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月28日. 그 안에는 추억이 담겨 있었다

지갑에 담긴 물건과 기억들

by 서월

한 가지 물건을 진득하니 오래 쓰지 못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오래 쓴다 싶은 물건 중 하나가 지갑이다. 어릴 때는 문방구에서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알록달록한 지갑을 구입해서 그 안에 용돈, 영수증, 조그만 증명사진이나 스티커사진을 집어넣고 다녔다.


처음으로 가죽지갑을 샀던 때도 기억난다. 지갑은 오래 쓰니까 괜찮아하면서 10만 원대의 지갑을 나름 큰맘 먹고 구입했었다. 실제로 그 지갑은 몇 년간 꽤 오래 내 곁에 함께 했는데, 검은색 가죽 지갑이라 낡은 게 티가 안 나기도 했고 내가 지갑의 외형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인 것도 같다. 나는 옷이나 가방 같은 물건들은 언제나 새것을 찾아 호들갑을 떠는 것과 달리 희한하게 지갑에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인지도 모른다.




예전에 현금을 자주 쓰던 때만 해도 좀 넉넉하고 큰 지갑이 필요했다. 특히 돈을 좀 헤프게 낭비하던 시절에는 일부러 현금으로 소비를 하여 절약을 해보겠다 결심했던 터라 지폐와 동전을 넣을 공간이 많이 필요하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카드로 모든 것을 해결하게 되면서 지갑의 크기와 부피가 작아졌다. 심지어 요즘은 핸드폰 페이결제가 활성화되다 보니 지갑을 꺼내는 일은 더 줄어든 느낌이다.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지갑은 투명지갑이다. 카드 크기만 딱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미니지갑인데 일러스트 페어에 갔다가 구매했다. 투명지갑을 자기 마음에 맞게 맞춤식 디자인을 할 수 있도록 알록달록한 스티커들을 배열해 놓았다는 점이 그 부스의 포인트였다. 그래서 지금 내 지갑은 그때 붙인 스티커들로 빈틈없이 도배가 되어 있다. 지갑 안에는 카드 몇 개, 모으고 있는 쿠폰들, 보관해두어야 할 만한 큰 가격대의 영수증들, 신분증 이렇게 단출하게 들어가 있다.




가끔씩 지갑을 한바탕 정리해주곤 했다. 일단 뭔가 중요해 보이거나 작아서 잃어버리기 쉬울 것 같으면 지갑에다가 쑤셔 넣어 두었기 때문이다. 정리할 때마다 일단 안에 든 물건을 모조리 꺼내고, 필요 없는 영수증이나 더 이상 갈 일이 없거나 기간이 지나버린 쿠폰 묶음을 버려냈다. 아 내가 이런 걸 샀어? 이런 데도 갔었네 하면서 약간의 자기반성과 기억을 되짚어가는 과정이 있었다. 정리하다 보면 동전 지갑에서 지폐뭉치가 튀어나오기도 하는 게 하나의 이벤트였달까. 요즘은 지갑 사용량 자체가 줄어서 정리할 일 역시 많이 줄었다.



예전에 지갑에 어린 시절 내 증명사진과 동생사진을 넣고 다니기도 했었다. 부러 꺼내보는 일은 많지 않았지만 지갑을 열 때마다 눈길이 갔고 그럼 마음이 조금 뭉클해지는 게 있었다. 잘 보관을 못해서 점점 닳고 낡아가는 사진을 빼서 어떻게 했더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소중하게 간직했는데 왜 그 끝을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지갑이 점점 과거만큼의 효용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모든 게 전자식으로 이루어지는 시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 나는 지갑 속 묵은 잡동사니들을 정리하면서 그것들에 깃들어 있는 시간을 함께 정리했던 것 같다. 그때는 몰랐는데 그 역시 소중한 작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일부러 더 지갑에 무언가를 넣고 싶어졌다. 나중에 열어보면 그 안에는 작은 기억의 조각이 들어가 있을지 모른다. 추억을 들여다보는 일은 언제나 조금 마음 아린 듯하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