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月1日. 길을 잃고 나서야 보이던 것들

헤매는 순간에서 찾은 무언가

by 서월

낯선 곳에 가면 자주 길을 잃곤 한다. 기본적으로 방향치와 길치를 겸하고 있기 때문에 맵을 켜고 안내에 따르지 않고서는 길 찾기가 영 힘이 든다. 한참을 걷고 나서야 어? 뭔가 이상한데 하고 맵을 켜면 반대방향이나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한참 걸어온 뒤이다. 사실 이쯤 되면 처음부터 어플을 켜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아 이쯤은 내가 찾을 수 있지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는다. 부러 길을 잃고 싶기도 하다. 급할 때가 아니라면 때로는 길을 잃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 은근한 낭만과 기쁨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낯선 장소에 도달했을 때, 특히 그곳이 여행지일 때는 길을 잃음에 대한 설렘은 더 극대화된다. 지도를 확인하거나 어플의 안내 없이 발걸음이 닿는 대로 무작정 헤매본다. 대로로도 걸어보고 골목으로 들어가 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뜻밖의 마음에 쏙 드는 장소를 발견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도 자주 가는 단골 음식점이나 장소들은 대부분 서치를 통해 발견하진 않았다. 길을 걷다 마주한 우연에서 비롯된 첫 만남이 많다. 동네 한편의 브런치 식당, 여행지에서 우연히 오픈 당일 방문했던 비건 음식점, 큐레이팅이 인상적이었던 서점, 이국적인 소품샵 등. 어쩌면 그런 우연이 내게 행운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더 귀하게 다가온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삶의 다른 측면에서, 즉 의무와 책임이 범벅된 삶의 대부분의 현장에서 나는 항상 바짝 긴장해 있었다.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을 것이란 불안에 시달렸다. 실수는 곧 도태되고 망가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언제나 답안지를 찾아 헤맸다. 업무에 있어서도 삶에 있어서도 어떤 정답이 분명 숨어있을 터였다. 절대적인 척도, 올바른 길, 바른 선택을 찾아내야만 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 헤매도 내게 내려지는 확답도 어떠한 확신도 없었다. 삶은 언제나 희끄무레한 안갯속을 헤매는 느낌을 주었고 나는 길을 잃은 어린아이처럼 울다가 화를 내다가 제풀에 지쳐 주저앉았다. 나는 길을 잃은 것이 두려웠다.

깨달음은 어느 날 조금 늦게 나를 찾아왔다. 그것은 서서히 나에게 스며들었다. 길을 잃고 헤맸던 그 수많은 경험들의 속삭임이 내게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정답은 없어. 어떤 것도 완전히 잘못되거나 옳은 것이 아냐.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또한 하나의 길이었다.




얼마 전 오랜 기간 신세를 진 상담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너무 옳은 답과 정답을 찾으려 하지 말라고. 내가 원하면 설령 실패와 실수가 있더라도 그게 답이라고.

내가 했던 모든 선택들은 그 순간의 나에겐 최선이었다. 끝없는 고민과 치열함과 절박함으로 내렸던 결론들 객관적으로는 실패였다고 하더라도, 그 실패들이 결국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그 실패들은 다음의 길을 열어갈거름이 되어주었다.


앞으로는 길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 싶지 않다. 헤매고 지름길을 못 찾아 돌아 돌아 느리게 닿더라도 길 위에서의 모든 것들을 내 삶에 고스란히 적용하며 살고 싶다.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 않은 여행자처럼 살아가고 싶다. 때로는 아무도 가지 않은 풀숲을 제치고 나아가는 모험가가 된 것처럼 도전하고 싶다. 무수한 고민과 선택으로 나는 나만의 길을 내어갈 것이다. 느리게 걸어도 괜찮아. 실수할 수도 있어. 아예 실패할 수도 있겠지. 그래도 괜찮아. 나는 결국 나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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