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도상점가, 변신의 조건』 열 아홉번째 글
지하도상점가를 걸어보면 금세 느껴지는 공통된 공기가 있다.
조용하다. 오래된 간판과 낡은 조명 아래, 30년째 같은 자리에서 영업을 이어가는 상인들이 있다.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스며 있는 공간. 그러나 동시에 그 정체된 공기가 변화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지금 지하도상가의 가장 심각한 위기는 시설의 노후화가 아니라 사람의 노후화, 즉 ‘상인의 세대교체 부진’이다.
첫째, 고령화의 현실은 숫자로 명확하다.
기존 조사에 따르면, 서울 주요 지하도상가 상인 중 50대 이상이 전체의 73%를 차지한다. 60대 이상만 해도 40%를 넘는다. 반면 30~40대 젊은 상인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이 구조는 단순한 연령의 문제가 아니다. 상권의 활력이 줄고, 새로운 시도를 할 인적 기반이 사라지고 있다는 의미다.
둘째,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지하도상가는 대부분 1980~90년대 분양 혹은 임대 형태로 시작됐다. 당시엔 ‘황금 입지’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임차료와 관리비 부담은 커졌고, 매출은 감소했다. 젊은 창업자 입장에서는 ‘위험 대비 수익’이 맞지 않는다. 게다가 구조적으로 리모델링이나 업종 전환이 어려워, 젊은 층이 진입할 유인이 거의 없다. 결국 기존 상인들이 은퇴를 미루며 점포를 유지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셋째, 디지털 전환과 소비문화의 격차다.
요즘 소비는 오프라인에서도 온라인 감성을 요구한다. SNS 홍보, 디지털 결제, 리뷰 관리가 기본이다. 하지만 많은 상인들은 여전히 현금 중심 영업, 구전 마케팅에 의존한다. ‘온라인으로 홍보합시다’는 말이 낯설게 들린다. 이런 디지털 격차는 젊은 소비자와의 거리감을 더 벌린다. “우리 물건은 좋은데 손님이 안 온다”는 말 뒤에는, 시대의 흐름과 단절된 영업 방식이 숨어 있다.
넷째, 세대교체를 가로막는 제도적 한계도 있다.
지하도상가는 대부분 공공기관이나 지자체가 관리한다. 그러나 상인회와의 관계가 복잡하고, 계약 구조가 경직돼 있다. ‘권리금’과 ‘양도 제한’ , 공개경쟁에 의한 신규상인 입점의 절차 등의 규정이 얽혀 젊은 창업자들이 쉽게 들어오지 못한다. 기존 상인들은 은퇴를 망설이고, 새로운 세대는 진입을 포기한다. 이렇게 상권의 생명력은 점점 약해진다.
다섯째, 문화와 감수성의 세대 차이다.
MZ세대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경험’이다. 하지만 지하도상가 상인들의 감각은 여전히 ‘상품 중심’이다. “물건만 좋으면 알아서 팔린다”는 시대는 끝났는데, 여전히 진열대와 계산대만 바라보는 영업이 대부분이다. 그 결과, 젊은 고객층은 이 공간을 ‘낡은 쇼핑장소’로 인식한다. 실제로 한 20대 대학생에게 ‘지하도상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물었더니 “어둡고, 엄마 세대가 다니던 곳”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첫째, 지하도상가를 ‘청년창업 인큐베이팅 공간’으로 전환해야 한다.
기존 점포 일부를 리모델링해 창업 초기의 청년들에게 저렴한 임대료로 제공해, 창의적인 아이디어 기반의 상품과 서비스, 유입된 젊은 창업자들이 SNS를 통해 홍보하고, 새로운 고객층을 불러오도록 해야 한다.
둘째, ‘멘토링형 상권 재생 모델’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존 상인들의 노하우와 청년 창업자의 감각이 협업하는 구조다. 예를 들어, 60대 상인이 30년간 쌓은 단골관리법, 상품 소싱 노하우를 전수하고, 젊은 창업자는 온라인 홍보와 트렌드 기획을 맡는 식이다. 사실 쉽지는 않지만, 실험을 통해 그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상가 운영의 디지털화다.
상인회의 역할을 행정 중심에서 데이터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방문객 수, 매출 트렌드, 고객층 분석 등을 기반으로 상권을 관리하면, 세대 간의 감각 차이를 객관적인 데이터로 좁힐 수 있다. 디지털은 세대 간 언어의 다리를 놓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넷째, 각 지하도상점가의 차별적인 특화 활성화 컨셉을 통해 지하도상점가 간, 지상의 다른 핫플레이나 유통공간과의 차별성을 꾀해야 한다.
다섯째, 입지와 상권 특성에 따른 MD와 상품구성을 특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기존 지하도상점가의 천편일률적인 의류, 패션잡화 중심의 상품과 업종을 변화하는 상권과 소비트렌드를 반영하여 맞춤 MD와 상품으로 개선해야 한다.
결국, 지하도상가의 세대교체는 단순히 ‘상인 교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공간의 기억을 새 세대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다.
50년 가까이 이어온 상인들의 삶과 땀 위에, 새로운 세대의 감성과 기술이 덧입혀질 때 이 공간은 다시 숨을 쉰다.
젊은 세대에게 ‘지하도상가’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미래의 기회로 인식될 때 비로소 진정한 변신이 시작된다.
- 멘토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