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月2日. 손끝으로 전해지는 기억

by 서월

나는 지금 갓 나온 빵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빵의 윗면은 약간 오돌토돌하면서도 부드러운 소보로 재질이다. 빵을 잡고 쭈욱 가운데를 갈라 보면 치즈가 뒤섞인 점성이 있는 고로케 속이 흘러나온다. 촉감놀이를 하듯 감촉을 잠시 느껴본다. 어릴 때 딱히 촉감놀이라는 이름으로 뭔가 활동을 해본 기억은 없지만 다양한 촉감을 느껴볼 기회들이 곳곳에 널려있었던 것 같다.


놀이터는 그야말로 다채로운 촉감의 장이었다. 미끄럼틀의 차가운 금속의 느낌, 낡은 그네 의자의 거칠함은 나를 조금 긴장하게 했다. 모래의 까끌거림, 물을 부어 흙을 만들면 부드럽고 축축한 질감이 느껴졌고 손톱사이로 끼는 흙은 차가웠다. 신발틈새를 자꾸 비집고 들어오는 모래의 까끌함이 불편해서 자꾸 신발을 벗어 털어내야 했다.




누구나 좋아하는 감촉이 있을 것이다. 나는 폭신하고 말랑한, 찹쌀떡 같은 질감을 좋아하는 듯하다. 침구류를 살 때에 특히 감촉을 중요시해서 샘플로 나와있는 것들을 열심히 쓸어보고 만져본다. 그 폭신함은 왠지 안정감을 주고 나를 좀 풀어지게 한다. 여름 침구류는 어쩔 수 없이 모시재질, 다른 계절용 침구는 무조건 말랑 콩떡 같은 재질이어야 한다는 나름의 철칙이 있다. 지금 쓰고 있는 이불은 연한 민트색의 몽실몽실 부푼 소재이다. 그 속으로 들어가 돌돌 몸에 두르면 감싸 안아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 겨우내 참 포근하게 잘 썼다.


말랑말랑한 질감 하면 역시 사람의 볼 감촉만 한 게 없지 않을까. 특히 아직 어린 아기의 볼은 너무나 말랑하고 보드라워서 조심스럽게 어루만지게 된다. 사실 어릴 때 동생의 볼은 전혀 소중하게 다루지 못한 것 같긴 하지만서도. 처음 동생을 마주했을 때도 볼부터 꼬집었고 그 후로도 동생의 말랑말랑한 볼은 나의 장난감이 되기 일쑤였다. 동생이 암만 찡그려도 구겼다가 납작하게 했다가 위로 올렸다가 내렸다가, 마치 스트레스볼처럼 다룬 것 같아 지금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도 든다. 지금도 동생의 볼은 여전히 내 손에서 꼬집히고 쭉쭉 늘어뜨려지며 함께하고 있다.




사물의 온도를 생각하면 역시 따뜻한 걸 선호한다. 여름에는 열심히 얼음과 같은 시린 것들을 몸에 가져다 대야 하는 형편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사람의 체온과 비슷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들이 좋다. 폭신하고 부드러운데 따뜻하기까지 하면 정말 금상첨화이다. 겨울에 온수팩 손난로를 사서 따뜻한 물을 채우고 폭신한 파우치를 입혀 끌어안고 있으면 온몸으로 온기가 퍼진다. 어쩌면 온기를 느끼고 싶어서 사람들은 서로의 몸에 기대는지 모른다. 서로에게 전해지는 관계의 온기는 그 무엇보다 따뜻해서 우리를 안도하게 하는지도.


이제 봄이 온다. 새로 돋아난 매끈한 이파리를 만져보고 싶다. 조금 가벼워진 옷차림으로 꽃나무 아래에 서서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을 붙잡아보고 싶다. 그 투명하고 여린 감촉을 느껴보고 싶다. 잡히지는 않지만 느껴지는 따뜻한 바람결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고 가만히 흔들리고 싶다. 세상은 다양한 질감과 온도로 이루어져 있다. 만지작거리는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감각은 내 안에서 다채로운 감정으로 퍼지며 나를 감싼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