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녹진 Feb 08. 2023

시급 11,000원의 카페 업무

주말 오후 3:30~9:00. 카페로 출근하기 전 점심시간, 잠깐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다른 카페를 들렀다. 점심 식사용으로 고른 샌드위치를 픽업대에서 기다리면서 좌석이 없는 1층 매장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점심시간대라 그런지 카운터에는 커피를 주문하려는 사람들의 줄이 늘어져 있었다. 사이렌오더도 밀려있는지 픽업대에서 자신의 음료가 놓아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스텐딩 테이블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중 벽면에 기대어 이름이 불리길 기다리고 있는 손님이 되어, 바삐 움직이는 직원들을 구경했다. 몇 시간 뒤면 나도 바삐 움직이게 되겠지만 당장에는 손님으로 즐기는 카페 여유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광화문의 토요일은 정말이지 눈코 뜰 새가 없이 바빴다. 키오스크와 카운터에서 쏟아지는 주문에 맞춰서 제조된 음료를 오더에 맞춰서 트레이에 담아 진동벨을 불렀다. 이 아메리카노가 디카페인인지, 샷 추가인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바리스타님의 말에 집중하지 않으면, 안 그래도 바쁜데 더 바빠질 수도 있다. 음료를 보내다가도 서비스 테이블에 쌓이기 시작하는 빈 컵이 보이면 적당한 때에 주방으로 들고 들어가 폭풍 설거지를 하다 보면 금세 휴게시간이 되어버린다. 깨끗해진 컵과 접시를 마른 헝겊으로 물기 없이 잘 닦아 비워진 바 테이블에 채워 넣고 다시 한번 매장을 둘러봤다. 매장을 이용하는 손님들은 바쁜 나를 보고 커피 한잔의 여유를 만족스러워할까?


기꺼이 흐뭇해해 줬으면 좋겠다. 서비스 테이블을 비우고 매장 정리를 위해 한 번씩 둘러보는데, 빌딩 1층을 통으로 사용하는 넓고 쾌적한 대형카페에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연인끼리 데이트를 하거나 혼자서 개인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누가 봐도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겠더라. 좋은 시간을 보낸다는 거, 뭐 별거 있나. 겨울철 따뜻한 실내에서 그날 기분에 따른 원하는 음료를 마시기만 해도 그것 그대로 하루의 기분전환이 될 텐데.


휴게시간이 끝나고 나면 본격적인 마감준비를 시작하는데, 쓰레기통을 비우고 분리수거를 하고 쌓여가는 설거지를 해치우면 퇴근시간이다. 카페에서의 설거지는 집 설거지랑 좀 다른데, 고무장갑을 끼고 간단히 애벌 설거지를 한 후 식기세척기를 돌린다. 식기세척기 통에 식기를 넣고, 돌리고, 정리하고를 반복하면서 설거지를 무찌르느라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토요일이라, 힘드시죠?"


부족한 식기를 가지러 들어온 부점장님이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순간 '어? 너무 가뿐한데, 대체 무엇이?' 의아함이 떠올랐다. 내게 익숙한 업무의 강도는 평일, 하루 8시간을 근무하는 병원에서 환자와 컨택하면서 나의 기력을 모두 소진하는 것인데 카페에서의 업무는 귀여웠다. 카페에서 나는 커피 향, 달그락달그락 식기들이 부딪히는 소리, 평범한 사람들의 대화소리 같은 것들이 아르바이트하는 시간을 좋은 시간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쾌쾌한 병원 소독 냄새도 없고 비정상적 소음도 없는대다가, 주문을 받고 음료를 제공하고 테이블 정리를 하고 깨끗해진 식기를 보면서 일차원적인 성취감을 느꼈다.  


평소, 정규직으로 병원에서 근무할 때는 점심시간마다 누구보다 빠르게 10분 컷으로 식사를 끝내고 베드에 누워서 잠을 잤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요즘에는 10분 컷 식사 시간은 똑같지만, 낮잠 대신에 커피를 마시러 밖으로 나간다. 아직은 조금 추운 바람을 쐬고 의외로 따뜻한 햇볕을 쬐며 기분에 따른 커피메뉴를 고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덩달아 어려지는 기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