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한달살이 ; 뉴욕 가족 여행
"누야가 밉상스러워서 마트에 같이 안 갔어."
동생은 아침식사 중에 할 말 많다는 눈빛을 보내며 내게 말했어. 예민했던 지난밤에는 내색 없다가 아침에 고백하듯 말하는 동생을 보고 있으니 욕을 들으면서도 웃음이 나더라고.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그 순간을 넘기는 게 쉽진 않잖아. 피곤하거나 예민할 땐 더욱 그렇고 말이야.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사회성 좋은 동생이 저 정도 반응을 보인 걸 보면 어제 내가 진짜 밉상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
뉴욕 물가는 예상을 훨씬 넘어 있었어. 여행 왔답시고 매일 외식을 하며 다닐 정도가 아니었지. 다행히 에어비엔비로 잡은 숙소에는 음식을 직접 해 먹을 수 있는 가전제품이 다 있었어. 걸어서 15분 거리에 제법 큰 현지 마트도 있고 말이야. 그래서 우린 식사를 집에서 하는 것으로 경비를 조절하기로 결정했어. 무엇보다도 느끼한 음식 대신 몸에 좋고 입맛에도 맞는 한국식으로 식단을 짤 수 있어 다들 대환영이었지. 이제 남은 건 한인 마트에 가서 현지 마트에 없는 한국 식재료를 사 오는 것뿐이었어.
캐나다에서 미국에 들어온 바로 다음 날이라 낯선 곳에서 장을 보고 오는 것도 우리에겐 큰일이었어. 더군다나 숙소에서 제일 가깝다는 뉴욕에 있는 한인 마트도 제법 떨어져 있더라고. 숙소가 있는 뉴저지에서 뉴욕시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야 했는데 당장 버스 티켓도 없는 상황이었어. 티켓을 파는 터미널도 뉴욕에 있고 말이야. 일단 우리는 조금 비싸더라도 한 번은 택시를 타고 뉴저지를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겸사겸사해서 우버를 불렀지.
'여행은 인생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압축해서 알려주는 시간 아닐까.' 부르는 택시 기사들이 모두 안 가겠다며 돌아가는 걸 보며 생뚱맞지만 여행과 인생의 상관관계를 계속 곱씹었어. 그리고 영문도 모른 채 연속 퇴짜를 맞은 우리는 얼얼한 표정으로 숙소 앞에서 다시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었지. 이게 이렇게 힘들 일인가. 이유를 알 순 없었지만 택시 기사들의 똑같은 표정을 더는 반복해서 볼 필요가 없었어. 마지막으로 시도를 해보고 안 되면 부모님은 잠시 숙소에 계시고 우리는 버스 기사에게 사정을 해서 현금을 주고 버스를 타서라도 어떻게든 뉴욕으로 가는 버스 티켓을 사 오기로 했지. 숙소 앞으로 들어오는 마지막 택시를 보며 다들 침을 꼴깍 삼켰어.
우리는 누가 봐도 어리버리한 관광객이었어. 선글라스만 하나씩 착용하면 되는 줄 알았지 택시 기사들이 뉴저지에서 뉴욕으로 연결된 다리 통행료가 16달러나 돼서 가지 않는다는 동네 상식 따윈 알 리가 없었으니까. 택시기사 눈에도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훤히 보이는 듯했어. 다행히 사정을 들으시곤 다리를 건너주겠다고는 하시더라고. 당연히 통행료는 우리 몫이었지. 돈이 줄줄 센다는 말이 어떤 건지 실시간으로 느껴지더라. 속이 쓰렸지만 어쩔 수 없었어.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겨우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어. 앞으로 여행 내내 둘러볼 바로 그 뉴욕이었지.
동생이 나의 밉상을 본 건 우리 모두 최고로 피곤할 때였어. 숙소에서 나온 시간이 오전 11시였고 박물관에서 오후 5시에 나왔으니 아직 현지 적응도 안 된 우리 몸이 얼마나 무거웠겠어. 다들 풀린 눈으로 저녁식사만 기다리는 눈치더라고.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마음은 이미 근처 식당에서 숟가락으로 밥을 퍼고 있는 중이었어. 현실은 미친 뉴욕 물가 안에서 눈치만 보고 있었고 말이야. 돌아다니며 한 고생은 그렇다 치고 밥은 마음 편히 먹어야 하잖아. 우리는 잠시 고민하다가 최대한 빨리 한인 마트에서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어.
동생과 나는 마트에서 생각이 달랐어. 짐이 많을 걸 예상해 돌아갈 때도 택시를 타기로 했는데 나는 아침 일이 자꾸 걸리더라고. 뉴욕에 있는 택시 기사라고 기분 좋게 우리를 태울 것 같지 않았거든. 한인 마트가 더 비싼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그래서 택시를 못 잡고 버스를 타고 돌아갈 것을 대비해 한인 마트에서는 라면, 김치 등 한국 식재료만 사고 나머지는 숙소 인근에 있는 현지 마트에 가자고 했지. 그러자 동생이 비싼 우버를 부르는 이유는 물건을 한꺼번에 사서 운반하려고 했던 건데 왜 그렇게 두 번 마트에 가려 하는지 묻더라고. 숙소에 도착해 다시 마트 가기엔 너무 피곤하기도 하고 말이야.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안타깝게도 오늘이 끝날 때까지 정답을 알 순 없었어.
결국 우린 최소한의 물건에 동생이 사고 싶은 것만 조금 더 사서 계산을 했어. 뒤에 들은 얘긴데 답답했던 동생이 엄마와 언니한테 가서 나에게 말 좀 해봐라고 했다더라고. 나는 장을 본 후에도 동생과 평소와 비슷하게 대화를 했기 때문에 다음 날 아침까지도 동생의 답답함을 잘 몰랐어. 그저 장을 잘 보고 돌아온 줄 알았지. 다행히 뉴욕 택시는 뉴저지에 잘 들어왔어. 택시를 타고나니 물건을 좀 더 살 걸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동생이 맞았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긴 했지만 그때 나는 숙소에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가득 차 있었어.
숙소로 돌아오니 그제야 식구들 얼굴에 긴장감이 가시는 듯했어. 곧 저녁을 먹는다는 희망까지 더해져 볼이 살짝 상기되기도 했지. 나머지 식구들이 저녁 준비를 할 동안 언니와 나는 다시 마트에 갔어. 그리고 한인 마트에서 못 산 먹거리를 샀지. 오늘 하루치 긴장을 낮에 다 쏟아낸 후라 그런지 느지막한 저녁은 고요했어. 오늘 있었던 수많은 일들이 우리 사이에 이야깃거리였고 말이야. 실제로 겪을 땐 화도 나고 예민하고 난리였는데 언니와 다시 곱씹어 볼 땐 그저 웃기기만 하더라고. 이런 게 여행인가 싶었어.
아침에 동생이 한 말이 계속 떠올라. 분명 듣기 좋은 말은 아닌데 애정이 느껴져서 말이야. 불만을 마음에 두고 싶진 않아서 털어내며 했던 말이라 생각해. 만약 동생이 할 말 안 하고 계속 여행을 했다면 함께 있는 내내 마음 한편이 불편한 채로 지냈을 거잖아. 나는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계속 밉상스러운 누나가 되었을 테고. 여행하는 데 제일 큰 걸림돌은 자잘하게 쌓인 감정들이 아닐까. 그때그때 다 털어버릴 수 있어서 다행이야. 남은 여행 동안에도 오늘처럼만 서로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있길. 그래서 몸은 피곤하더라도 마음만은 무거운 사람이 없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