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초, 아일랜드 리머릭에서 워크숍이있었습니다. 워크숍을 끝내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 파리에 가 아주 짧은 며칠을 보냈습니다. 이건 긴 이야기지만 짧게 말하자면- 돌아오는 비행기를 놓쳤습니다. 과연 비행기를 놓치는 일이 일어날까 싶었는데 그 일이 결국 일어나버렸습니다.
이상하게 파리 공항에 가는 일정이면 공항에 지나치게 촉박하게 도착한다거나 그날 따라 수속이 늦어진다거나이런 일들이 반복되었는데 결국은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이번에는 몇 시간 전에 도착했는데 말입니다.
어쨌든 눈물을 머금고, 바로 그다음 날 비행을 예약했습니다. 이 마저도 직항은 없었고 그나마 제일 빠른 항공편이 타이베이에서 경유하는 편이었지요.
그 비행기 안에서 만난 작품이 바로 사랑 뒤의 사랑, Love After Love (2020) 입니다.
평소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가 이안 감독의 '색, 계'인데, 이 작품도 시작부터 '색, 계'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습니다.이후 찾아보니 이 작품 역시 '색, 계'의 원작소설 작가인 장아이링의 소설 '첫 번째 향로'를 원작으로 하고 있더군요.언제 기회가 되면 장아이링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도 써보고 싶어요.
영화 얘기로 돌아와서, 영화 초반부에는 사실 영화를 그만 볼까 싶었습니다. 주인공 웨이롱 (마사순)의 연기가 보기 힘들었거든요. 이제 막 홍콩에 도착한 순진한 상하이 소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은데, 지나치게 일차원적이고 '척'하는 연기라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마사순은 제가 꽤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저는 그녀의 외모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요즘엔 특히 더 찾기 힘든 순수함이 있어요. 어쩌면 감독도 그래서 그녀를 선택한 것이겠죠.)
그렇게 영화에 대한 신뢰도가 점점 떨어졌습니다. 조지와 그의 동생이 '혼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은 뜬금없다는 생각까지 들었고요. 사실 이건 전적으로 감독의 잘못인데,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그 장면은 꼭 필요한 장면이거든요. 남자 주인공 조지가 왜 그런 식의 사랑밖에 할 수 없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알려주기 때문에요.하지만 그 시점에 그런 방식으로 풀어야 했는지 의문이 들어요. 전혀 효과적이지 못했거든요.
이에 더해서 조지(펑위옌)는 충분히, 아니, 지나치도록 매력적이지만 연민이 가는 캐릭터는 아닙니다. 그의 전사가 지나치게 표면적으로만 다뤄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더하여 인물에 대한 관객의 연민은 인물의 고통과 어려움이 세부적이고 명확해야 접근이 가능한데, 이 영화에서는 지나치게 거대한 이야기들만 하고 있으니 공감하기가 쉽지 않죠.
'너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어. 그러나 네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도, 너와 결혼하겠다고도 할 수 없어.'
그러나 저 대사가 나오던 순간, 저는 영화를 계속 보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난히 영화와 잘 어울렸던 펑위옌과 감독의 미장센 덕에 이렇게 가슴 아픈 말을 하는 조지가 여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진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구나, 하는 확신이 생겼죠.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제가 유난히도 사랑했던 남자가 둘 있습니다. 저는 그 둘이 유난히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만난 남자를 처음 만났을 때, 그전까지 제가 사랑했던 그 남자와 무척 닮았다고 생각했고요. 그 둘이 비슷한 얘기를 했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요. 사랑한다고 말하는 걸 싫어했고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참 나쁜 남자들이었지만 여전히 제 마음속에 남아있는 걸 보니 매력적이었던 건 분명해요.
영화의 주인공 웨이롱은 조지를 가집니다. 조지와 관계를 가졌던 고모를 졸라 결국은 조지와 결혼을 합니다.
하지만 조지는 신혼여행에서도 새로운 여자를 만나고, 웨이롱이 출장을 가 있는 동안 이전에 관계 맺었던 웨이롱의 메이드와 또다시 관계를 가지려 합니다. 그는 마치 섹스중독자처럼 새로운 여자와 새로운 관계를 맺고 이를 향한 충동을 억누르지 못합니다. 아니, 억누르려는 생각이 없는 것이겠지요. 그럴 필요도 없고요.
조지는 그 옛날 베트남에서 프랑스 소녀와 중국인 남자가 사랑에 빠진 이야기를 다룬 마르그리트 뒤라스 소설 원작의 영화 '연인'의 중국인 남자 (양가휘)를 레퍼런스로 삼은 것 같아요. 흰색 린넨 수트를 입고 나오는 펑위옌의 매력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제 취향은 나쁜 남자 쪽인 것 같아요. 저는 청설이나 이별계약에서의 펑위옌도 좋았지만 이 영화에서의 펑위옌이 훨씬 더 좋았거든요. 또 이 영화의 허안화 감독이 여성이 매력을 느끼는 남성의 섹슈얼한 지점을 기가 막히게 잡아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은 밝게 빛나는 태양 아래 검게 그을린 조지의 팔이 클로즈업되어 보이던 장면인데요.그의 팔 위로 맺힌 땀방울과 핏줄, 아주 예쁘게 잡힌 근육, 이런 것들이 관객인 저로 하여금, 아, 감독님 배운 변태시네. 싶게 만들었죠. 이 영화의 감독이 백 프로 여성감독일 것이다, 라는 생각도 했고요.
아, 웨이롱의 첫사랑쯤으로 나오는 자오린이 웨이롱을 배신하고 그녀의 고모와 관계를 맺은 뒤에 보이는 행태도 미성숙한 남성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그는 꽤 당연하게, 그러나 비밀스럽게 (부끄러운 일임을 알기에) 친구들과 골프 약속이 있다며 차를 빌려달라고 합니다. 순진하고 가난한 대학생이었던 그는 웨이롱의 고모를 통해 자기의 남성성을 확인하고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입니다. 그 세계가 영원불멸의, 도덕적으로 올바른 세계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완벽한 영화가 반드시 마음을 울리는 영화일 수는 없습니다. 저는 종종 제가 어느 지점들에 마음을 빼앗긴, 약간은 부족한 영화들도 좋아하는 편입니다. 이 영화 역시 그랬어요.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내 4번 이상을 돌려 봤습니다.
아마 웨이롱의 마음을 너무도 잘 이해했기 때문이겠죠. 사랑하는 사람을 갖고 싶은 소유욕, 그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들을 수 없는 쓸쓸함, '네가 나를 사랑한다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지! 난 그 말이 너무도 듣고 싶어.' 뭐, 이런 마음이랄까요.
그 끝에 뭐가 있는지 웨이롱이 어찌 모를까요. 사랑은 언제 봐도 참 어렵습니다. 조지는 변할까요? 아니요, 조지는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그는 평생을, 죽는 날까지 새로운 여자를 만날 거고 단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않을 겁니다. 이미 알고 있을 거예요. 변하는 건 흘러가는 시간이지 사람이 아닙니다.
지나간 사랑이 유난히 떠올랐던 영화입니다. 파리에 갔다 돌아오면서 저는 제가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는 중이었습니다. 그와 닮은 조지를 보면서 더욱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영화의 마지막에 웨이롱이 소리칩니다. 절규에 가까워요. 사랑해, 사랑해. 사랑한다고 말해줘.
무엇이 사랑인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세상엔 자기가 사랑에 빠지고도 그것이 사랑인지 모르는 남자들이 있답니다. 그리고 영영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들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여자들이 있고요.
저는 이 장면을 참 좋아해요. 웨이롱과 조지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둘만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인데요. 이 장면을 보는 순간 알았죠. 나이가 들어서인가, 이때가 조지가 웨이롱을 가장 사랑한 순간임을 알겠더라고요. 병든 남자의 사랑이란 얼마나 덧없고 짧은지- 또 병든 여자의 사랑은 얼마나 미저러블 한 지. 그래도 젊잖아요? 또 영화잖아요. 아파도 아름다우면 그것으로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