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l, 자리를 채우다
Fill은 고대 영어 fyllan에서 온 단어야. “가득 채우다, 채워 넣다.”
컵 안의 빈틈까지 물이 스며들 듯, 비어 있는 자리에 무언가가 넘치도록 채워지는 모습. 그게 fill의 본래 뜻이야.
여섯 살의 수하야, 나의 아이.
나의 첫째, 나의 딸이라고 부르는 게 더 익숙해질 될 나의 아이.
너는 지난주에 자주 아팠어. 하루는 배가 아팠어. 종일 입맛이 없었지. 좋아하는 케이크도 마다했어. 다음 날엔 미열이 나서 힘없이 놀았어. 워낙 잔병치레가 없어서 자잘한 증세에도 신경 쓰였어. 내가 너를 돌보지 못하는 몇 주간이 다가오고 있어서 더 마음이 흔들렸어. 곧 네 동생을 낳으러 병원에 가고 조리원에 들어가야 하거든. 며칠 지나자 너는 건강을 되찾았어. 그렇게 한 주 동안 쑥 자랐어.
이번 주에는 이가 흔들리기 시작했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치과에 갔지. 치과 선생님은 기다렸다가 자연스럽게 빼기를 권했어. 집으로 돌아오자 너는 이를 빼고 싶어 했어. 자연스러운 시기를 기다리면, 내가 병원이나 조리원에 있을 때 첫니를 빼게 생겼어.
“그래, 엄마가 있을 때 첫니를 빼는 것이 좋겠다.”
이틀 뒤 다시 치과에 갔어. 너도, 나도 긴장했어. 순식간에 이는 빠졌어. 너는 울 새가 없었어. 밤까지 까르르거렸어.
“내가 컸어. 누나야.”
하며 스스로를 기특해했지.
나의 아가가 진짜 누나가 돼. 자는 얼굴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아가 같은데, 네가 누나라니.
“엄마 없이 할머니랑 열다섯 밤을 자야 해. 괜찮아?”
“응. 내가 기도해서 온 동생을 기다리는 거니까. 그런데 엄마 쭈쭈 안 만지고 어떻게 잠들지?”
나는 너를 꼭 안아주었어. 따듯한 엄마 품을 오래 기억하라고.
너의 입 안에 빈자리가 생겼어. 첫니가 빠진 자리. 곧 침대에도 빈자리가 생길 거야. 엄마가 없는 자리. 네 마음에도 빈자리가 생길지 몰라. ‘혼자였던 나, 아가였던 나’가 떠난 자리.
하지만 엄마는 믿어. 빈자리는 채워진다고. 물이 흘러들어와 컵을 넘치게 하듯. 첫니 자리엔 새 이가 자랄 거야. 엄마 없는 침대엔 스스로 잠드는 용기가 자랄 거고. 혼자였던 자리엔 동생이 올 거야. 아가였던 자리엔 “진짜 누나”가 들어설 거야. 엄마도 마찬가지야. "나의 아이"라고만 부르던 자리가 두 아이의 사랑으로 채워질 거야.
열다섯 밤 동안은 빈자리가 느껴지겠지. 그 시간이 지나면 너는 누나가 되고,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될 거야. 우리 둘 다 가득 넘치겠지. 네가 기도해서 온 동생이 빈자리를 채울 거야. 너는 동생의 세상을 채울 첫 번째 사람이 될 거야.
수하야, 엄마는 네 덕분에 동생을 맞이할 용기를 채울 수 있었어. 영원한 엄마의 첫째, 열다섯 밤 지나서 우리 기쁘게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