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버드
그레타 거윅의 ‘레이디버드’는 정말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영화다. 안 본 사람이 있다면 제발 꼭 한 번 보았음좋겠다. 레이디버드의 주인공은 고등학생인데, 부모님이 붙여주신 ‘크리스틴’이라는 이름 대신에 자신이 지은 ‘레이디버드’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신기하게도 고등학교 3학년 나도 내 가명을 지었다. 20년 좀 안되게 부모님이 붙여준 이름으로 살았으니 나머지의 삶은 내가 스스로 붙인 이름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그래서 친구 2명과 함께 카페에 앉아 내 가명을 지었다. ‘단하나’였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라는 의미가 맘에 들었다. 그래서 이름 스티커도 죄다 단하나로 뽑고 다녔는데 같은 이름의 유튜버가 있어서 계속해서 이 이름을 이용하기가 애매했다. 또 내 본명과 하나도 겹치는 철자가 없어서 이 이름에 대해 내내 설명하고 다녀야 했다. 무엇보다 내 입에 잘 붙지 않았다.
그래서 타협을 본 게 바로 지금의 단정윤이다. 이 이름을 들으면 진짜 내가 단 씨인 줄 안다. 좀 재밌다. 암튼 영화 속 레이디버드는 엄마와 크게 싸우고 먼 지역의 대학에 가게 되는데 거기서 이제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을 쓴다. 철이 들었다는 거겠지. 솔직히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온전하게 남는 건 그들이 붙여주고 불러준 이름인 거 같다. 근데 난 아직 단정윤이다. 아직 철이 덜 들었나 보다.
-
왜?
영화 속에서 잔인한 장면이 나와도 난 곧 잘 본다. 그냥 저거 찍으려고 엄청 힘들었겠다 싶은 생각과 왜 저 사람을 죽이는가? 에 대한 생각이 든다. 영화 속에서 사람을 죽이고 학대하고 ( 이건 동물도 포함 ) 하는 장면자체가 나에게 문제가 되진 않는다. 하지만 그에 마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생명을 죽이고 괴롭히는데 ‘그냥’이라는 이유는 통하지 않는다. 영화라는 매체는 불특정다수에게 노출되는 예술이다. 근데 그 안에서 심심풀이로, 심지어는 재미를 위해, 또는 이목을 끌기 위해 수단으로써 사용한다면 그건 감독의 윤리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평가할 때 재미가 있다 없다는 개인의 취향으로 평가가 되기에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잘 만들었냐 못 만들었냐는 중요하다. 재미는 없지만 잘 만든 영화는 누군가에겐 재미가 있을 수도 있지만 재미있지만 잘 못 만든 영화는 가치가 없다. 그렇다면 재미있고 잘 만든 영화가 뭐냐고 묻는 사람에겐 타란티노의 영화를 추천하고싶다.
-
20:45
없어지고 싶다. 아프지 않게. 최근 지인들을 만나면 나는 요즘 별 고민 없이 행복하다는 이야기가 무심코 튀어나오곤 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그 말을 곱씹어보면 내가 왜 그런 이야기를 했지? 싶게 슬프고 스스로가 낯설어지곤 한다. 그렇다고 그 말이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 순간의 감정이었을 뿐이다.
나는 기본 텐션 자체가 낮다. 그리고 한 감정에 깊게 잘 빠진다. 스트레스에 대한 민감도도 높다. 그래서 더더욱 나를 끄집어내려 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약속을 잡아 밖에 나가고, 맛있는 빵을 먹으러 멀리까지 가보고, 운동도 하고, 영화관에도 가고 또 이렇게 글로도 써보고. 스스로를 계속해서 살리기 위해 오늘도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본다. 힘든 것도 나 , 극복하는 것도 나.