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한달살이 : 관계
시간은 참 잘 가는 것 같아, 안 그래? 어쩜 그렇게 티 안 내고 움직일 수 있을까. 가족과의 한달살이도 소리 없이 거의 끝나고 있어. 나는 잠시 한눈 판 사이에 훌쩍 가버린 세월을 느껴. 되돌릴 수는 없으니 되새김질이라도 해야 할까. 이대로 끝내기엔 아쉬우니까 말이야. 솔직하게 내 마음을 들여다볼 시간 정도는 남아서 다행이야. 언제 또 가족과 이런 시간을 보낼지 기약이 없으니까 주어질 때마다 잘 시작하고 잘 매듭짓는 게 답이 아닐까 싶어.
한 달 전 부모님 댁으로 들어올 때는 그저 쉬다 가고 싶었어. 나이를 먹은 후로는 가족만 보고 지냈던 시간이 거의 없어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퇴행의 마음도 있었지. 딱 한 달만 집에서 어린아이로 돌아가보자고 생각했어. 그래서 집으로 들어가는 것도 굳이 한달살이라고 이름을 붙였지. 이미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사람에게 1달간의 회춘 기간도 감지덕지였어. 더는 욕심이라 미리 기간을 차단하겠단 생각도 들어 있었고. 당연히 집에서 살기 위한 어떤 준비도 없었어. 내가 다 아는 곳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다시 돌아간다는 개념이었으니까 말이야.
한 달이 지난 지금, 예상과는 달리 조금 피곤한 것 같아. 쉬러 왔는데 피곤하다면 내가 한 달을 계획과는 다르게 살았다는 뜻이잖아. 그래서 처음 들어올 때의 나를 다시 생각해 봤어. 쉬려고 온 사람 치고는 현관 앞에서 온몸에 힘을 잔뜩 주고 있던 게 기억나더라고. 그 뒤로도 내 모습 속엔 늘 '열심히'가 있었고 말이야. 떠날 날짜를 정해놓은 딸 입장에서는 함께하는 시간만이라도 가족에게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던 것 같아. 제한된 시간은 흐르는 게 더 잘 보이는 법이니까. 가족 중 누구도 내게 '열심히'를 원했던 적이 없지만 나는 자발적으로 최선을 다해 돌아가고 있었어.
가족을 배려하는 마음이라 생각했어. 내가 느끼는 애틋함을 표현하고 싶어 애쓰는 거라 여겼지. 그런데 왜 채워지지 않고 되려 피곤한 건데. 좋아하는 마음은 주고받을수록 커지는 법이잖아. 피곤함은 내가 편안하게 쉬려고 가족에게 돌아온 것이 아니라는 증거였어. 그래서 다시 마음을 들여다봤지. 어렵게 찾은 내 민낯에는 가족과의 한달살이를 다르게 생각하는 면이 있더라고. 그 마음을 좇아가니 '열심히'의 뿌리도 보이더라. 내 마음이 잘못된 건 아니었지만 한 달 동안 집에 있으면서 진짜로 하고 싶었던 건 쉬는 게 아니었어.
답은 죄책감이었어. 가족 간 사이가 좋은 우리 집에서 집 나와 살겠다는 나는 늘 돌연변이 같았으니까. 밖에서 산 지 13년이 넘었지만 가족을 생각할 때마다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저버릴 수가 없었어. 나답게 살고 싶은 건 가족에게 죄를 짓는 일일까. 억울함과 죄책감이 뒤섞여 혼자서 수없이 질문하고 답하곤 했지. 죄책감으로 나는 가족에게 미안해했고 그 반작용으로 고마워했어. 정작 그들이 원한 건 내가 편히 쉬는 거였을 텐데 말이야.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꼬리를 물고 따라오는 감정들을 가족과 함께할 때마다 더 느껴야만 했어. 피곤할 수밖에 없었지.
휴직을 하고 한 달을 집에서 보내기로 결정한 것도 가족이 보고 싶다는 생각보다 죄책감을 덜 느끼고 싶었던 게 맞았어. 그게 동력이 되어 나는 있는 동안 잘 지내기 위해 애를 썼지. 아무리 생각해도 한 달간 내 행동은 쉬러 왔다는 겉으로 드러난 목적과는 결이 많이 달랐어. 더 솔직히 말하면 나도 내 마음을 모른 척했던 것 같아. 그리고 가족을 배려한다는 뜻으로 포장을 했지. 떠날 때 "열심히 했으니 이제 가도 되지?"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야. 눈먼 내 옆에서는 가족도 피로했을 거야. 내 '열심히'는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거니까.
며칠 전 죄책감에 대해 철학적으로 이야기하는 영상을 찾아봤어. 어떤 분이 죄책감을 가진 사람은 사회적으로 정한 도덕적 가치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더라고. 명절에 꼬박꼬박 부모를 뵈러 가면서도 보고 싶은 진심보다 해야 할 도리만 더 챙기게 되는 꼴이었지. 그 말을 듣는데 봉인됐던 내 마음이 스르르 풀리는 듯했어. 딱 내 이야기였거든. 명절이라고 집에 들어와 겨우 왔다고 생색을 냈던 시간들이 떠올랐어. 맞아, 집에 오는데 왜 내가 생색을 냈지? 부모를 보고 싶을 때마다 갔다면 그런 반응들이 나올 리가 없잖아. 나는 자식이라고 뻐기며 살고 있었어. 내가 하는 행동은 배려가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한 밑밥이었지.
엄마는 이런 내게 괜찮다고 하셨어. 다시 태어나면 나처럼 살고 싶다면서 말이야. 내가 나답게 살고 싶은 마음과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은 별개라고 말씀하셨지. 정말 그럴까. 엄마는 얽히고설킨 내 마음을 대신 끊어주고 싶으신 듯했어. 맞아, 내가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야. 맞아, 너는 잘못 살고 있는 게 아니야. 엄마와 내 마음이 섞이기 시작했어. 고마웠지. 자식이 곁에 없어 느끼는 당신의 외로움보다는 딸이 원하는 걸 먼저 보는 사람이었으니까. 자식은 끝까지 이기적이고 엄마는 끝까지 엄마인가 봐. 내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엄마를 넘어설 수 없다는 걸 알 것 같았어.
나는 제대로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 마음이 베베 꼬여 아직은 어떻게 풀지 모르겠어. 아무래도 내가 가족들의 사랑은 그대로 받으면서 한편으로 또 자유롭고는 싶은가 봐. 욕심 한가득 손에 쥐고 놓지 않으려 하니 피곤할 수밖에. 이제부터라도 손아귀에 힘 푸는 연습을 해야겠어. 할 수만 있다면 나도 더는 죄책감이 아니라 사랑으로 가족을 보고 싶으니까. 엄마 수준까지는 못 가더라도 비슷하게는 살아봐야지. 살다 보면 편안하게 누군가를 안아줄 때도 오지 않을까. 그래서 죄책감을 뺀 사랑이 뭔지 배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 언젠가는... 말이야.
대문사진 :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겉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