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앨리스 Jul 18. 2022

내가 사랑한 남자들

Y

Y는 내가 여전히 잊지 못하는 남자다.

그를 만난 건 2022년, 올해 초 파리에서였다.


내가 생각해도 참 낭만적이다.


그는 나보다 9살 연하에 중국인이었다.

성악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에 온 음대생이었다.


음악은 내게 아픈 손가락이다.

어렸을 때 나는 예술학교 입시에 실패했다.

피아니스트가 되기에 부족한 재능과 노력에 오랫동안 고통스러웠다.


내 주위에 있는 누구도 내가 얼마나 간절히 음악가가 되기를 열망했는지 모를 것이다.


그렇게 음악 공부를 그만뒀지만

운 좋게 음악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을 얻었다.

그 덕에 작게나마 내 음악을 선보인 적도 있었다.


어쨌든 성악도인 그가

내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던지,

참고로 그는 190cm가 넘는 매우 큰 키에

중화배우 같은 얼굴을 가졌다.


자신감으로 가득 찬 그와 함께 있을 때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될 수 있었다.

나는 마치 고전소설에 나오는 여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호우시절이란 그런 것일까,


그가 하는 음악만큼이나 얼마나 클래식했는지,

그게 내겐 꼭 마음에 들었다.

나 역시 클래식을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끝은 비록 지나치게 현실적이었지만

그와 함께 한 모든 시간이 내게는 영화 같았다.


파리 밤거리,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나눈 키스.

그의 중국인 친구들과 함께 한 저녁식사 모임.

아주 예쁜 레스토랑에서 함께 마신 버진 콜라다.

나를 위해 당신이 불러주던 노래들.


나는 그에게 사랑한다 말해달라 했다.

너는 왜 내게 사랑한다 계속 말하지 않느냐 물었다.

그는 계속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느냐 되물었다.


그는 사랑을 갈구하는 나를 버거워했다.

나는 혼자 토라져 그를 차갑게 대했다.


내가 이탈리아로 떠나면서

우리의 연락은 완전히 끊겼다.

나는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사실 그는 내가 사랑했던 남자들을 많이 닮았다.

사랑한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그 남자들을 닮았다.


다시 그런 사랑을 하고 싶지는 않다.

너무 많이 아팠다.

여전히 아프다.

내게 더는 그렇게 멋진 사랑이 오지 않을까 두렵다.

아니, 사실 나는 여전히 그런 사랑이 고프다.


다시 파리에 갔다 귀국한 지 일주일도 안 되었다.

그와 함께 갔던 예쁜 레스토랑을 홀로 가보았다.

청승맞게 눈물이 흘렀다.

이른 저녁이었지만 버진 콜라다도 마셨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너는 알까?

그 때의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내가 어떤 지옥의 끝에서 유럽에 가야 했는지,

그래서 그 곳에서 만난 네가 얼마나 귀했는지.


마음에 묻고 살다 보면

우리 언젠가 아주 우연히 다시 만날 날이 오겠지.

오지 않는다 해도,

아주 가끔 당신이 나를 생각해준다면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을 아름답게 기억해준다면

나는 그것으로 되었어.


이제 나도 당신을 잊고 내 시간을 살 거야.

그래도 우리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다시 사랑에 빠질 수 있다면,



작가의 이전글 내가 사랑한 남자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