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중용의 길_1부_극단의 시대』 네 번째 글
요즘 사람들의 얼굴에는 늘 긴장감이 묻어 있다.
무엇을 해도 불안하고, 무엇을 믿어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돈이 있어도 불안하고, 일이 많아도 마음은 허전하다.
뉴스를 켜면 분노가 넘치고, 거리를 걸어도 피곤이 묻어난다.
모두가 조금씩 균형을 잃은 사회를 살고 있는 것이다.
공자(孔子)는 『중용(中庸)』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이 아직 발하지 않은 상태를 중(中)이라 하고,
그것들이 발하되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 한다.”
그는 인간의 마음속 감정이 ‘중(中)’과 ‘화(和)’를 잃을 때,
곧 혼란과 불균형이 시작된다고 보았다.
감정이 균형을 잃으면 개인의 삶이 흔들리고,
사람들의 마음이 함께 불안해지면 결국 사회 전체가 흔들린다.
요즘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면 이 말이 너무 실감 난다.
감정의 절도(節度)를 잃은 사회.
모두가 분노를 쉽게 내뱉고, 슬픔을 숨기지 못하며,
기쁨조차도 비교 속에서 증명하려 한다.
이런 세상에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한장면이다.
노인이 자리에 앉은 젊은이에게 “양보해달라”고 말하자,
젊은이는 대꾸했다. “저도 힘들어요.”
그 말에 노인은 아무 말도 못하고 눈을 감았다.
주변 사람들은 둘 다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안에는 서로를 향한 마음의 균형이 무너진 현실이 있었다.
예전이라면 ‘배려’라는 말 한마디가 자연스러웠겠지만,
이제는 ‘나도 힘들다’는 방어가 먼저 나오는 시대다.
공자는 『논어(論語)』에서 이렇게 말했다.
“군자는 조화롭되 같지 않고, 소인은 같되 조화롭지 않다.”
조화(和)는 같음이 아니다.
조화란 서로 다름 속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는 상태다.
그런데 지금의 사회는 ‘같아야 안전하다’는 불안 속에서 살아간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서로의 견해를 틀림으로 단정한다.
결국 사회는 다양성 대신 단조로움을 택하고,
그 속에서 균형은 점점 사라져간다.
정치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합리보다 진영이 앞서고, 논리보다 감정이 앞선다.
한쪽은 분노로, 다른 쪽은 냉소로 세상을 본다.
이성의 언어는 약하고, 자극의 언어만 살아남는다.
공자가 말한 ‘중용(中庸)의 덕’은
이런 세상에서 더욱 실종되어가고 있다.
“중용의 덕이란 지극한 것이지만, 사람들은 이미 오랫동안 그것을 잃어버렸다.”
공자의 이 말은 2,000년이 넘은 지금도 그대로다.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균형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
문제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SNS는 사람들의 감정을 증폭시킨다.
좋아요와 댓글, 팔로워의 숫자가
이제는 사람의 존재감을 대신한다.
누군가의 분노가 실시간으로 확산되고,
그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낳는다.
이렇게 감정이 감정을 부르는 구조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쉼 없이 흔들리고 있다.
이 불균형은 개인의 일상에도 깊이 스며들었다.
일을 많이 하면 성취감 대신 공허함이 남고,
쉬어도 불안하고, 바빠도 불안하다.
욕망과 피로가 동시에 커지는 모순 속에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잃는다.
균형을 잃은 사회는 결국 자기 자신을 잃는 사회가 된다.
『중용』은 말한다.
“성실함(誠)은 하늘의 도(道)요, 성실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람의 도(道)다.”
‘성(誠)’은 중용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이는 단순히 정직함이 아니라, 내면의 일치를 의미한다.
말과 행동, 감정과 생각이 하나로 모여 있는 상태.
즉, 마음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다.
이 성실(誠)을 잃으면, 인간의 모든 관계는 불안정해진다.
왜냐하면 성실함은 마음의 균형을 세우는 힘이기 때문이다.
요즘의 불안은 정보나 돈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건 마음의 문제다.
사람들이 더는 서로를 믿지 못하고,
심지어 자신도 믿지 못한다.
그건 외부의 위기보다 더 깊은 내면의 균열이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다.
만약 오늘 우리가 모두 하루만이라도 말을 줄이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본다면,
세상은 얼마나 조용해질까.
아마 그 하루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각자의 마음속 균형추는 조금 돌아오지 않을까.
『중용』은 이렇게 가르친다.
“중(中)은 천하의 큰 근본이요, 화(和)는 천하의 통하는 길이다.”
즉, 마음의 중(中)을 지키는 것은 인간의 근본이고,
타인과의 화(和)를 이루는 것은 세상과 통하는 길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단순한 진리를 너무 자주 잊는다.
사람의 마음이 균형을 잃으면, 사회의 질서도 무너진다.
따라서 사회의 회복은 제도나 정책이 아니라,
한 사람의 마음의 균형에서 시작된다.
요즘, 조용히 중심을 잡은 사람들을 보면 존경심이 든다.
그들은 화려하지 않다.
SNS에 감정을 쏟지도, 세상에 분노하지도 않는다.
대신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킨다.
공자라면 그들을 이렇게 불렀을 것이다.
군자는 세상을 바꾸려 하기보다, 먼저 자신을 다스린다.
그는 감정을 제어하고, 말의 무게를 알고,
조용히 자신 안의 중(中)을 세운다.
균형을 잃은 사회를 다시 세우는 일은
거창한 혁명이 아니라,
하루의 말, 한 번의 호흡, 한 사람의 평정에서 시작된다.
이 조용한 균형이 모여야 세상은 비로소 화(和)를 회복한다.
지금의 세상은 어쩌면 너무 많은 ‘극단’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희망은 있다.
누군가가 조용히 중심을 잡고 서 있다면,
그 한 사람이 곧 세상의 균형추가 된다.
중용(中庸)은 그렇게 작고도 위대한 힘으로,
흔들리는 시대를 다시 세워간다.
- 멘토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