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ept, 나를 받아들이다
Acce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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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손을 내어, 내 쪽으로 받아들이다.”
기꺼이, 받아들일 용기를 가지고, 어떤 것을 나에게로 끌어안는 것을 의미해.
"안녕하세요, 심현지입니다." 오랜만에 내 이름으로 나를 소개했어. 동화구연 수업을 듣기 시작했거든.
네가 3살 때, 집 근처 도서관에 자주 갔어. 네게 읽어줄 책 대출 최대치씩 빌려왔지. 그날도 너를 어린이집 데려다 주고 도서관에 갔어. 엘리베이터에 작은 안내문을 봤어. <동화구연교실> 금요일 오전 10:00-12:00. 눈이 번쩍 떠졌어. 네가 아직 낮잠 자고 있지 않을 때라서 여유가 별로 없었는데, 정확히 네가 어린이집 있는 시간에 하는 수업이라니. 당장 신청했어.
"토끼가 길을 가고 있었어요."
호흡 한 번 들이쉬고 한껏 구연했어.
"목소리가 좋아요. 발음도 선명하고."
선생님이 칭찬해주셨어. 금요일 오전은 수하 엄마가 아니라 심현지로 되살아나는 시간이었어.
6개월 지나 시험을 봤어. 동화구연가 3급. 시험에 준비한 동화는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였어.
"우르릉 콰콰콰쾅"
비와 함께 더러운 도깨비가 내렸어. 엄마가 도깨비를 사정없이 빨아버렸고 얼굴이 다 지워져 버렸어. 아이들이 예쁜 얼굴을 그려줬더니 마음에 쏙 들어 돌아갔어. 다음날 "우르르릉!" "콰콰콰쾅!" "번쩍!" 요란한 천둥이 쳤어. 수많은 도깨비들이 새 얼굴을 갖고 싶어서 찾아온 거야.
네 앞에서 구연하고 또 구연했어. 너는 같은 부분에서 매번 깔깔대며 웃었어. 나중에는 "우르릉 쾅쾅!" 을 기억해서 함께 외쳤어. “색동회 동화 구연가 3급 자격시험에 합격하셨습니다.” 문자를 받고
낮잠 자는 네가 깰까 봐 소리 없이 방방 뛰었어.
그림책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싶어졌어. 가까운 곳에 <그림책 탐구가>과정에 등록했어.
첫 수업에 선생님이 책을 읽어주었어. 『모두가 잠든 밤이에요, 프레드만 빼고요』. 자야하는 시간이지만, 큰 소리로 나팔을 불고, 요란하게 격파하는 프레드. 돌아가자마자 책을 사서 너에게 읽어줬어. "또 읽어줘!" 밤마다 읽었어. "아자!" 너는 프레드와 함께 노래 부르고, 나팔 불고, 격파했지. 조용하게 시키느라 진땀 뺐어. 밤에 잠자기 싫었던 네 마음을 프레드가 알아줬나봐. 너를 만나는 새로운 길을 찾은 느낌이었어. 탐구하는 게 좋았어. 배우고, 연습하고, 너와 나누는 것.
그런데 어느 순간 생각이 바뀌었어.
'이걸 다른 사람들도 봤으면 좋겠다.'
경력과 동화구연과 그림책을 합쳐서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어. 너와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휴대폰을 들고 있었어. 어떤 날은 배경을 치우느라 시간이 더 걸렸어. 무슨 사진을 올리면 근사할까 고르고 골라 글을 쓰고 업로드했어.
생각보다 세상은 조용했어. 좋아요 하나 받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지. ‘이만하면 봐줘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마음, ‘뭘 더 잘해야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점점 나를 채웠어.
그러던 어느 날, 수업 시간에 『가만히 들어주었어』라는 그림책을 만났어. 테일러가 블록으로 멋진 성을 만들었는데, 새떼가 와서 다 무너뜨리지. 낙심한 테일러를 달래겠다고 동물들이 하나씩 다가와. 무슨 일 있었는지 말해보라고 해. 소리 질러 버려라 하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숨어 버리라 해. 복수하자고도 하지.
테일러는 아무 말도 안 해. 그런데 토끼가 한 마리 다가와. 아무 말 없이. 다가와 오래 곁에 있을 뿐이었어. 그러다 테일러가 말을 시작했을 때, "가만히 들어주었어."
처음에는 네 생각을 많이 했어. 수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줘야 했구나. 또 반성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어.
하루는 책을 다시 읽었어. 테일러가 나로 보였어. 그제야 알았어. 내가 나를 가만히 들어줘야 했구나. 너를 오래 기다렸던 나, 2년간 수유하며 지쳤던 나, 매일 너를 12시 30분에 데리러 갔던 나, 어떻게든 배우고 싶었던 나, 일하고 싶었던 나, 누군가가 봐줬으면 했던 나.
내가 진짜 탐구해야 하는 대상은 '나'였어.
그런데 나를 돌봐주지 않았어. 좋아하는 마음이 조그맣게 피어나자마자 해야 할 일로 바꿔버렸어. 그냥 좋아하면 되는데 ‘잘’ 좋아한다고 세상의 인정을 받으려 했어. 투두 리스트를 만들어 나를 다그쳤어. 지나간 시간을 보상해내도록. 열심히.
아니었어. 무슨 일 있었는지 꼬치꼬치 말하는 것도, 소리 질러버리는 것도, 숨어버리는 것도, 복수의 칼을 가는 것도. 내게 필요한 건, 가만히 들어주는 거였어. 나를 있는 그대로 두고, 깊이 파고들어 알아줘야 했어.
그날 밤, 책을 덮고 한참 앉아 있었어. 테일러 곁에 앉은 토끼처럼, 나도 내 옆에 앉았어. 아무 말 없이.
동화구연가 시험 보던 날의 떨림도, 합격 문자에 방방 뛰던 기쁨도,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던 조급함도, 지쳐갔던 밤들도 마음 속에 지나갔어.
가만히 들어주었어. 내 손을 맞잡고 내 머리를 쓰다듬고 싶어졌어.
오랫동안 가만히 들어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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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브런치북입니다.
부족하지만 진심으로 써내려간
30편의 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