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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지하도상점가 리모델링, 무엇이 달라져야 하나?

『지하도상점가, 변신의 조건』 스물 한번째 글

by 멘토K


요즘 곳곳에서 지하도상가 리모델링 이야기가 들려온다.


오래된 공간을 새롭게 바꾸겠다는 시도, 물론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있다.


지금까지의 리모델링은 대부분 ‘디자인 교체’ 수준에 머물렀다. 벽을 새로 칠하고, 간판을 바꾸고, 바닥을 교체하는 정도.


그러나 그건 겉모습을 고친 것이지, 공간의 철학을 바꾼 것은 아니다.


첫째, 리모델링의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많은 지하도상가 리모델링이 “노후 시설 개선”이나 “경관 정비”에 머무른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물리적 노후화가 아니라 기능의 노후화다.


즉, “이 공간이 오늘날의 도시 소비자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빠져 있다.


예전처럼 ‘저렴한 쇼핑공간’만으로는 경쟁력이 없다.


지하도상가 리모델링은 단순한 환경 개선이 아니라 역할 재정의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 시대에 지하도상가는 ‘통로형 상가’가 아니라 ‘생활형 복합공간’, ‘지역 커뮤니티의 서브 플랫폼’으로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둘째, 디자인보다 ‘동선과 체류 경험’을 바꿔야 한다.

지하도상가는 태생적으로 동선이 좁고 직선적이다.


문제는 이 구조가 “빠른 이동”에는 유리하지만 “머무름”에는 불리하다는 점이다.


리모델링은 벽을 새로 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움직임을 재설계하는 일이어야 한다.


사람이 자연스럽게 머무를 수 있는 동선, 커브형 회랑, 열린 좌석, 포토존, 체험 공간 등은 단순한 인테리어가 아니라 ‘소비 동선의 구조 변화’다.


일본 오사카 우메다 지하상가의 리모델링은 이를 잘 보여준다. 통로 중간에 미니 전시공간과 휴식존을 배치하고, 상점 간의 시각적 여백을 확보하면서 체류시간이 늘었다.

결과적으로 매출도 상승했다.


셋째, 상점 리뉴얼보다 공용공간 재구성이 우선이다.

리모델링 예산이 투입될 때 가장 먼저 바뀌는 건 점포의 간판이나 조명이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고객이 ‘상점을 보기 전에 만나는 공간’이다.


입구, 안내 동선, 휴식 공간, 화장실, 공기 질, 조명 등이 고객의 첫인상을 만든다.


서울 서면지하도상가가 최근 리모델링에서 화장실, 벤치, 안내 표지, 공기 환기 시스템을 우선 개선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쾌적한 환경은 상인의 경쟁력이 아니라 상권 전체의 신뢰 자산이다.


넷째, 리모델링은 ‘상인 중심’이 아니라 ‘고객 중심’이어야 한다.

많은 리모델링 사업이 상인 의견에만 초점을 맞춘다.


물론 상인의 생계가 걸린 공간이기에 의견 수렴은 중요하다.


그러나 상인의 요구만 반영된 공간은 “관리하기 쉬운 공간”일 뿐, “찾고 싶은 공간”이 되지 않는다.


리모델링의 최종 사용자는 상인이 아니라 고객이다.


“고객이 어떻게 느끼고, 얼마나 머무는가”를 기준으로 설계해야 한다.


상인에게 편한 공간이 아니라, 고객에게 매력적인 공간이 되어야 한다.


다섯째, 운영 시스템까지 리모델링해야 한다.

지하도상가는 리모델링 이후 몇 년이 지나면 다시 낡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물리적 문제보다 운영의 문제다.


시설 관리가 분산돼 있고, 상인회와 관리기관 간 책임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리모델링의 마지막 단계는 운영 체계의 리셋이다.


전문 운영사를 도입하거나, 상인회 내에 ‘공간관리 전담팀’을 설치해 주기적으로 공간을 관리해야 한다.


또한, 상권 데이터를 분석하고, 리모델링 이후 변화된 방문객 패턴을 추적할 수 있는 데이터 시스템이 병행돼야 한다.


여섯째, 리모델링은 디자인보다 철학이 먼저다.

서울 명동, 강남, 종로, 부산 서면, 대전 으능정이 지하도상가 등 많은 곳이 리모델링을 거쳤지만, 몇 년이 지나면 다시 비슷한 문제에 부딪힌다.


그 이유는 “왜 바꾸는가”에 대한 철학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하도상가는 단순한 상업공간이 아니다.

도시의 지하 인프라, 시민의 이동 동선, 역사와 추억이 쌓인 문화 공간이기도 하다.


리모델링은 이 다층적인 의미를 존중하면서, ‘과거의 기억 위에 새로운 경험을 얹는 작업’이어야 한다.


실제 사례를 보자.

서울역 지하도상가는 2019년 리모델링 이후 일부 구간이 ‘생활밀착형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낡은 상점을 단순 철거하지 않고, 일부는 리유즈(Reuse) 콘셉트로 보존했다.


그 결과, 오래된 상인과 젊은 창업자가 함께 운영하는 ‘공존형 상가’가 만들어졌다.


리모델링의 본질은 ‘철거’가 아니라 ‘연결’이라는 걸 보여준 사례다.


결국, 지하도상가의 리모델링은 ‘보수공사’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경험을 새로 설계하는 도시 프로젝트’다.


벽을 새로 바르는 것보다, 그 공간에서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지하도상가의 성공적인 변신은 예산이 아니라 철학, 디자인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에 달려 있다.


- 멘토 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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