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중용의 길_1부_극단의 시대』 세 번째 글
“적당히 하라.”
많은 사람들이 ‘중용(中庸, The Doctrine of the Mean)’을 이렇게 오해한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그저 중간쯤에서 머물라는 말로 이해한다.
또 작금의 사회에서는 여러 극단의 논쟁에서 중간자적 입장을 견지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치닫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공자(孔子)가 말한 중용은 그런 ‘어중간함’이 아니다.
그건 ‘회색의 타협’이 아니라 ‘선택의 통찰’이다.
진짜 중용은 중간이 아니라 중심이다.
『중용(中庸)』의 저자인 자사(子思)는 공자의 손자다.
그는 공자의 ‘인(仁)’ 사상을 이어받아, 인간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조화롭게 살아야 하는지를 평생 고민했다.
그래서 『중용』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하늘이 부여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그 성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 하며, 그 도를 닦는 것을 교(敎)라 한다.”
이 문장은 중용의 본질을 말한다.
중용은 ‘상황에 따라 적당히 하는 법’이 아니라,
하늘이 준 본성(性)을 잃지 않는 중심의 태도다.
즉,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나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것 — 그것이 바로 중용이다.
세상은 언제나 움직인다.
정치도, 경제도, 인간관계도 변한다.
오늘의 옳음이 내일은 틀림이 되고, 오늘의 정의가 내일은 비난받는다.
이럴 때 대부분의 사람은 두 극단 사이를 오간다.
한 번은 뜨겁게 분노하고, 또 한 번은 차갑게 외면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지쳐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그냥 적당히 하자고.”
그러나 중용(中庸)은 그런 적당함의 철학이 아니다.
그건 오히려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중심을 세우는 철학이다.
공자(孔子)는 『논어(論語)』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용의 덕이란 지극한 것이지만, 사람들은 이미 오랫동안 그것을 잃어버렸다.”
공자는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극단’에 끌리기 쉽고, ‘균형’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극단은 단순하고, 단순한 건 편하다.
하지만 그 편안함 속에서 인간은 생각을 멈추고, 결국 중심을 잃는다.
그래서 중용의 덕은 늘 어렵다.
왜냐하면 중용은 방향이 아니라 깊이이기 때문이다.
중용(中庸)의 ‘중(中)’은 단순히 ‘가운데’를 뜻하지 않는다.
그건 내면의 균형과 본성의 중심을 뜻한다.
‘용(庸)’은 평범함, 일상, 그리고 꾸준함을 의미한다.
결국 중용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는 삶의 태도다.
나는 한 번은 지방의 한 작은 시장에서 한 상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평생 떡집을 운영하며, 단 하루도 문을 닫지 않았다고 했다.
요즘처럼 경기 침체가 심한데도 꾸준히 가게를 열고 있었다.
나는 물었다.
“어떻게 이렇게 버티세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잘될 때도, 안될 때도, 저는 그냥 하던 대로 합니다.
너무 욕심내면 힘들고, 너무 포기하면 무너져요.
그냥 제 리듬을 지키는 게 제 방법이에요.”
그의 말은 『중용』의 한 문장을 떠올리게 했다.
“군자는 중용을 따르고, 소인은 중용을 거스른다.”
그 상인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기 삶의 중심을 알고 있었다.
그 중심은 욕심이 아니라 리듬이었다.
삶의 리듬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중용의 실천이었다.
요즘 우리는 너무 많은 선택을 강요받는다.
이 편이냐, 저 편이냐.
이 가치냐, 저 가치냐.
그래서 사람들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린다.
선택이 많을수록 방향은 모호해지고, 마음은 피로해진다.
그럴수록 필요한 건 새로운 선택이 아니라 자기 안의 기준이다.
이 세상에는 완벽한 중심이 없다.
하지만 순간마다 중심을 다시 세우는 사람만이 무너지지 않는다.
공자는 중용을 실천하는 사람을 “군자(君子)”라 불렀다.
군자는 세상의 변화를 탓하지 않는다.
그는 먼저 자신 안의 흔들림을 다스린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세상을 본다.
나는 이런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분노에 휩쓸리지 않으며,
누군가의 소음 속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잃지 않는 사람.
그는 조용하지만 단단하다.
그의 말에는 힘이 있다.
왜냐하면 그 말은 중심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공자는 『중용』에서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태를 중(中)이라 하고,
그것들이 드러나되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 한다.”
이 말처럼 중심은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절도 있게 다루는 힘이다.
마음속 저울의 균형을 잃지 않는 것,
그게 진짜 중용이다.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세상은 점점 더 시끄러워지고,
사람들은 점점 더 확신으로 확증편향에 빠지고 있다.
그러나 확신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큰 주장이나 더 많은 정보가 아니다.
그저 흔들리지 않는 한 사람의 중심이다.
그 중심은 대단한 지식이나 권력에서 오는 게 아니다.
그건 아주 작은 습관에서 시작된다.
매일 아침 일어나는 시간,
사람을 대할 때의 말투,
화를 내기 전 잠시 숨을 고르는 순간.
이 작은 균형들이 모여 인생의 중심이 된다.
중용은 세상을 바꾸는 철학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기술이다.
세상이 흔들려도, 내가 무너지지 않는 힘.
그 힘이 내 안의 중심에서 나온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중용은 ‘중간’에 서는 게 아니라,
세상의 어느 쪽에도 휘둘리지 않는 중심에 서는 것이다.
그 중심이 바로 인간다움의 자리이며,
그곳에서 우리는 비로소 평온해진다.
- 멘토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