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月27日. 나를 거쳐간 수많은 운동화에게

낡은 운동화에 담긴 나의 발자취

by 서월

나는 키에 비해서 발이 큰 편이다. 그래서 내 발사이즈를 들으면 놀라는 반응을 종종 접하곤 한다. 키는 154인데 발 사이즈가 250이니 말이다. 키로 갈 부분이 발로 다 가버렸나 보다. 그 와중에 발볼도 넓다. 여성용 신발 중에 나처럼 발이 크고 발볼도 넓은 경우를 감당할 신발을 찾는 게 항상 힘들었다.


보통 어릴 때 나에게 옷이나 운동화를 사주라는 미션을 엄마가 이모에게 맡길 때가 있었다. 나는 엄마와는 쇼핑을 같이 한 적이 없다. 이모와 함께 쇼핑하는 것은 나에게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이모는 섬세하지 못하고 화가 많고 목소리도 컸다. 옷이 맞지 않을 때마다 애가 뭐가 이렇게 살이 쪘냐며 화를 냈다. 특히 신발을 살 때도 도대체 키는 작으면서 발은 왜 이렇게 크냐는 질책이 머리 위로 쏟아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나에게는 그저 상처와 짜증뿐인 나들이였다고 해야 할까.




성인이 되고 나서는 내 발에 맞는 구두를 찾기가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려웠다. 구두는 특히나 발을 갸름하게 보이게 하기 위함인지 볼이 더 좁았다. 그래서 굳이 구두를 꼭 신어야 한다면 맞춰서 신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고, 맞추더라도 생각만큼 편하지 않고 항상 새끼발가락 부분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자연스럽게 구두를 멀리하고 편한 운동화를 찾아 떠나게 되었다. 주로 ABC마트 같은 곳에서 세일하는 저렴한 운동화면 아무거나 신던 시절을 지나서 직장인이 된 이후로는 내 발에 좀 딱 맞고 편한 운동화가 없을까 탐색을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지금은 한 브랜드에 정착해 내는 성과를 이루었다. 이제는 신발과 맞닿는 뒤꿈치 부분이 까지거나 새끼발가락이 붓는 경우가 현저히 줄었다.




걷는 방식이 바르지 못해서인지 내 운동화들은 금방 밑창이 닳고 뭔가 너덜해지며 변형이 빨리 오는 편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운동화를 몇 개나 갈아치운 걸까. 한번 세어보며 살았다면 재밌었을 텐데 싶기도 하다. 운동화는 낡고 쓰임을 다하면 금방 새것으로 갈아치운다. 쉽게 쉽게 버린다. 어쩌면 내 발과 함께 곳곳을 여행하고 나를 지탱해 준 소중한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한 것 같다.



이제는 낡은 운동화를 버리기 전에 사진을 찍어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이 운동화를 언제부터 언제까지 신었는지 기록해 둘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무언가를 소비할 때는 간절하거나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구입하지만, 헤어짐에는 아무 의식이 없었다는 걸 느꼈다. 운동화뿐만 아니라 내 인생에서 무언가가 시작되고 끝날 때, 나는 입학식만 성대히 하고 졸업식은 잊어버린 것 같다. 어떤 인연이 끝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는 생각이 든다. 내 삶에서 시시각각 떠나보내게 되는 것들을 좀 더 정중하게 의식하며 보내고 싶다. 그것들이 내 삶에 남긴 궤적을 다시 한번 반추하며 나만의 예식으로 떠나보내고 싶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