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한달살이 : 홋카이도 우유 아이스크림
홋카이도 우유는 '고소하다'는 말보다는 '꼬숩다'라는 사투리가 더 어울리는 진한 맛이야. 신선하고 꼬숩은 비법은 넓은 들판에 소들을 풀어놓고 키우는 거래. 말로만 들었을 땐 우유맛이 차이가 나 봤자 거기서 거기겠지 싶었는데 실제로 먹고 나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더라고. 첫눈에 반한 나는 마트에 가면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제일 먼저 유제품 코너 앞으로 가. 그리고 참새가 방앗간 기웃거리듯 진열된 상품을 요리조리 살피지. 가격도 저렴해서 제법 비싼 걸 고르는 사치도 부릴 수 있어. 제 값 주고 먹는 건데도 가끔은 미안할 정도야. 우유를 좋아하는 나에겐 여러 모로 이곳이 천국 같더라고.
"아이고, 꼬숩어라." 하루는 공원에 갔다가 우유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어. 한 입 먹자마자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입안에 퍼졌지. 홋카이도 우유에 제법 익숙해져 있는 상태였는데도 아이스크림은 놀랄 만한 맛이었어. 천천히 공원을 산책하며 먹으려다 세워둔 자전거 옆 벤치에 그대로 앉았어. 온전히 아이스크림에만 집중하고 싶었거든. 첫 입이 끝 입이었어. 아이스크림을 다 먹을 때까지 처음의 감동이 그대로 이어지더라고. 일본 음식이 물릴 때쯤이었는데 오랜만에 즐겁게 뭘 먹고 있는 느낌이라 두 배로 좋았어.
다음 날에도 아이스크림이 생각났어. 마음은 당장 가게로 달려가고 싶은데 뱃살은 아이스크림은 우유처럼 매일 먹으면 안 된다고 말을 하고 있었지. 좋아하는 마음도 결국 고통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알겠더라. 그래서 생각 끝에 아이스크림 5일장을 하기로 했어. 지난달 제주도 한달살이 하는 동안 숙소 근처 5일장이 열릴 때마다 가서 귤을 샀던 기억을 되살렸지. 닷새마다 한 번씩은, 뱃살도 달래면서 주기적으로 입도 즐겁게 할 수 있는 내 나름의 타협점이었어.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시작한 혼자만의 5일장이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기다려졌어. 매일 먹는 우유나 요거트도 충분히 맛이 꼬숩고 신선했는데도 말이야. 근데 그거 있잖아. 몸에 안 좋아서 많이 먹지 마라고 하는 음식일수록 더 당기는 마음 말이야. 유혹에 약한 중생은 매일 일탈은 하지 않을 테니 5일에 한 번씩만 허락해 달라고 때를 쓰고 있었어. 그리고 그날이 올 때마다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좋아서 어찌할 바를 몰라했지.
다시 돌아온 '장날'에 영롱한 아이스크림이 내 손에 들어왔어. 따뜻한 일요일 오후였지. 공원에는 평일과는 달리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어. 이해할 수 없는 일본어가 들린다는 것 외엔 한국의 공원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더라고. 평화로운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며 아이스크림을 먹으니 타지에 있는 내 외로움까지 다 녹아내리는 듯했어. 아이스크림이 고소한 게 아니라 꼬숩어서 한국 생각이 더 나나보다 했어.
다음 장날은 5일이 지난 금요일인데 사람들 많은 주말 공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 7일장으로 바꿀까 생각 중이야. 제 얼굴보다 더 큰 아이스크림을 들고 신나 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나와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고 싶기도 해서 말이야. 그러다 보면 일탈의 기쁨보다 일상의 평화로움이 내 삶에 더 스며들지 않을까. 언젠가는 아이스크림보다 몸에 좋은 우유를 마시며 똑같은 기분을 느낄 경지에 다다를 수 있길 바라. 그때까지 사랑하는 아이스크림이지만 몸에 나쁜 건 맞으니까 입이 섭섭하지 않을 정도로만 거리두기 하며 지내보자고.
대문사진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