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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세대 갈등, 경험과 욕망의 충돌

『진정한 중용의 길_1부_극단의 시대』 여덟 번째 글

by 멘토K


요즘 세대를 이야기할 때마다 ‘갈등’이라는 단어가 따라붙는다.
노력해도 안 된다는 청년 세대, 그리고 ‘우리 때는 더 어려웠다’고 말하는 기성세대.
서로의 언어는 다르고,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도 다르다.
같은 사회를 살아가지만, 마치 다른 시간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 같다.
이것은 단순한 가치관의 차이가 아니다.
그 뿌리에는 경험과 욕망의 충돌, 그리고 중용(中庸) 이 사라진 마음의 균형이 있다.


공자(孔子)는 『중용(中庸)』에서 이렇게 말했다.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發而皆中節謂之和.”

(희로애락지미발 위지중, 발이개중절 위지화)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이 아직 발하지 않은 상태를 중(中)이라 하고,
그것들이 발하되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 한다.”


이 구절은 세대 갈등을 읽는 데에도 놀라울 만큼 정확한 통찰을 준다.
기성세대의 감정과 청년세대의 감정이 서로 절제되지 못하고 폭발할 때,
사회는 중(中)을 잃고, 화(和)를 잃는다.
즉, 각자의 감정은 이해되지만, 절도(節度) 를 잃은 대립은 결국 불화로 이어진다.


나는 종종 공공기관 강의에서 세대 통합을 주제로 이야기할 때

젊은 직원과 선배 직원이 서로의 말을 듣지 못하는 모습을 본다.
젊은 사람은 “시대가 바뀌었는데 왜 여전히 옛 방식을 고집하느냐”고 묻고,
기성세대는 “너희는 너무 쉽게 포기한다”고 말한다.
둘 다 옳은 말이지만, 둘 다 완전하지 않다.
공자는 이를 두고 이렇게 표현했다.


“君子中庸, 小人反中庸.”

“군자는 중용을 따르고, 소인은 중용을 거스른다.”


즉, 군자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지키려 하지만,
소인은 감정과 욕심에 이끌려 균형을 잃는다.
세대 간의 갈등도 바로 이런 ‘중용의 부재’ 에서 비롯된다.


기성세대는 경험의 무게를 자랑한다.
그들은 ‘이겨낸 세대’다.
전쟁, 가난, 산업화, IMF까지 온몸으로 버티며 살아왔다.
그들에게 인생은 ‘참고 견디는 것’이었다.

반면, 청년세대는 ‘선택과 포기의 세대’다.
무한경쟁 속에서 효율과 행복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
그들은 경험보다 가능성을 믿고, 과거보다 미래를 본다.
이 두 시선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자는 이런 상황을 이미 예견한 듯 말했다.


“中庸之爲德也, 其至矣乎. 民鮮久矣.”

(중용지위덕야, 기지의호. 민선구의)
“중용의 덕이란 지극한 것이지만, 사람들은 이미 오랫동안 그것을 잃어버렸다.”


공자의 한탄은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과도 닮았다.
세대는 다르지만, 사람의 본성(性)은 같다.
그럼에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경험이 절대적 진리’라는 착각 때문이다.


기성세대는 ‘내가 해봤다’는 경험의 권위에 머물고,
청년세대는 ‘그건 당신 세대 이야기’라며 거리를 둔다.
양쪽 모두 ‘자기 기준의 옳음’만을 주장하면서
중용의 중심을 잃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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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은 이를 이렇게 경고한다.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教.”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
“하늘이 부여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그 성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 하며,
그 도를 닦는 것을 교(敎)라 한다.”


즉, 인간의 본성은 하늘이 준 것이고,
그 본성을 따르는 것이 바로 올바른 길이며,
그 길을 배우고 닦는 것이 교육이다.
세대가 다르더라도 인간의 본성은 동일하다.
그 본성을 잊지 않고 서로의 도리를 닦는 것이 바로 ‘세대 간의 중용’이다.


나는 한 시골 마을에서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다.
한 농부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말했다.
“요즘은 땅이 말을 안 들어.”

그러자 손자는 스마트폰을 들고 농작물의 상태를 보여주며 대답했다.
“할아버지, 이제는 땅이 아니라 데이터가 말을 해요.”

둘 다 맞는 말이었다.
그 말에는 ‘경험의 진실’과 ‘새로운 도구의 진실’이 함께 담겨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진짜 중용이란 세대 간의 진실을 이어주는 다리라는 것을.


세대 갈등은 결국 속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기성세대는 ‘천천히 쌓는 신뢰’를 믿고,
청년세대는 ‘빠르게 바꾸는 혁신’을 믿는다.
하지만 세상은 이제 둘 다 필요로 한다.
속도의 혁신 위에 신뢰의 경험이 쌓일 때,
비로소 사회는 단단해진다.


『중용』에서 공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誠者, 天之道也; 思誠者, 人之道也.”

(성자, 천지도야; 사성자, 인지도야)
“성실함(誠)은 하늘의 도(道)요, 성실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람의 도(道)다.”


세대 간의 진정한 화해는 결국 ‘성실(誠)’에서 시작된다.
진심으로 들으려는 마음,
이해하려는 노력,
그것이 없다면 아무리 대단한 정책도 세대의 벽을 허물 수 없다.
공자가 말한 성(誠)은 거짓이 없는 마음,
즉 ‘있는 그대로의 진심’이다.
그 성실이 있을 때만 세대의 대화는 조화를 이룬다.


오늘날 세대 갈등은 단지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삶의 방식이 다르고, 가치의 무게가 다를 뿐이다.
하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진심이 사라질 때,
세상은 ‘세대’가 아니라 ‘단절’로 나뉜다.
중용의 길은 세대 간 다리를 놓는 것이다.
그 다리는 논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이어진다.


『중용』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말한다.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지중화, 천지위언, 만물육언)

“중(中)과 화(和)가 이루어지면, 천지(天地)가 제자리를 잡고 만물이 자라난다.”


세대 간의 갈등이 사라질 때,
사회는 다시 제자리를 찾고, 새로운 세대가 자라난다.
기성세대의 경험이 뿌리가 되고,
청년세대의 욕망이 꽃이 된다면,
그 둘은 결코 대립하지 않는다.


결국 세대를 잇는 중용이란,
한쪽의 세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시간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 다리 위에서만 경험과 욕망은 충돌이 아닌 성장으로 이어진다.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찾아야 할 진정한 조화(和)이며,
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중용의 길(中庸之道) 이다.


- 멘토 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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