호다.
불안은 사람을 ‘확신’으로 몰고 간다.
확신은 편리하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러나 그 확신이 지나치면 세상은 단단해지지 않고, 오히려 부서진다.
많은 사람들이 ‘중용’을 ‘적당히 타협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공자가 말한 중용(中庸, The Mean) 은 ‘어중간함’이 아니다.
그건 상황을 읽고, 그때의 가장 알맞은 선택을 하는 지혜다.
즉, 중용은 타협이 아니라 통찰이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도 『니코마코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에서
‘중용의 덕(Virtue of the Mean)’을 이렇게 말했다.
그가 말한 ‘중간(Mean)’은 평균이 아니다.
그때그때의 상황 속에서 ‘옳음의 중심’을 찾아가는 인간의 능동적 지혜다.
이를테면, 용기(勇氣, Courage)는 무모함과 비겁함 사이의 중용이다.
자비(慈悲, Compassion)는 지나친 관용과 냉혹함 사이의 중용이다.
따라서 중용은 도망이 아니라,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태도다.
지금의 사회는 속도와 자극에 중독되어 있다.
‘빨리’, ‘세게’, ‘더 많이’가 미덕이 된 세상이다.
그러나 이 속도는 우리를 강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생각할 틈을 빼앗고, 마음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결국 우리는 ‘확신 중독(Sureness Addiction)’ 속에서 살아간다.
내가 옳다는 확신, 내가 피해자라는 확신,
그리고 타인은 틀렸다는 확신.
이 확신이 서로 부딪힐 때, 대화는 사라지고 싸움만 남는다.
이런 시대일수록 중용이 절실하다.
중용은 양쪽을 동시에 이해하려는 용기이기 때문이다.
중용은 무기력한 중립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을 바꾸는 가장 강한 힘이다.
왜냐하면, 중용은 단순히 ‘가운데’에 서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볼 수 있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내가 오랫동안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 —
정책을 만드는 사람, 장사를 하는 사람, 아이를 키우는 부모 —
그들 모두에게 공통된 고민이 있었다.
“무엇이 옳은지 모르겠다.”
“누가 맞고 누가 틀렸는지 모르겠다.”
결국 사람들은 방향보다 ‘편’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회는 언제나 극단에서 무너졌다.
역사는 늘 균형을 잃었을 때 위기를 맞았다.
로마가, 조선이, 그리고 지금의 우리 사회가 그렇다.
중용(中庸, Moderation) 은 그 위기를 버텨내는 인간의 지혜다.
폭풍 속에서도 배를 침몰시키지 않게 하는 ‘무게 중심’ 같은 것이다.
그 중심이 바로 각자의 마음 속에 있다.
세상이 아무리 흔들려도, 내 안의 저울이 바로 서 있다면
나는 기울지 않는다.
나는 믿는다.
이제 세상은 어느 한쪽이 이기는 시대가 아니라,
서로 다른 두 극이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 해야 하는 시대라고.
AI와 인간, 젊음과 노년, 기술과 감성, 속도와 깊이.
이 둘이 싸우는 동안에는 세상은 더 나아가지 못한다.
하지만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균형을 맞출 때,
비로소 진짜 발전이 일어난다.
중용은 공진화의 시작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다른 리듬을 존중하며
그 속에서 새로운 조화를 만들어내는 것.
그게 진정한 중용의 길이다.
『중용』은 이렇게 말한다.
균형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때로는 오해받고, 외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끝내 중심을 잡는 사람이 세상을 지탱한다.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소리도, 더 강한 주장도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이라도 중심을 잃지 않고 서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이며, 진정한 중용(中庸, Moderation) 이다.
그 한 사람이 세상을 조금 덜 흔들리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그 첫 걸음을 이 글에서 시작하고자 한다.
- 멘토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