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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증의 이웃사촌 뉴욕과 뉴저지
이제 뉴욕시 (New York City)를 거쳐 뉴 저지 (New Jersey)로 넘어간다. 가족이 함께 뉴욕 주와 뉴욕시 맨해튼, 뉴저지 주 지역에서 모두 살아보았기에 이 지역의 역사와 생활에 대해 공부하고 관찰하며 생각할 기회가 많았다.
뉴욕과 뉴저지는 허드슨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중량감과 실제 미국 정치. 경제 영역에서의 영향력은 많은 차이를 보인다. 뉴욕 특히 뉴욕시 맨해튼은 '잠들지 않는 도시 (The City That Never Sleeps)'라는 별명처럼, 세계 경제의 중심지이자 거대한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다. 뉴요커 (New Yorker)는 대담하고 거침이 없으며, 때로는 오만하다고 불릴 만큼 자신 만만하다. 뉴욕시에 산다는 것은, '세상의 중심에 산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뉴욕주는 넓다. 면적만 14만 Km2 (남한의 크기가 10만 Km2)가 넘고, 뉴욕시 맨해튼 (Manhattan)에서 미국 북 동부의 애디론댁 산맥 (the Adirondacks)까지 이어지며, 여러 주가 함께 하는 뉴잉글랜드 전체보다 넓다. 뉴욕주 경제 규모 (2.85조 달러)는 프랑스 전체의 경제 규모 (약 3조 달러)와 비슷할 정도다.
뉴저지는 그에 비해 아담하다. 면적은 2만 2천 Km2 남짓. 하지만 경제력은 결코 작지 않다. 제약, 금융, 물류, 기술 산업 덕분에 가계 소득 중윗값 (median)은 미국 최상위권에 속한다 (약 $97,000, 미국 전체 중 2-3위권, 매사추세츠 주, 메릴랜드 주와 경쟁). 뉴욕이 규모로 압도한다면, 뉴저지는 밀도와 효율성으로 승부한다고 말할 수 있다. 또 뉴저지는 뉴욕으로 가는 길목 역할을 하면서 많은 뉴요커들이 뉴저지에 있는 집에서 뉴욕시로 출퇴근한다.
| Empire & Garden
뉴욕주와 뉴저지 주를 부르는 별명에서도 미국 사람들이 이 두 주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나타난다. 뉴욕주의 별명은 Empire State (제국의 주)이고 뉴저지 주의 별명은 Garden State (정원의 주)다. 뉴욕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Empire State)'라 불린 것은 단순한 번영의 상징이 아니라, 19세기 이후 미국의 경제·정치 중심지로 자리 잡으며 다른 주들보다 우월한 위상을 과시하려는 정치적 의미가 담겨 있다. 남북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며 뉴욕은 스스로를 국가의 심장, 제국의 수도로 상정했고, ‘Empire’라는 단어는 곧 패권과 리더십을 나타낸다.
반면 뉴저지가 채소밭과 정원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는 Garden을 별명으로 쓰는 것은 뉴욕이나 필라델피아처럼 권력의 중심에 서기보다는,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생산력을 바탕으로 이웃 대도시를 먹여 살리는 공급자의 정체성을 내세운 결과였다.
또한 뉴저지는 정원처럼 아름답다. 푸른 소나무 숲과 고요히 숨 쉬는 늪지, 끝없이 이어지는 보드워크 (Boardwalk)와 모래사장, 그리고 가을이면 붉고 노랗게 물드는 산과 계곡이 있다. 그렇다고 뉴저지에는 아름다운 자연과 뉴욕시 출퇴근용 베드타운 만 있는 것은 아니다.
뉴저지에는 존슨앤드존슨 (Johnson & Johnson), 머크 (Merck & Co),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 (Bristol-Myers Squibb) 같은 제약 대기업들이 자리 잡고 있어 뉴저지를 ‘바이오·제약 허브’로 만든다. 금융·보험 분야에서는 프루덴셜 파이낸셜 (Prudential Financial)과 처브 (Chubb Limited)가 세계 시장을 이끌고 있다. 또한 벨 연구소 (Bell Labs)를 기반으로 한 베라이즌 (Verizon Communications), 허니웰 (Honeywell International) 등 기술 기업도 뿌리를 두었다. 이렇게 뉴저지는 제약, 금융, 기술 등 여러 산업이 고르게 뿌리내린 기업의 요충지다.
| 하지만, 서로 필요하다
뉴욕은 허세와 자신감으로 힘을 과시한다면, 뉴저지는 어깨에 꿋꿋하게 자부심을 지켜낸다. 한쪽은 “세계의 도시”임을 외치고, 다른 한쪽은 “네가 그렇게 클 수 있었던 건 우리 덕분”이라 되받아친다.
두 주는 서로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뉴저지 주는 대부분의 식품과 의류에 대해 판매세를 부과하지 않는 반면, 뉴욕 주는 제한적으로만 면세 혜택을 준다. 특히 뉴욕시에서는 110달러가 넘는 옷이나 신발에 약 8% 이상의 세금이 붙기 때문에, 많은 뉴요커들이 의류 쇼핑을 위해 뉴저지의 쇼핑몰을 찾는다.
두 곳에서 살면서 서로 다른 두 가지 미국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뉴욕은 시대의 격랑을 지나며 더 큰 야망과 자신감을 얻었고, 뉴저지는 끊임없는 도전 속에서 끈질긴 인내를 배웠다. 오늘날에도 하나는 세상을 다스리려 하고 다른 하나는 묵묵히 버티지만, 결국 이 둘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에게 기대며, 각자의 방식으로 상대를 떠받친다.
그렇게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두 얼굴이 함께 동북부의 정체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고대 그리스 격언이 말하듯, “It takes two flints to make a fire. (불꽃을 일으키려면 두 개의 부싯돌이 필요하다.)” 뉴욕과 뉴저지는 서로의 마찰과 의존 속에서 불꽃을 만들어내고, 그 불꽃이야말로 이 지역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우리네 사는 삶도 마찬가지다. 운전하는 남편 옆에서 졸지 말라고 잔소리하고 좋아하는 간식도 챙겨주며 가끔은 길도 찾아주는 아내가 있기에, 대서양을 따라가는 이런 여행도 수월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