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한달살이 : 건강 검진
내 몸에는 6개월에 한 번씩 봐줘야 하는 혹들이 있어. 살아 있는 세포들이라 커졌다 작아졌다 하니까 정기적으로 살펴보는 거지. 벌써 6개월이 지났어. 그간 나와 동거하며 그들이 편안했는지 다시 점검할 시간이었어. 내 속을 볼 수 있는 의사 앞에서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아. 우리가 어떻게 지냈는지 보지 않고도 아시니까 말이야. 휴직을 하고 나름 건강에 신경을 쓰며 살았으니 이번엔 괜찮지 않을까. 집에 안 있고 밖으로 돌아다니기만 해서 더 나빠졌으려나. 그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불안해 괜히 죄인이 된 것처럼 조심스럽게 병원으로 들어섰어.
"딸칵. 딸칵."
의사는 기계로 내 속을 천천히 보셨어. 스크린 위에 검은 점들이 보일 때마다 마우스로 클릭을 하며 길이를 쟤셨지. 화면 읽는 법을 몰랐지만 나도 열심히 그를 따라 스크린을 봤어. 검은 점이 계속 보여 내 숨소리가 자동으로 작아지더라. 혹이 더 많이 생겼나. 답답한 마음에 수십 개의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의사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려고 입을 꾹 닫았어.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석고상처럼 굳은 채로 눈만 껌뻑거리는 것뿐이었어.
"비교해 보세요. 이 혹은 더 작아졌죠? 상태가 좋아요. 그럼, 6개월 뒤에 다시 봅시다." 의사의 표정은 오묘했어. 사실 아무 표정이 없었다는 게 맞는 말이었지. 그런데 내 눈에는 분명 묘하게 표정이 변하는 게 보였단 말이야. 상태가 좋아졌다는 사실에 여유가 생겨 그랬는진 몰라도 짧은 순간에 나는 세심하게 그의 표정을 살폈어. 어떻게 저렇게 일관되게 무표정일 수 있을까. 그런데 왜 내 눈엔 오묘하게 보이는 걸까. 진료실에 들어갈 때의 긴장감은 온데간데없이 나는 무뚝뚝한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어린아이 같은 얼굴로 진료실을 나왔어.
밖에서 나를 기다리던 언니에게 혹의 크기가 줄었다는 소식을 알렸어. 언니 얼굴에는 걱정이 사라지고 핑크빛이 올라오고 있었지. 참 알록달록하다고 생각했어. 어쩜 저렇게 표정이 풍부할 수 있을까. 조금 전에 봤던 무뚝뚝했던 얼굴과는 또 다른 신비로움이었어. 의사와 환자, 언니와 동생의 관계를 떼어놓고 설명할 순 없는 부분이겠지만 짧은 시간에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얼굴을 대하는 게 새삼 재미있더라고. 나와는 둘 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다름이 더 다가왔는지도 몰라.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는 희망이 주변에 대한 호기심으로 드러나고 있었어. 나는 당연히 언니의 얼굴이 더 좋았지. 크게 살피지 않아도 마음이 바로 보이니까. 의사의 오묘함은 기쁨으로 눈을 가린 내가 마음대로 해석한 것일 가능성이 높잖아. 만약 결과가 반대였다면 똑같은 무표정이 슬픔으로 느껴졌을 테니까 말이야. 기분이 좋았던 나는 제멋대로였어. 건강해지려고 휴직까지 한 거였기 때문에 바라던 결과를 얻은 오늘은 좀 능청스러워도 될 것 같았지. 마치 장원급제한 것처럼 거들먹거렸어. 맞장구를 쳐주며 맛있는 샌드위치까지 사주는 언니 덕분에 흥이 더 올랐었지. 나는 뇌를 거치지 않은 말들을 마음대로 지껄이며 돌아왔어. 제대로 또라이일 수 있었던 기분 좋은 순간이었어.
6개월 뒤에도 의사의 무표정을 기쁘게 볼 수 있을까. 언니의 알록달록한 얼굴을 느낄 수 있을까. 집에 온 나는 쏜살같이 다시 내 나이로 돌아와 있었어. 그리고 평소 하던 대로 쓸데없는 걱정을 시작했지. 혹 떼려다 혹 더 붙이는 지름길이었어. 사서 고생하는 스타일인 줄은 알았지만 진짜 못 말리겠네. 하루쯤은 계속 어린아이로 있어도 되는 거잖아. 해결할 수 없는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고 법륜 스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는데도 아직 정신 못 차렸구먼. 나는 다시 묵직해지려는 나를 다그쳤어. 무안해서 피식 웃음이 나더라. 생각의 리듬에 맞춰 내 나이도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것 같았어. 나이는 마음먹기 달린 게 맞는구나 싶었지. 그래서 이왕 이리된 거 배부르더라도 마음을 먹고 또 먹기로 했어. '6개월 뒤에도 딱 오늘만 같아라'라고 말이야. 헤어질 수 없다면 사이좋게 지낼래. 그래, 볼 때마다 서로 기분 좋은 관계가 가능할지도 몰라.
대문사진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