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한달살이 : 캐나다 나이아가라 폭포
"이번이 멀리 가는 마지막 여행이지 싶다."
아빠와 엄마는 '마지막'이란 말씀을 하셨어. 13시간 비행과 9박 10일 장거리 자유여행을 앞두고 나이와 체력을 염두하신 듯했지. 평소 같으면 듣기 싫어 짜증이 났을 텐데 이번에는 못된 성질이 올라오진 않더라. 당신들이 여행에 설레면서도 지나간 세월을 아쉬워한다는 게 느껴졌거든. 그래도 철없는 자식들은 부모의 나이를 온전히 이해할 순 없었어. 바쁜 일상을 핑계로 그 말을 깊이 고민하지도 않았으니까. 어쩌면 우리가 채워줄 수 없어서 두 분이서 메워가길 바란 건지도 몰라.
2년 전부터 말이 나왔던 여행이었어. 올해 칠순이 되신 엄마가 제일 원하는 게 나이아가라 폭포를 가족과 함께 보는 거였거든. 지령을 받은 자식들은 캐나다를 거쳐 뉴욕을 다녀오는 여행 코스를 짰어. 경비는 2년 동안 차곡차곡 모았고 준비는 올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지. 안전하게 다녀오는 게 최우선 목표였어. 부모님과는 보통 패키지여행을 가곤 했는데 이번에는 모든 걸 우리가 준비해서 더욱 안전이 신경 쓰이더라고. 무사히 다녀오는 것으로 자식들에게 기꺼이 '마지막'을 맡긴 부모의 마음도 채워드리고 싶었어. 날짜가 다가올수록 연신 단체 카톡방이 울렸어. 출발 전부터 부모 자식 할 것 없이 모두 도전을 시작하고 있었지.
캐나다에서 처음 본 나이아가라 폭포는 딱 CG(Computer Graphics)였어.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비현실적이더라고. 눈앞에 스크린이 있는 거라고 해도 크게 이상할 것 같지 않았지. 좀 더 자세히 보면 현실감이 들까. 어림잡아 수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유람선을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 바로 코 앞까지 갔어. 표정을 보니 다들 비슷한 느낌으로 폭포를 보고 있는 듯했지. 배 끝에서 폭포를 보고 싶었던 엄마는 조그만 몸을 무기로 덩치 큰 외국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어. 익숙한 한국 아줌마의 파워가 느껴지자 붕 떠 있던 기분이 현실로 서서히 돌아오더라. 눈앞의 폭포보다 신나 하는 엄마를 통해 폭포를 더 많이 봤어. 우리도 덩달아 흥이 올랐지. 여행 오길 잘했다고 느낀 순간이었어.
아빠는 그저 폭포를 바라보고만 있어도 괜찮다고 하셨어. 엄마는 반대로 직접 느끼고 만지고 싶어 하셨지. 두 분 모두 이해가 됐지만 '마지막'을 대하는 부부의 온도차는 자식들에겐 딜레마였어. 폭포 옆쪽도 보고 싶어 했던 엄마를 달래어, 쉬고 싶은 아빠와 함께 숙소로 돌아와야 했으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엄마가 얼마나 아쉬워하는지 느껴지더라고. '마지막'이란 생각 앞에서 조금의 후회도 남기고 싶지 않으신 듯했어. 그때 처음으로 엄마의 조바심을 제대로 봤던 것 같아. 너무 여려 곧 사그라들 것 같은 촛불 같았지.
엄마의 불꽃을 다 이해할 순 없어도 꼭 지켜내야 할 것 같았어. 진짜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자식들의 또 다른 조바심이었지. 우리는 의논을 해서 여행 방식을 바꿨어. 모두 다 같이 다니는 것보다는 쪼개어 다녔다가 다시 모이는 방법으로 말이야. 엄마가 하고 싶은 것들은 자식들이 번갈아 가며 함께했고 아빠와는 산책도 하고 숙소에서 바깥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어. 우리도 쉬면서 즐길 수 있어 첫날보다 훨씬 마음이 좋았던 것 같아. 시행착오를 거치며 함께 잘 지낼 속도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생각해.
가족이라 불리지만 다 큰 성인 5명이 함께하는 여행이잖아. 매번 합을 맞춰 함께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욕심이더라고. 그래도 관계가 삐거덕거릴 때마다 서로 조심하려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든 여행은 무사히 마칠 수 있겠다 싶었어. 가족도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낯선 곳에 있는 우리의 모습이 부부, 부모, 자식, 형제, 자매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 같아서 관계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더라. 부모님이 알게 되면 등짝 세게 얻어맞을 생각일진 모르겠지만 이제 다 같이 늙어가고 있으니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어.
캐나다 마지막 날 아침은 엄마가 가고 싶어 했던 폭포 옆쪽으로 갔어. 이걸 못 보고 갔으면 어쩔 뻔했냐는 말을 반복하시는 엄마의 표정을 보며 지금 이 시간이 기억에 오래 남겠다 싶었어. 앞으로도 매 순간 후회 없이 살라고 폭포가 그리고 엄마가 온몸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거든. 그래서 우리도 눈앞에 떨어지는 비현실적인 폭포를 보며 지금을 즐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 지금, 이 순간. 매일 마주하면서도 매일 그냥 지나치는 그 순간을 제대로 잡는 중이었지.
뒤에서 엄마를 안으며 "우리 다음에 여행 또 가자"라고 말했어. 엄마는 활짝 웃으시며 그러자고 하시더라. 조그마한 엄마를 더 세게 안았어. 여린 떨림이 느껴졌지. 엄마의 조바심을 어떻게 철없는 자식들이 다 잠재워줄 수 있겠어. 그저 위로가 아닌 진심으로 또 다른 다음을 이야기할 뿐이었어. 폭포가 옆에서 힘차게 떨어졌어. 하얀 폭포 속에 우리들의 조바심도 같이 떨어지길 속으로 바랐지.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어.
여행을 하면 늘 예기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매번 옳은 것도 아니고 말이야. 하지만 낯선 곳에서 함께 살아남기 위해 각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여행은 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가족이란 뭘까. 여행 내내 끈끈한 무언가가 계속 느껴져. 혼자가 편함에도 불구하고 함께 지내기 위해 애쓰는 이유도 이것과 연결되어 있겠지. 가족 여행은 계속되고 있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 밀려오는 조바심 조금씩 거둬내며 천천히 가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